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혁 소설가
지역의 어느 대학에서 판타지 문학을 주제로 몇 년간 강의를 진행한 적이 있다. 그 시절, 일상적 소재가 문학 속에서 판타지적으로 이용되는 사례를 묶어 교재를 집필했는데 그중 아주 인상 깊었던 것은 바로 벽(壁)이다.
벽은 기능과 약속에 따라 인간을 통제하기도 하고 보호하기도 한다. 문이 달린 벽은 언제든 벽 너머의 공간을 허락하지만, 문이 없을 경우 그 너머의 공간은 벽의 두께와 상관없이 허락되지 않는 미지의 영역이다. 판타지 문학에서 벽은 현실과 환상 세계를 연결하거나 분리하는 통로다. 말하자면 인물의 자격과 필요에 따라 언제든 문으로 변신한다. 그러므로 벽은 환상 세계로 갈 수 있는 인간을 검열하는 기관이며 검열을 통과한 자가 이용하는 최초의 판타지적 기구이다.(해리포터가 호그와트로 떠나는 장면을 잘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될 것이다.)
판타지 문학의 주인공들은 대부분 현실 세계에서 평범하거나 혹은 평범한 삶을 살아가지 못하는 인물로 설정된다. 말하자면 '열리지 않는 벽'에 갇히거나 '벽에 부딪친 인물'이다. 현실 세계에서 '벽을 문으로 만들 수 있는 인물'은 현실을 떠날 이유가 없다. 말하자면 판타지 서사의 주인공으로 자격이 부족한 것이다. 인물과 사회의 충돌로 만들어지는 현실의 균열에서 이전에는 체험할 수 없었던 새로운 통로가 탄생한다. 인간이 판타지를 꿈꾸는 가장 원초적인 이유 중 하나는 '현실 도피'이다. 열리지 않는 현실의 벽은 환상의 벽을 통과할 수 있도록 해 준다.
한편, 현실을 떠난 인물 즉 주인공은 그 도피 중에 어떠한 자극을 경험하고 그 자극으로 인해 뚜렷한 '목적의식'이 생긴다. 인물이 환상을 경험하면서 목표가 발생하지 않으면 환상의 '서사성' 즉 이야기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환상 세계로 도피한 후 사라진 줄 알았던 난관을 다시 만나게 되면서 그것이 현실의 삶과 연결된다는 것을 자각한 인물은 그동안 잊고 있던 자아를 발견하고 세상에 맞설 용기를 되찾는다. 물론 이건 어디까지나 판타지 서사 속의 이야기다.
바야흐로 입시철이다. 이제 겨우 십대의 끄트머리 혹은 갓 스물 몇 살 된 수험생들에게 성공과 좌절 따위의 이야기를 하고 싶지는 않다. 최선을 다했음에도 결과가 만족스럽지 않은 이도 있을 것이고 혹은 이제 조금 철이 들어 지난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니 내 노력이 터무니없이 부족했다고 생각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은 좀 쉬었다가 다시 뭐든 하면 된다. 재수를 하든, 삼수를 하든, 취업을 하든, 입대를 하든 다 괜찮다. 단, 어두운 방에서 벽을 쌓고 스스로 세상으로 나오지 않겠다는 터무니없는 결심만 하지 않으면 된다.
입시 따위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청춘이 있다면 제발 문을 열고 나와서 그냥 놀았으면 좋겠다. 그대들을 진정 사랑하는 사람들은 벽 속에서 외톨이로 살아가고 있는 당신보다 학원을 땡땡이 치고 친구들과 즐겁게 놀고 있는 당신의 모습을 더 좋아할 것이니 말이다. 그리고 그 편이 미래의 당신을 더 건강하게 만들 것이다. 조금 더 살아본 꼰대의 입장에서 하는 말인데, 현실에서든 문학 속에서든 문이 달려 있지 않은 벽은 세상 어디에도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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