돼지고기 등급제 시행 20년…소비자는 "그게 뭐야?" 실효 있나

입력 2023-12-03 17:46:25 수정 2023-12-03 21:42:14

연간 돼지고기 등급 판정 비용 74억원, 국내 전체 축산물 등급 판정의 절반
1+, 1등급 돼지고기 찾는 소비자 흔치 않아, 판매점엔 등급 표기 판매할 의무도 없어

서울 한 대형마트 축산 코너에서 한 시민이 돼지고기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한 대형마트 축산 코너에서 한 시민이 돼지고기를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소고기처럼 돼지고기에도 육질에 따라 1+, 1등급 등이 있다. 등급 판정 비용이 연간 74억원에 이르지만 정작 소비자는 등급의 존재조차 모른다. 양돈 농가에서도 효용을 두고 이견을 보여 실효성 논란이 나온다.

28일 경북 양돈업계에 따르면 돼지고기는 축산법에 따른 등급제 의무화 대상이다. 1993년 서울부터 소고기 등급제와 함께 시행해 2003년부터 전국에서 일괄적용하고 있다. 도체중(생체에서 두부, 내장, 족, 가죽 등 먹지 않는 부위를 제외한 무게)과 등지방두께를 기준으로 4개 등급(1+·1·2·등외)을 매긴다.

돼지 사육량이 국내 축산업 절반을 차지하니 그 등급 판정 비용도 거액에 이른다.

지난해 축산물품질평가원이 징수한 국내 축산물 등급판정 수수료는 모두 114억7천만원이다. 돼지 농가에서만 74억2천만원(64%)을 걷었다. 소는 20억2천만원, 나머지 축산물은 20억3천만원이다.

이런 비용이 제 값을 하는지에 이견이 크다. 소비 시장에선 등급이 유명무실해서다.

돼지고기는 도매 단계에만 등급 표시 의무가 있고, 판매점에서는 표시 여부를 선택할 수 있다. 도축 때 등급을 매기고 나면 가공·소포장 과정에서 추가로 과지방을 없애는 등 품질·판매량을 관리하므로 등급제를 소비시장까지 연계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소고기 경우 판매점에서도 등급 정보와 마블링 지수 표시가 의무다.

소비자들도 돼지고기 등급보다는 가격을 중시한다. 돼지는 6개월 단기 사육 후 도축하므로 개체별 품질 변별력이 크지 않은 영향이다. 소는 30개월가량 기르며 마블링 등 품질을 차별할 수 있다.

이 탓에 돼지고기 등급은 농가와 가공업체 사이 원료돈 구매 단가 등 기준을 제시하는 데 그친다.

서울 한 대형마트 축산 코너 모습. 연합뉴스
서울 한 대형마트 축산 코너 모습. 연합뉴스

중소 돈육가공업체들은 실효성 낮은 등급제가 가격 경쟁력만 떨어뜨린다고 지적한다. 수요가 많은 삼겹살 중심 또는 특화품종·모돈·암수 등을 기준으로 등급제를 재편하거나, 아예 등급 의무를 없애고 자율 적용하자는 목소리도 나온다.

경북 한 돈육업체 대표 A씨는 "돼지고기 등급은 도축 이후엔 무의미하다. 1+등급을 찾아 먹는 소비자도 거의 없다"며 "판매점에서도 소비자가 원하는 부위별 양을 충족하려 1+등급에서 2등급까지 여러 등급의 돼지고기를 묶어 팔기 일쑤다. 차라리 등급 판정 비용을 아껴 소비자에게 싸게 공급하는 게 합리적"이라고 말했다.

반대로, 돼지고기 등급제의 효과를 긍정하는 목소리도 있다. 단일 브랜드로 등급별·부위별 고기를 꾸준히 판매하니 소비자 선호를 얻었다는 것이다.

송영호 문경약돌돼지 대표는 "문경약돌돼지는 이력번호와 등급을 밝혀 유통하면서 서울 등지의 많은 단골을 확보했다. 소비자 알 권리를 충족한 덕분"이라며 "1+등급, 1등급을 받는 도체는 소정의 품질고급화장려금도 받는다"고 했다.

농림축산식품부는 돼지 육질을 예측하는 지표와 등급 판정기술 개발 연구용역 등을 통해 보완책을 찾기로 했다.

농식품부 관계자는 "가공업체별 품질관리 기준·실태 등을 평가해 우수 업체를 인증하는 등 등급제 외에도 돼지고기 품질을 가늠할 방안을 찾을 방침"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