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休경북의 힐링길] 100년 달린 폐철도 걷어내고 만든 '포항 철길숲'

입력 2023-11-24 12:30:00 수정 2023-12-23 20:10:47

아기자기한 카페·맛집들 들어서며 도심 힐링 중심축

포항 철길숲 전경. 폐철도 부지였던 이곳은 도심숲으로 재탄생하며 포항시민들에게 대표 여가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포항시 제공
포항 철길숲 전경. 폐철도 부지였던 이곳은 도심숲으로 재탄생하며 포항시민들에게 대표 여가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포항시 제공

1980년대 국민학교를 다니던 어린 시절, 집 바로 앞으로는 기차가 달렸다. 지금의 포항시청이 들어선 포항 남구 대이동 인근이었다.

포스코가 들어서며 국내 최초의 기업 통근열차가 운행됐고, 해병대에 입대하는 청춘들에게는 입영열차가 달리던 철로였다.

일제강점기 시절 처음 만들어진 '동해남부선'은 약 100년간 포항지역을 관통하는 주요 교통수단이자 동네를 흉물스럽게 나누는 가림막이었다.

2015년 KTX 포항역이 들어서고 철로시설이 외곽으로 옮겨지며 동해남부선은 폐철도가 됐다. 좁다랗고 길기만 한 폐철도 부지는 개발로 쓰기에 무척 난감했다.

수년간의 논의 끝에 포항시는 이곳을 활용해 '숲을 품은 도시로 구현하자'고 결론내렸다. 그 신의 한 수는 '포항 철길숲'을 만들어 내며 현재 포항시민에게 가장 사랑받는 힐링 장소가 됐다.

포항 철길숲 전경. 폐철도 부지였던 이곳은 도심숲으로 재탄생하며 포항시민들에게 대표 여가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포항시 제공
포항 철길숲 전경. 폐철도 부지였던 이곳은 도심숲으로 재탄생하며 포항시민들에게 대표 여가 공간으로 사랑받고 있다. 포항시 제공

◆길게 뻗은 푸른 숲, 녹색 숨결을 입히다

철길숲은 북구 우현동 유성여고를 출발해 옛 포항역에서 효자교회까지를 잇는 6.6㎞구간이다. 약 12만㎡에 100여 수종, 20만여 그루의 식물들이 심어지며 말 그대로 포항의 허리를 두른 '긴 녹색 띠' 모양을 띤다.

과거에는 가로등조차 없어 인적 드문 위험한 곳이었지만, 지금은 수많은 나무와 휴식 공간이 들어서며 활력 넘치는 장소로 변모했다.

과거 포스코 통근열차가 다니던 폐철도를 중심으로 도시가 퍼져 나가다 보니 지금의 철길숲 또한 포항지역의 중심지에 해당한다. 포항시 전체 인구의 약 40%인 21만명이 철길숲에서 도보로 10분 거리에 생활하고 있다고 봐도 무난하다.

이 때문인지 철길숲은 주중 3만6천명, 주말이면 5만1천명 이상(포항시 조사·2020년 5월 기준)이 산책과 운동 등 여가를 즐기는 소통의 숲으로 자리 잡았다.

평일이면 걷거나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하며, 휴일에는 온 가족이 나와 시간을 보내는 '포항의 녹색 랜드마크'인 셈이다.

포항 철길숲의 이색 볼거리인
포항 철길숲의 이색 볼거리인 '불의 정원'. 지난 2017년 철길숲 조성 당시 지하에서 메탄가스가 분출하며 불이 붙어 최근까지 타오르고 있다. 포항시 제공

◆'불의 정원'부터 동맥처럼 이어진 숲길 산책

긴 산책길에서도 2018년 조성된 '불의 정원'은 단연 철길숲의 대표 장소이다.

2017년 3월 포항 남구 대잠동에서 철길숲 조성사업을 진행하던 중 갑자기 천연가스가 뿜어져 나와 한차례 소동이 발생했다. 천연자원에 대한 기대감이 부풀었지만, 아쉽게도 조사결과 해당 천연가스는 포항시민만 써도 채 한 달에 못 미칠 만큼 경제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지금처럼 사고 방지를 위해 그냥 불을 붙여놓는 정도라면 10년은 타오를 정도는 되기에 '불의 정원'이라는 이름의 관광 명소로 재탄생했다.

철길숲 6.6㎞ 구간은 거의 직선이지만 우습게 보면 안 된다. 남·북구를 길게 가로지르는 기다란 산책길이라 한번 걸으면 2시간은 족히 걸린다. 왕복하면 4시간도 거뜬하다는 소리다.

