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가습기살균제 제조사가 피해자에게 위자료를 지급해야 한다고 본 하급심 판결을 확정했다. 가습기살균제 제조·판매 기업의 민사 배상책임을 대법원이 처음 인정한 것이다. 가습기살균제 사태 발생 12년 만이다. 이번 확정 판결로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폐질환 발병 사이 인과관계가 낮다고 분류된 3·4단계 피해자들도 제조·판매 기업을 상대로 손해배상을 받을 길이 열렸다.
대법원 1부는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김 모 씨가 제조·판매사인 옥시레킷벤키저(옥시)와 납품업체 한빛화학을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 상고심에서 원심의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9일 확정했다. 2심 법원은 2019년 "피고들이 제조·판매한 가습기살균제에는 설계상 및 표시상 결함이 존재하고, 그로 인해 원고가 신체에 손상을 입었다"며 위자료 500만 원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이번 대법원 판결은 가습기살균제 사용과 이로 인한 다른 질환의 발생·악화에 관한 인과관계 유무 판단은 사용자의 구체적인 증명에 따라 달라질 수 있음을 전제로 한 것이다. 피해자 김 씨의 경우 질병관리본부 조사에서 3단계 판정을 받았는데, 손해배상 소송에선 질병관리본부 판정과 별개로 인과관계를 따져야 한다는 뜻이다.
가습기살균제 사태는 2011년 영유아, 임산부 등이 원인불명의 폐 손상을 앓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불거졌다. 보건당국은 1994년부터 유통된 가습기살균제가 원인이라고 밝혔다. 정부 공식 피해자만 5천여 명이며, 신고된 사망자는 1천800명에 이른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와 가족들은 오랜 세월 동안 신체·정신적 고통이 컸고, 가정은 풍비박산이 났다. 그런데도 적절한 피해 구제를 받지 못했다. 피해자 지원은 정부 자원의 구제급여(1·2단계)와 기업 분담금 자원의 특별구제계정(3·4단계)으로 나뉘어 있다. 3·4단계 피해자는 정부 판정이 빌미가 돼 배상받기 어렵다는 문제가 제기됐다. 이번 판결은 3·4단계 피해자에 대한 기업의 배상 책임 가능성을 열어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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