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양호 서울시립대학교 교수
긴 추석 연휴에 짧게 싱가포르 여행을 다녀왔다. 주인이 오랜만에 해외로 나갔더니 그동안 뒷주머니에서 잘 자고 있던 지갑도 외출을 해 버렸다. 바로 기내에서 발견된 덕에 카드 분실신고 절차 없이 상황이 종료되었다. 다행이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싱가포르 여행 추억은 주마등처럼 지나가 버렸지만, 지갑을 돌려받으러 방문한 여행사 사무실에서 MZ세대 직원의 첫 질문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무슨 브랜드의 지갑을 잃어버리셨나요?"
수년간 함께 살아온 내 지갑의 브랜드조차 몰라 즉답을 하지 못하고 순간적으로 당황했다. 지갑을 잃어버린 사실을 막 알아차리고 망연자실했던 바로 그 느낌이었다. 우리 때에는 지갑의 색상과 모양을 보고 구입했는데, 요즘 젊은이들은 남에게 잘 보이지도 않는 지갑조차 브랜드를 보고 구입하는 모양이다. 싱가포르와 한국이 많은 차이가 존재하듯이 나와 젊은이의 세대 간 간극도 무시할 수 없는 모양이다.
싱가포르는 말레이계, 중국계, 이슬람계, 유럽계의 다양한 인종들이 모여 사는 다민족국가이다. 그러면서도 1인당 소득 기준으로 우리보다 훨씬 잘사는 도시국가이다. 여행 내내 싱가포르의 성장에 대해 곰곰 생각해 봤는데 아마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이를 조화와 공존으로 승화시키는 지혜가 그 원동력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껌을 씹거나 버리면 처벌받는 엄격한 규칙과 철저한 법 집행도 다양한 사람들이 공존하기 위한 기초가 되었을 것이다.
싱가포르에는 리버 원더, 가든즈 바이 더 베이, 센토사섬, 마리나 베이 샌즈 호텔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관광 명소들이 많다. 모두 외국인 관광객까지 염두에 둔 글로벌 규모라는 점과 다른 곳에서 볼 수 없는 저마다의 독특함을 지녔다는 특징이 있다. 수상 보트나 이층 버스를 타고 시내 투어를 할 때 만나는 건물들도 마찬가지다. 동일한 형태의 사각 모양 아파트만 가득한 서울과는 큰 차이가 난다.
이번 여행의 가장 큰 교훈은 이젠 우리에게도 다양성 추구가 절대적 명제로 다가왔다는 점이다. 학생들을 성적이라는 하나의 잣대로 줄을 세울 것이 아니라 달리기, 피아노, 춤, 노래, 독서, 게임 등 수많은 줄을 만들어야 한다. 다른 것을 본뜬 비슷한 모양의 건물은 건축허가를 내주지 말아야 한다.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변화를 이끄는 사람들이 존중과 보상을 받아야 한다. 자신만의 브랜드를 만들어 가야 하는 시대이고, 좋은 브랜드의 상품을 먼저 사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논어에 '군자는 화이부동(君子 和而不同)이요, 소인은 동이불화(小人 同而不和)'란 말이 있다. 군자는 조화를 추구하고 획일적이지 않은 반면에, 소인은 획일적이고 조화를 추구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나와 다름을 인정하고, 다양성을 존중하며, 다양성에서 새로운 가치를 찾아가는 군자의 자세가 오늘날 우리에게도 절실하게 요구된다는 것이다.
이 말을 개인이나 국가의 경쟁력 측면에서 풀이해 보자. 개인적 측면에서 보면 몇 가지 잘하는 기술이나 재주를 키워 가면서 이를 잘 조화시킨다면 나만의 독특한 경쟁력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융합의 시대이기 때문이다. 국가적 측면에서 본다면 다양한 배경이나 국적의 외국인을 적극 받아들이고 이들을 인정하고 존중하며, 각자의 장점을 섞고 승화시켜 성장의 원동력으로 키워 나가야 한다. 현재처럼 인구의 절대 규모가 감소하는 경향을 원천적으로 돌이키지 못한다면 다른 좋은 대안은 없어 보인다.
내가 맡은 산학협력 분야도 마찬가지다. 대학이 잘하는 것도 있고 기업이 강점을 가진 분야도 존재한다. 어떤 것은 선진 외국과의 협력을 통해 성장해 나가야 한다. 먼저 자신의 강점 분야를 찾고 더욱 개발해 나가면서 타인의 강점 분야와 결합해 시너지를 내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 모든 것의 출발점은 열린 마음이다. 나와 다름을 틀림으로 매도할 것이 아니라 이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방법을 고민해 나가는 자세부터 가다듬었으면 좋겠다. 인천공항에 도착하면서 제일 먼저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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