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올해 2인극 페스티벌에서 <친절한 고르스키씨>(작 기하라, 연출 박혜선, 민송 아트홀)로 우수 작품상을 수상한 극단 '사개탐사', 박혜선 연출은 사회 문제를 날카로운 시선으로 무대화 해 왔다. 특히 만담 <남북의 일요일>(2019), 낭독공연 <벗>(백남룡 원작, 이해성 각색, 박혜선 연출), 렉처퍼포먼스 <산 넘어 여기>(2021), 평화잡담 <전쟁과 사람>(2023)으로 남북평화와 전쟁, 통일문제도 다양한 방식의 무대로 접근하고 있다. 냉전 시대 과학기술전쟁의 트라우마를 다룬 <친절한 고르스키씨> 역시 남북문제에 관심을 가져온 맥락에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인류 최초 달 착륙 우주인으로 한국전쟁의 트라우마에 시달리고 있는 극 중 인물 암스트롱을 통해 과열된 달착륙 프로젝트에 희생된 인간과 영장류(침팬지)들을 위로하는 씻김 굿판이기 때문이다. 씻김굿이 향하는 지점은 전쟁 없는 세상이며 생명체가 조화를 이루는 평화로운 삶이다. 1시간 안에 극의 특징을 부각(浮刻)시키고 연출로 승부를 걸어야 하는 2인극의 특성 상, 잘 짜인 희곡구조와 연출의 시선이 명확한 무대로 구현되지 않으면 극적 효과를 끌어낼 수 없다. <친절한 고르스키씨>는 박혜선 연출의 특징이 시각적으로 드러난 공연으로, 성공적인 달 탐사를 위해 우주로 보내진 후 사라진 침팬지들과 인간을 치유하는 굿판이자 전쟁 시대를 풍자하는 블랙코미디였다.
◆ 우주를 정복하기 위한 국가의 욕망에 희생된 것들
달 탐사를 향한 욕망 앞에 인간도 영장류도 우주로 보내졌던 시절이 있었다. 미국은 1948년에서 1951년 사이 '앨버트(Albert)' 1~6이라고 이름 붙인 붉은털원숭이 6마리를 우주로 보냈고, 1961년 1월에는 침팬지 '햄(Ham)'이 머큐리 레드스톤 2호를 타고 우주에 갔다가 귀환했다. 그 후로도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 우주를 탐사하기 위해 많은 영장류와 인간들이 우주로 떠났다가 일부는 돌아오지 못한 채 희생되었다. <친절한 고르스키씨>는 이처럼 우주탐사 역사에서 잘 알려지지 않은 사이를 파고든다. 작품은 6·25전쟁의 트라우마에 시달리며 미국 우주발사선에 탑승한 암스트롱, 심리상담소장 미스터 킴의 이야기로, 1969년 미국의 심리상담소가 극 중 배경이다. 극 중 우주인, 한국전쟁, 심리상담소장은 연결고리가 없다. 작가 기하라는 아메리칸 드림이 좌절된 미스터 킴(최승주 분)과 한국전쟁에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해 추락 직전 낙하산으로 탈출한 전력으로 트라우마를 겪고 있는 암스트롱(강현우 분)을 극 중 인물로 배치한다. 여기서부터 작가의 상상적 허구와 실제 인물, 우주탐사의 역사적 시간들이 연결되면서 극적인 구조를 이루게 된다. 극의 설정은 이렇다. 암스트롱은 한국전쟁에서 살아 돌아온 뒤, 헤어나올 수 없는 죽음의 공포와 환청에 시달리게 된다. 마치 내림굿을 받은 사람처럼.
