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줄 매세요" 애원에도 "우리 개는 안 물어요"…대구 도심공원 곳곳 '오프리쉬'

입력 2023-11-06 13:25:20 수정 2023-11-09 09:12:10

목줄 없는 오프리시견들의 행인·반려견 위협
신고·처벌 어려워 단순 계도 그치기도
배설물 치우지 않는 견주들도 문제

반려견인이 늘어나면서 공원이나 산책로에서 목줄을 하거나 배설물에 대한 에티켓 또한 중요해지고 있다.
반려견인이 늘어나면서 공원이나 산책로에서 목줄을 하거나 배설물에 대한 에티켓 또한 중요해지고 있다.

"물릴 뻔했잖아요!" . 대구 한 도심공원에서 실랑이가 벌어졌다. 그 옆으로는 목줄을 하지 않은 강아지가 잔디 위를 활보하고 있다. 견주는 되레 황당하다는 눈치다. "애가 얼마나 순하다고, 좋다고 그러는건데 팍팍하게 굴지 맙시다" 그리고 그들이 지나간 곳에는 수습하지 않은 배변물이 남겨졌다.

완연한 가을. 산책하기 좋은 날씨가 이어지며 대구 도심공원 곳곳에서 오프리쉬가 잇달아 목격되고 있다. 오프리쉬는 Off(~로부터 떨어진)와 Leash(줄)의 합성어로, 반려견이 목줄을 착용하지 않은 것을 뜻한다.

서구 이현공원을 찾은 반려동물이 목줄을 착용한 채 산책을 하고 있다.
서구 이현공원을 찾은 반려동물이 목줄을 착용한 채 산책을 하고 있다.

◆대구 도심공원 오프리쉬 너무 많아요

지난 4일 기자가 찾은 공원에도 목줄을 매지 않은 반려견의 모습이 쉽게 발견됐다. "목줄을 매라"라는 안내에도 들은 채 만 채 하는 견주가 대다수였다. 오프리쉬를 하는 이유도 다양하다. "우리 집 반려견은 콜 훈련(반려견 이름을 부르면 보호자에게 오는 행동)이 잘되어 있다" "사람이 없는 곳이라 괜찮다" "목줄 없이 자유롭게 놀라고 풀어놨다" 등이다.

하지만 견주의 답변과는 달리 이날 오프리쉬견들은 행인들의 산책을 방해했다. 어린아이들과 산책하는 부모들은 특히 신경을 곤두세웠다. 아이와 함께 산책 나온 이선민 씨는 "목줄 안한 강아지가 있으면 최대한 피하려고는 하는데 무서워요. 애들한테 달려온 적도 있었는데 그때마다 안 무니까 괜찮다는 말만 반복하시더라고요"라고 말했다.

반려동물과 함께 공원을 산책하는 시민들이 늘어나면서 반려동물의 배설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다는 민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반려동물과 함께 공원을 산책하는 시민들이 늘어나면서 반려동물의 배설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다는 민원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오프리쉬견이 남기는 배설물도 문제다. 실제 대구 북구 금호강 하중도는 2021년에 잠깐 반려동물 출입 금지가 됐었다. 펫 티켓을 지키지 않는 일부 반려인들 때문이다. 그리고 2022년 다시 반려동물 동반 출입 가능 공원으로 돌아왔지만, 일부 반려인들은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목줄을 착용하지 않고, 배설물을 치우지 않는 일부 견주들 때문에 공원이 또 언제 닫힐지 모르잖아요. 잘 이용하고 있는 반려인들 입장에서는 정말 억울합니다"

펫 티켓을 지키지 않는 일부 반려인들 때문에 하중도는 2021년 반려동물 출입 금지 구역이 됐다.
펫 티켓을 지키지 않는 일부 반려인들 때문에 하중도는 2021년 반려동물 출입 금지 구역이 됐다.

오프리쉬를 독려하는 듯한 SNS 게시글도 문제다. 달성군 세천늪테마정원은 '오프리쉬 하기 좋은 공원'이라는 별칭(?)을 가졌다. 한 커뮤니티에 "공원이 큰 원으로 울타리에 둘러쌓여져 있어 목줄 없이 산책하기 좋아요"라는 글이 올라 오면서다. 글 하단에는 "저도 가야겠어요" "목줄 빼고 자유롭게 달려봐야겠네요"라는 댓글 수십 개가 달렸다. 하지만 세천늪테마공원 입구에는 반려동물 목줄 착용 현수막이 떡하니 걸려 있다.

