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숙의 옛그림 예찬] <226>어해도, 길상에서 지식의 대상이 되다

입력 2023-11-17 14:06:50 수정 2023-11-20 07:37:01

미술사 연구자

장한종(1768-1815),
장한종(1768-1815), '어해도(魚蟹圖)', 종이에 담채, 102.4×47.3㎝,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버드나무와 바위가 있는 물가를 배경으로 어류를 잔뜩 그린 특이한 작품인 '어해도'다. 어해는 물고기와 게지만 어해도는 물속 생물 전체를 소재로 한 그림을 말한다. 붕어, 잉어, 쏘가리, 메기, 송사리, 피라미 등 물고기와 조개류를 비롯해 게, 새우, 거북, 자라, 가재, 문어, 오징어, 가오리, 전복, 소라 등을 어해도로 그렸다.

예로부터 어해류의 생태에 길상의 뜻을 붙이기도 하고, 이름을 상서로움과 연관시키기도 하며 그림으로 그리거나 디자인으로 활용했다. 물고기는 알을 많이 낳으므로 자손번창의 뜻으로 통했고, 눈을 항상 동그랗게 뜨고 있는데서 나의 재산을 잘 지키라는 붕어자물쇠가 나왔다.

잉어와 쏘가리는 입신출세를 의미한다. 잉어는 어변성룡의 등용문 고사로 잘 알려져 있고, 쏘가리는 한자인 '쏘가리 궐(鱖)'자가 '대궐 궐(闕)'과 발음이 같아 궐어도를 그려 출세를 염원했다. 게는 횡행거사(橫行居士), 무장공자(無腸公子)로 의인화됐다.

'물고기 어(魚)'는 '남을 여(餘)'와 중국어 발음이 같아 물고기 그림은 넉넉함과 여유를 뜻한다. 물고기 세 마리를 그리는 삼어도(三魚圖)는 삼여도(三餘圖)로 읽었다. 3가지 여유가 있으므로 독서할 시간은 충분하다는 뜻이다. 삼여란 밤, 겨울, 비 오는 날이다. 밤은 하루에서 남는 시간이고, 겨울은 농사일을 쉬는 한 해의 여분이며, 맑은 날의 나머지인 비 오는 날이 있으니 농부라도 공부할 시간이 없지 않다는 뜻이다. '삼국지·위지·왕숙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그러나 8폭 병풍화 중 한 폭인 장한종의 '어해도'는 전통적인 상징과 결이 다른 새로운 유형의 어해도다. 이 병풍은 66종 이상의 각양각색 수중생물을 나열하며 실물처럼 사실적으로 묘사해 마치 어류도감을 회화화한 것 같다.

18세기 후반부터 조선에서는 물고기든, 담배든, 비둘기든, 앵무새든, 화초든 특정한 대상에 주목해 정보와 지식을 취합하며 체계화하는 학문 경향이 전개된다. 물고기 백과사전인 어보류만 해도 김려의 '우해이어보(牛海異魚譜)'(1803년), 정약전의 '자산어보(玆山魚譜)'(1814년), 서유구의 '난호어목지(蘭湖魚牧志)'(1820년) 등의 저술이 나왔다.

도화서의 화원화가인 장한종은 어해가 특기였다. 어려서부터 숭어, 잉어, 게, 자라 등을 사와서 관찰하며 비늘과 등껍질 등을 꼭 닮게 그려 보는 사람마다 감탄했다고 '이향견문록'에 나온다.

장한종은 문인 취향의 산수를 배경으로 하면서 어해류에 대한 실증적 시각 정보를 회화로 담아냈다. 학자들의 저술 못지않게 화가들도 사물의 개별적 특수성에 대한 형이하학적 탐구라는 새로운 시대정신을 예민하게 그림에 투영했다. 장한종의 '어해도'는 지식의 대상이자 감상의 대상인 이중적 목적의 회화다.

미술사 연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