어린 시절 죽음의 위기마다 자신을 구해준 은인을 암스트롱은 '친절한 고르스키'로 이름 붙였다. 달착륙에 대한 공포와 두려움이 엄습하는 순간에도 고르스키는 암스트롱의 수호신이었다. 칠월 칠석 날 미스터 킴을 찾아가 이승 세계를 떠나 온전히 사바세계에 돌아갈 수 있도록 굿판을 열어달라는 고르스키의 환영에 시달리던 암스트롱이 미스터 킴을 찾아오는 것으로 극은 시작된다. 극적 설정이 여기서 끝나면 재미가 없었을까. 미스터 킴은 높은 상담료로 배짱을 부리고, 암스트롱은 달을 정복한 우주인이면서도 인간과의 소통이 불안전해 보인다. 암스트롱은 고르스키가 친절하게 알려준 탓에, 충청도의 유명 만신이자 무당으로 살아가는 미스터 킴의 동생까지 국제 전화로 소환하는데 성공한다. 국제 전화를 통해 굿판에 필요한 것들을 주문하며 대리 굿판을 벌이는 데까지, 2인극 <친철한 고르스키씨>는 좌충우돌 웃음으로 달리면서도 치유의 씻김 굿판만큼은 진지하다. 무대도 간결하다. 아메리칸 드림의 성공은 커녕 파리만 날리는 심리상담소가 무대인 만큼, 분위기는 혼령(魂靈)이 출몰할 것처럼 음산하다. 무대 중앙 우측 사선으로 탁자와 의자가 놓여있고, 그 위에는 진료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인간 뇌모형이 보인다. 좌측에는 심리치료를 하기 적합한 소파와 탁자, 대형 스탠드가 암스트롱의 수호신인 친절한 고르스키씨를 기다리고 있다.
◆ 위로와 치유의 한 판 씻김굿
연극의 시작을 알리는 안내 소리부터 미국 분위기다. "여키는 미쿡이니까. 공연 보기 전 며카지 알려 줄게 이써~~" 개그맨 샘 해밍턴처럼 서투른 한국식 영어 발음이 튀어나오면 시작부터 웃음이 터진다. 첫 장면부터 "아이 엠 스트롱. 아이 캔 두. 유 캔 두, 위 캔 두" 하며 " 친절한 고르스키씨가 미스터 킴 찾아가라고 했어요. 나, 귀신 들렸어요" 라는 등 극적 상황도 비현실적으로 흐르고 예측할 수 없는 상황으로 돌진하며 웃음이 터진다. 영화배우처럼 등장한 암스트롱은 한국전쟁에 참전해 추락하는 전투기에서 살아난 이야기를 서투른 한국말로 재밌게 털어놓는다. 죽음에서 살아난 그 시간부터 부적처럼 암스트롱의 수호신이 된 고르스키씨는 이후에도 위기마다 구원투수처럼 환청으로 나타나 "외출하지 마라, 점심은 치즈버거가 좋아, 여행은 다음 주로, 내일은 외출하지 마, 당분간 비행기는 피해, 주식은 지금 팔아" 등등 친절하게 암스트롱의 일일 점괘를 봐준다. 수영장에서 빠진 암스트롱을 구해주었던 친절한 옆집 아저씨의 이름이 고르스키였다는 설정에 극은 희극적 분위기로 흐른다.
마치 친절한 고르스키씨의 혼령에 씌어 장군신 무당인 된 듯, 암스트롱은 미스터 킴 대신 그의 동생이 무당이 된 과거사까지 척척 맞춘다. 고르스키씨가 미국과의 이별의 굿판을 벌여, 그 기운을 타고 한국으로 돌아가겠다고 한다는 것이다.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민자, 미스터 킴은 충청도에 사는 만신 동생한테 장군신을 불러 굿판을 여는 법을 배우고, 가족을 버리고 미국에 도착한 후 고군분투했으면서도 성공하지 못한 눈물겨운 자신의 이야기를 쏟아내면서 상황을 희극적으로 몰고 가는데, 두 배우의 웃음 포인트가 좋다. 고르스키가 한국 땅으로 돌아가려 벌이는 굿판은 전쟁이 야기한 죽음을 애도하고 치유하는 씻김굿이면서 평화를 기원하는 굿판이고, 지금 여기 핵미사일을 만지작거리는 분단된 한반도의 수호신이 되려는 고르스키의 '친절'처럼도 느껴진다.
