미술사 연구자
'묵죽'은 시서화 삼절의 서화가 석재 서병오의 작품이다. 100여 년 전 요즘 무렵인 음력 10월 진주에서 박재표에게 그려줬다. 진주에서 열린 한시 백일장에 심사위원인 시관(試官)으로 초빙됐을 때다.
진주의 미술품 수집가 박재표는 이 기회를 활용해 자신의 집에서 서병오를 초청한 휘호회를 열었다. 휘호회는 즉석에서 그림을 그리거나 글씨를 쓰는 미술 행사로 근대기에 많이 열렸다. 작가와 애호가가 예술을 매개로 한 자리에서 어울리는 가운데 창작과 감상, 유통이 동시에 이루어진다. 동행한 제자 죽농 서동균은 소문을 듣고 마산, 하동, 의령 등에서 매일 수십 명씩 찾아와 휘호회가 보름이나 이어졌다고 회고했다.
대구의 서화가 서병오와 진주와 인근의 서화 애호가들이 시주(詩酒)의 풍류와 필묵의 예술을 즐기며 여러 날을 함께 보낸 흔쾌한 시간의 결정 중 하나가 이 작품이다. 서병오는 제화에 부채에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는 일이 어렵다고 써놓았다.
고인위(古人謂) 사서화(使書畵) 제접선(題摺扇) 여사미인(如使美人) 행와력퇴상(行瓦礫堆上) 신재사언(信哉斯言) 석재(石齋) 사(寫) 위(爲) 유남인형(唯南仁兄) 법정(法正) 을축(乙丑) 소춘(小春) 진양(晉陽) 여중(旅中)
옛사람이 이르기를 "부채에 글씨나 그림을 하라는 것은 미인에게 깨진 기와더미 위로 걸어가라는 것과 같다"더니 그 말이 맞다. 석재(서병오)가 유남(박재표) 인형을 위해 그리다. 을축년(1925년) 소춘(10월) 진양(진주) 여행 중에
아무리 미인이라도 깨진 기와더미 위로 걸어가라면 뒤뚱거릴 수밖에 없어 태가 나지 않는 것처럼, 훌륭한 화가라도 부채 그림으로 실력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다고 했다. 많은 화가들이 부채에 그림을 그렸지만 울퉁불퉁한 선면이라 어렵다고, 부채 그림이 달갑지 않다고 아무도 부채에 써놓지 않았다. 그런데 서병오는 사실이 그러하니 감안하시라고 당당하게 고충을 밝혔다.
짧은 글이지만 부채 그림을 그리는 불편한 심경을 은근히 드러낸 소탈함과 즉석에서 적절한 비유를 동원한 박학다식이 대단하다. 서병오가 어디선가 읽었던 옛사람의 말은 이덕무가 '청비록'에서 "사접첩선(寫摺疊扇) 여미인(如美人) 무와력상(舞瓦礫上)" 곧 "부채에 그림 그리기란 미인이 기와더미 위에서 춤추는 것과 같다"라고 한 것과 비슷하다. 이덕무는 명나라 축윤명의 말이라고 했다.
이렇게 해서 그림을 받은 부채는 훨훨 부치며 자랑도 하다가 손때가 너무 묻을까 아까워지면 넣어두었다 한 번씩 꺼내 보기도 한다. 서병오의 '묵죽'은 부채까지 고스란히 보존되어 100여 년 전 부채 모양을 알려준다. 대나무로 만든 합죽선에 그린 묵죽은 부채 그림으로 더욱 잘 어울린다.
미술사 연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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