여기서 끝나면 다행이다. 몇 달 전 김은정 씨는 오프리쉬견에게 다리를 물려 8바늘 꿰매는 큰 수술을 했다. 막을 틈도 없이 달려오는 오프리쉬견으로부터 반려견 솜이를 지키려다 당한 일이다. 은정 씨의 반려견 솜이도 엉덩이와 뒷다리를 물렸다. 물고 놔 주지 않는 오프리쉬견의 맹독함에 솜이의 엉덩이는 움푹 파였다.

대구 도심공원 곳곳에는 펫티켓 현수막이 붙었다. 반려동물 산책 시에는 목줄 착용, 배변봉투 챙기기는 필수다.

솜이는 그 이후 심각한 트라우마를 겪고 있다. 강아지가 보이기만 해도 짖고, 자신을 물었던 오프리쉬견과 비슷한 강아지를 보면 발작을 일으킨다. 사망 사고도 비일비재하다. 김다솔 씨는 반려견과 함께 산책을 하다 오프리쉬견에게 공격을 당해 한 마리는 폐 기흉으로 사망하고, 나머지 한 마리는 심각한 사고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

오프리쉬견 교통사고도 종종 일어난다. 최근 수성못을 찾은 김동근 씨는 끔찍한 장면을 목격했다. "수성랜드 길 옆은 바로 작은 차도라 항상 우회전하는 차들이 지나다녀요. 근데 그쪽으로 가는 길에 경찰차랑 사람들이 모여있기에 가봤더니 한 아주머니가 허스키 시체를 안고 엉엉 울고 계시더라고요. 애가 신나하길래 2분 정도 목줄을 풀어줬는데 사고가 났다고 했어요". 오프리쉬로 다니다가 교통사고가 나면 사고의 과실은 강아지 보호자에게 있다. 때문에 치료비 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물론 차량 손해를 배상해야 할 수도 있다.

◆신고 체계 복잡한데다 처벌도 어려워

동물보호법 시행 규칙 '제12조' 개정에 의하면 공용 시설 내에서 보호자는 반려견을 안거나 2M 이내의 목줄을 착용하여 잡고 있어야 한다. 위반 시에는 1차 20만 원, 2차 30만 원, 3차 50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또한 타인에게 상처를 입힐 시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천만 원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으며, 사고로 인한 사망 시에는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의 벌금이 부과될 수 있다.

오프리쉬견에게 물린 반려동물의 모습. 해당 반려동물은 물림사고 이후 오프리쉬견과 비슷한 강아지만 봐도 발작을 일으킨다.
대구 도심공원 곳곳에는 펫티켓 현수막이 붙었다. 반려동물 산책 시에는 목줄 착용, 배변봉투 챙기기는 필수다.

하지만 이 같은 동물보호법이 개정됐음에도 오프리쉬견이 제대로 된 처벌을 받기는 힘들다. "비유 대상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오프리쉬는 뺑소니 같아요. 저랑 제 강아지도 오프리쉬견에게 물렸지만, 견주와 강아지가 도망가고 나니 처벌할 수 있는 방법이 없더라고요" 오프리쉬 사고를 당한 김예은 씨는 몇 달째 가해자를 찾는 중이다. 목격자를 찾는다는 현수막까지 붙였지만 연락은 오지 않고 있다.

오프리쉬견과 견주가 도망가지 않더라도 신고를 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신고 체계가 꽤나 까다롭기 때문이다. 우선 신고를 위해서는 당시 현장에 있는 오프리쉬견과 견주의 모습을 담은 사진 혹은 영상이 필요하다. 이 때문에 몇몇 견주들은 아예 반려견의 목줄에 액션캠을 달고 다니기도 한다.

하지만 증거가 있다고 해서 벌금을 부과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견주의 이름, 주소, 전화번호 등 신원 조회가 되어야 처벌이 가능하기 때문. 가해자가 자신의 신상을 떡하니 내놓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목줄을 채워라'라는 말만 해도 돌아오는 것은 쌍욕이나 위협적 태도이니 신고는 꿈도 못 꾸는 실정이다.