여기에 철길숲이 각광을 받으며 각종 카페와 맛집 등이 우후죽순으로 모여들고 있다. 말 그대로 포항 중심지 핫플레이스에 등극한 탓에 여기저기 둘러보느라 반나절 정도는 우습다.

포항 철길숲에서 만날 수 있는 휴식공간. 폐철도 부지였던 것을 알리는 기차 조형물이 분수와 함께 아기자기한 재미를 선사한다. 포항시 제공
포항 철길숲에서 만날 수 있는 휴식공간. 폐철도 부지였던 것을 알리는 기차 조형물이 분수와 함께 아기자기한 재미를 선사한다. 포항시 제공

그럼에도 더 걸을 자신이 있다면 철길숲을 중심으로 곁가지처럼 뻗어난 기타 산책길도 추천한다. 마치 동맥에서 이어진 혈관들처럼 포항의 녹색 혈류를 따라 걷는 여행이다.

올해 하반기에는 철길숲 남쪽 종점인 효자교회에서 유강 IC까지 2.7㎞ 구간에 '유강마을 상생숲길'이 추가로 조성 중이다. 형산강을 따라 거의 포항·경주 경계선까지 다다르는 길이다.

여기에 해도도시숲·연일도시숲·뱃머리마을 문화숲 등도 철길숲에서 그리 멀지 않다.

해도도시숲은 철강공단 및 형산강과 가까운 해도근린공원 자리이다. 큰 나무와 작은 나무, 꽃들을 각자 높이에 맞게 아기자기하게 배치해 나름 잘 꾸며진 정원을 걷는 느낌이다.

뱃머리마을 문화숲은 평생학습원 일원에서 형산강까지 이어진 도시숲으로 국화 등 계절마다 심어지는 꽃들을 보는 재미가 매년 쏠쏠하다.

포항 철길숲을 따라 시민들이 산책을 하며 일상 속 작은 여유를 즐기고 있다. 포항시 제공
포항 철길숲을 따라 시민들이 산책을 하며 일상 속 작은 여유를 즐기고 있다. 포항시 제공

◆도시숲 성공모델 '포항 그린웨이 프로젝트'

이처럼 철길숲의 성공과 함께 포항시는 곳곳에 미세먼지 저감 및 힐링공간 제공을 위해 도시숲을 조성하는 특별 프로젝트를 이어가고 있다. 도시재생과 녹색 도시 조성의 대표 성공사례로 꼽히는 '그린웨이'(GreenWay) 프로젝트이다.

그린웨이 프로젝트는 철강으로 대변되는 '회색빛 산업도시 포항'을 녹색 생태도시로 탈바꿈하려는 야심이 담겼다.

도심, 바다, 산이 어우러진 지리적 특성을 발전시켜 여유와 쾌적성을 기반으로 둔 미래도시를 구현하는 프로젝트이기도 하다.

철길숲은 산림청 주관 '대한민국 녹색도시 공모'에서 전국 1위(최우수상)를 수상하는 등 최근 2년간 녹색도시 분야의 권위 있는 상을 6회 수상하며 포항의 변화상을 전국에 알리고 있다.

특히, 영국 KBT 시행 녹색깃발상, UN해비타트 주관 아시아 도시경관상까지 수상하며 국내를 넘어 외국에까지 우수성을 입증받았다.

이처럼 도심 내 산업인프라 활용의 우수사례로 유명세를 타며 국내외 기관 단체 견학 방문이 끊이지 않을 정도다.

철길숲에서 자발적으로 열리는 각종 시민 참여 행사와 자원봉사단체의 환경정화 및 안전지킴활동 등도 철길숲이 얼마나 시민에게 사랑받고 있는지를 보여주는 증거들이다.

이강덕 포항시장은 "철길숲이 국내외 대표 모범도시숲으로 인증받고 있는 만큼 책임감도 크다"며 "포항 도시숲을 지속 확충해 기후변화, 불볕더위, 미세먼지 등 도시민의 건강한 삶을 위협하는 환경문제를 완화하고, 다양한 생태계 서비스를 제공하는 등 도시의 핵심인프라로서 역할을 강화하겠다"고 말했다.

포항 철길숲을 따라 시민들이 산책을 하며 일상 속 작은 여유를 즐기고 있다. 포항시 제공
포항 철길숲을 따라 시민들이 산책을 하며 일상 속 작은 여유를 즐기고 있다. 포항시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