암스트롱이 한국전쟁 당시 경험한 위기의 순간은 스탠드 조명으로 전투기를 놀이적으로 그려내어 표현했다. 마지막 장면, 고르스키의 마네킹에 솥두껑을 올려 장군신의 형태를 그럴싸하게 만들어냈다. 은박 호일을 구겨 장군의 칼을 만드는 등 갑옷의 느낌을 끌어낸 솜씨가 재미있다. 마지막까지도 인간에게는 친절한 고르스키씨라 하겠다. 씻김굿에 동행한 것은 우주탐사 프로젝트의 실험체였던 65호 침팬지 '햄(Ham)', 최초의 미국 우주인 에드워드 화이트, 그리고 친절했던 고르스키씨다. 무당이 된 미스터 킴 입에서 이별가가 쏟아지고, 종이 꽃가마를 태워 길닦음 씻김 굿까지 끝나면, 우주로 떠난 암스트롱과 가방 하나 달랑 들고 한국으로 돌아온 미스터 킴 사이로 침팬지 햄의 사진과 기록 영상이 투사된다. 아메리칸 드림은 좌절되어도 여전히 달을 정복하기 위한 드림은 계속된다는 듯, 우주로 향하는 미국의 우주발사체가 보인다.
한국사회는 여전히 전쟁의 불안감을 떨쳐버리기 어렵고, 세계는 우주 정복을 위한 치열한 전쟁 중이다. 암스트롱의 불안, 우울, 공포가 내면의 환영으로 존재하는 친절한 고르스키씨로 인해 위로받을 때, 전쟁 없는 평화로운 삶에 희망을 걸게 된다. 암스트롱의 수호신이 친절한 고르스키씨였다면, 한국사회의 수호신은 평화를 기원하는 우리의 마음이 아닐까. 친절한 고르스키씨의 다층적 의미와 굿판을 단순하게 넘길 수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친절한 코르스키씨>는 박혜선 연출의 무대 시각화가 장점이 된 작품으로, 작가에게 친절한 코르스키씨는 박혜선 연출이다. 12월 6일 부터 10일까지 극단 사계탐사의 탐구생활 5탄 시리즈 <퇴직면접>(박혜선 연출) <아주 흔한 사랑이야기>(김관 연출)로 선돌극장에서 두 작품을 연달아 감상 할 수 있다. 서울연극제 젊은 연극인상(2013)과 <허길동전>으로 최우수 작품상 을 수상한 김관 연출은 역사와 현재를 폭넓은 시선으로 해석하며 위트 넘치는 캐릭터로 관객을 무장 시키고 때로는 탈 일상화된 상상력으로 일상을 해석하는 만화경 같은 장면이 무대 언어가 되는 것이 장점이다. 이번 작품에서는 배우들의 연기 현존성을 확장해 두 남녀의 사랑 이야기를 진솔하면서도 위트 있게 그려내고 있다. <퇴직면접>에는 김리라, 모형주, 문창완 ,안병준 등이 출연하고, <아주 흔한 사랑이야기>에는 김난희, 김석, 김정연 등이 사랑이야기를 그려낸다.
| 박혜선, 김관 연출은
박혜선을 연출로 각인시킨 작품 <주머니 속의 돌>(작 마리존스, 2005)도 2인극이다. 극 중 인물 갑택과 진구는 엑스트라의 삶을 살면서도 찬란한 그날을 위해 전진하며 희망을 그려낸다. 이후 박혜선 연출은 <억울한 여자>(작 쓰치다 히데오, 2008)로 제45회 동아연극상 신인 연출상을 수상했다. <이단자들>(2013)로 극단 사개탐사 창단을 알렸고, 그 해 '히서연극상'을 수상했다. <티바스코>(2015), <피카소 훔치기>(2016), <어떤 접경지역에는>(2019), <이단자들>(2021), <백 년의 비밀>(인천시립극단, 2022) 등 60여 작품을 지속적으로 연출해왔다. <다이빙 보드>를 비롯해 20여 작품도 번역했다. 김관 연출은 <생존도시>, 김유정 선생의 마지막 작품 <땡볕: 길을 잃다>, <깊게 가자, 죽음의 문턱까지>, <홀스또메르>, (뮤지컬 BAD&LOW), <장미를 삼키다> 등 유시어터 상임 연출을 거쳐 폭넓은 장르를 연출해 왔다. 2003, 2008년에는 월간 한국연극이 선정하는 공연베스트 7에 선정되었다.
대경대학교 연극영화과 교수(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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