오프리쉬견에게 물린 반려동물의 모습. 해당 반려동물은 물림사고 이후 오프리쉬견과 비슷한 강아지만 봐도 발작을 일으킨다.
오프리쉬견에게 물린 반려동물의 모습. 해당 반려동물은 물림사고 이후 오프리쉬견과 비슷한 강아지만 봐도 발작을 일으킨다.
반려인과 반려동물이 수성못 산책을 하고있다. 산책 시 반려동물은 목줄을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오프리쉬견에게 물린 반려동물의 모습. 해당 반려동물은 물림사고 이후 오프리쉬견과 비슷한 강아지만 봐도 발작을 일으킨다.

물림 사고가 없다면 단순 계도로 끝나기도 한다. "매번 지나다니는 가게 주인이 강아지를 풀어놓고 키우더라고요. 밖에 혼자 돌아다니기도 하고요. 꽤 큰 개인데 말이죠. 그래서 사진을 찍어 국민신문고 앱에 신고를 했어요. 가게 주소 등 소재지도 정확히 기재했고요" 그로부터 2주 후에야 연주 씨는 민원 처리 결과를 받았다. 목줄 등 안전 조치를 해야함을 안내했다는 내용이다. 하지만 벌금이나 다른 법적 조치는 전혀 이뤄지지 않았다.

이러한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큰 사고가 나야 법적 조치가 가능한 거냐"라는 볼멘소리도 나온다. 괜히 신고했다가 싸움만 난다며 피하는 게 상책이라는 대처법까지 거론된다. 자치구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대구시와 각종 구·군에 따르면, 공원 내 목줄 미착용 시 5만 원의 과태료가 부과되지만 현장 단속이 쉽지 않아 처벌이 어려운 실정이다. 이에 현장 계도와 목줄 착용 현수막·안내판 설치, 반려인·비반려인 공생 캠페인 등을 실시했지만 주민 간 충돌은 끊이지 않고 있다.

반려인과 반려동물이 수성못 산책을 하고있다. 산책 시 반려동물은 목줄을 반드시 착용해야 한다.

◆반려동물 전용 공간을 이용하세요

"오프리쉬를 하고 싶으면 반려동물 전용 공간을 찾으면 되지 않을까요". 반려동물 가구가 늘어나면서 각 지자체는 전용 공간 조성에 힘을 쏟고 있다. 대구 달서구청은 '반려동물 놀이터' 설치에 속도를 내고 있다. 장동공원에 추진중인 이 사업은 대구 1호 반려동물 놀이터로 기대를 모으고 있다. 남구도 앞산 골안골 해넘이캠핑장에 반려동물 관련 시설을 조성 중이다.

전국 최대규모 반려견 테마파크 의성펫월드도 있다. 의성펫월드는 지난해에만 1만5100명 반려 동물 가족과 8912마리가 넘는 반려동물이 다녀갔다. 구미시도 2025년까지 '반려동물 실내·외 놀이터' 설치를 위해 77억2000만원 예산을 집행한다는 계획이며, 경주시는 지난 6월 위덕대와 반려동물 테마파크 조성을 위한 협약을 했다.

반려동물 산업이 발전하고, 지자체의 지원이 잇따르더라도 반려인의 인식 개선이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실제로 반려동물 전용 공간에서 마음 편하게 반려견의 목줄을 풀어도 되지만 그곳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한 책임 또한 보호자에게 있다.

기자가 공원을 찾았던 지난 4일, 오프리쉬견도 있었지만 펫티켓을 지키는 반려인도 많았다. 맹견이 아님에도 입마개를 착용한 반려견. 다른 반려견의 배변까지 치우는 반려인. 줍깅독(쓰레기 주으면서 산책하는 강아지)을 하는 반려인. 그리고 이들은 한목소리로 말했다. "몰상식한 오프리쉬견도 있겠지만, 저희같이 펫티켓 지키는 반려인들이 더 많아요. 이 기사를 통해 오프리쉬가 얼마나 위험한지 알려졌으면 좋겠네요. 그리고 부디 신고 체계를 보완해서 오프리쉬를 하면 엄중한 처벌이 내려졌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