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삼국 ‘스토리와 히스토리’

입력 2023-11-09 13:48:50 수정 2023-11-09 13:56:01

김동혁 소설가

김동혁 소설가
김동혁 소설가

1. 637년 5월 여름, 개구리 떼가 대궐 서쪽 옥문지에 모여드니 왕이 이를 듣고 좌우신하에게 이르기를 "개구리의 불거진 눈은 병사의 형상이라 내가 일찍이 서남쪽 변경에 옥문곡이라는 지명을 가진 곳이 있다고 들었으니 이웃 나라 병사가 이 골짜기에 잠입한 것이 아닌가 싶구나." 알천이 이를 습격하여 모두 죽였다.…

2. 영묘사(靈廟寺)의 옥문지(玉門池)에서 한겨울에 개구리들이 모여 사나흘 동안 울어댔다. 나라 사람들이 괴이하게 여겨 왕에게 물었다. 왕은 급히 알천과 필탄 등에게 정예 병사 2천명을 이끌고 서둘러 서쪽 교외로 나가서 여근곡을 물어보면 그곳에 틀림없이 적병이 있을 테니 습격하여 죽이라고 말하였다.…

같은 역사적 사건을 담고 있지만 전자는 김부식의 '삼국사기'에, 후자는 일연의 '삼국유사'에 수록된 글이다. 두 이야기는 모두 신라시대 선덕여왕의 뛰어난 혜안을 담고 있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지만 그 전달의 방법이 사뭇 다르다.

우선 사기는 사실에 바탕을 둔 정사(history)다. 물론 저술자의 역사관이나 정치 성향에 따라 진실과는 다른 방향의 의도가 피력되기는 하지만 사기에는 시간이나 공간 사건 등이 가공을 거치지 않고 기록된다. 반면에 유사는 옛 이야기(story)의 성격이 강하다. 역사적 사건이나 인물을 바탕에 두고 기록되어지는 것은 분명하지만 그 속에 담겨진 내용들은 사기에서 다루지 못하는 전설이나 신화, 우화 등이 포함돼있다. 그래서 사기보다는 읽기가 쉽고 훨씬 흥미로우며 전달력이 강하다.

여기서도 삼국사기는 정확한 연대를 명기함으로써 비현실적 요소를 최소화했으며 여러 장소를 언급하는 것이 아니라 사건에 핵심적 배경이 되는 지명만을 제시하고 있다. 또한 개구리 떼가 출몰한 사건 역시 여름이라는 합리적인 계절 속에서 이뤄져 있으므로 사건에 대한 흥미보다는 사실 그 자체를 전달하는 데 집중하고 있다는 점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사실을 가공하지 않고 말하는 이가 있는 그대로 전달하기 위해 핵심적인 요소만을 선별적으로 추려 놓은 '정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삼국사기의 글을 읽고 '왜?'라는 질문을 섣불리 던질 수 없고 글쓴이 역시 사건이 가진 인과관계를 설명할 필요도 없다.

반면 삼국유사에서는 정확한 연대기를 기록하지 않고 겨울이라는 계절적 배경만을 제시하고 있다. 이러한 겨울이라는 계절적 배경은 겨울잠을 자고 있을 개구리라는 소재와 만나면서 사실과는 동떨어진 성격을 가지게 된다. 그렇다면 일연은 왜 겨울과 개구리라는 이질적인 요소를 가져와 선덕여왕의 혜안을 소개한 것일까?

이야기는 현실을 그대로 소개할 수 없다. 일종의 가공이 필요하다. 가공은 이야기의 궁극적인 목적인 흥미를 위한 것이다. 흥미가 없는 이야기는 도태될 수밖에 없다. 그 가공의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인과관계 형성이다. 사실은 인과관계 속에서 존재할 수도 있고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이야기는 반드시 인과관계 속에서 만들어져야 한다. '한겨울에 개구리 떼가 출현해 떼로 울음을 내는 기이한 상황 속에 백성은 불안에 떨게 되고 그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여왕이 혜안을 발휘한다.' 이러한 일련의 구조는 이야기가 필수적으로 가져야 하는 인과관계를 여실히 보여준다. 말하자면 한 사건에 대해 듣는 이는 '왜?'라는 질문을 던질 수 있는 구조이며 말하는 이는 그 질문에 합당한 대답을 내어 놓을 수 있는 충분한 여건을 갖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