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시동생의 성관계 협박, 침묵했던 시댁… "이젠 사람이 무섭습니다"

입력 2023-10-31 06:30:00 수정 2023-11-13 07:40:53

가난한 형편에 친척집서 식모살이하다 보육원 생활, 20살에 도망치듯 결혼
틈만 나면 덮치려 하는 시동생, 방관하며 부부관계 요구하는 남편 '트라우마'
시댁 가출 후 떠돌이 생활, 지적장애로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며 상처만 쌓여

지난 27일 최연희(가명·54) 씨가 산소발생기를 착용한 채로 자신의 집 침대에 누워있다. 윤정훈 기자
지난 27일 최연희(가명·54) 씨가 산소발생기를 착용한 채로 자신의 집 침대에 누워있다. 윤정훈 기자

네모난 화면 속 세상은 늘 사람들로 가득하다. 채널을 돌릴 때마다 다양한 상황에 부닥친 다양한 사람들이 등장한다. 오늘도 최연희(가명·54) 씨는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우리에 갇힌 맹수를 보는 기분으로 TV를 보고 있다. 현실 속 사람들은 언제나 연희 씨를 위협하고, 괴롭히고, 차가운 말로 아프게 했지만, TV 속 사람들은 연희 씨에게 그 어떤 위해도 가하지 않았다. 퀴퀴한 안도감을 느낀다. 그것도 잠시, 안도는 고독으로 변해 연희 씨를 덮친다. 미래에 대한 끝없는 불안도 함께 밀려온다. 물에 빠져 튜브를 찾는 사람처럼 황급히 휴대전화를 켠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어요... 너무 힘들어요'

입력을 마쳤으나 정작 문자를 보낼 이가 없다. 수취인 불명으로 남은 문자를 보고 있자니 헛웃음이 났다. 그토록 사람이 싫어서 달아났는데, 또다시 사람을 원하고 있다. 대책 없는 고독에 가슴이 답답해지는 연희 씨였다.

◆홀어머니 아래서 태어나 어린 시절부터 식모살이

12살이 되던 해 연희 씨는 오빠와 함께 서울에 있는 먼 친척집으로 보내졌다. 남의 집 식모살이를 할지언정 더 이상 자식들 배를 굶길 수 없다며, 어머니가 결정한 일이었다. 그러나 어머니가 그리운 건 어쩔 수 없었다. 연희 씨는 어느 날 밤 '엄마에게로 가자'는 오빠를 따라 몰래 친척집을 나왔다. 하지만 오누이는 엄마를 찾을 수도, 친척집으로 돌아올 수도 없었다. 열흘 동안 길을 헤매던 오누이는 경찰을 통해 한 보육원에서 생활하게 됐다. 거기서도 오래 있지는 못했다. 연희 씨와 오빠의 지능이 낮다고 판단한 보육원 측에서 이 둘을 지적장애 전용 특수 보육원으로 보낸 것이었다.

보육원 생활은 끔찍했다. 보육원 직원들은 연희 씨처럼 장애 정도가 심하지 않은 아동들에게 정도가 심한 아이들 목욕이나 청소 등 자기들이 해야 할 일을 시키곤 했다. 또한, 원할 때마다 교회에 갈 수 있었던 일반 보육원과 달리 이곳은 외출이 자유롭지 않아 마치 감옥처럼 느껴졌다. 20살이 되자 연희 씨는 보육원에 정기적으로 오던 봉사자로부터 한 남자를 소개 받았다. 연희 씨보다 13살이나 많고, 첫인상도 별로였지만 그와 결혼하기로 했다. 그만큼 이곳에서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컸기 때문이었다.

도망친 곳에 낙원은 없다지만, 더 심한 지옥이 있을 줄 몰랐다. 결혼 후 연희 씨는 시댁에서 시어머니와 남편, 그리고 시동생과 함께 살았다. 연희 씨보다 나이가 많고, 장가를 가지 못한 시동생은 틈만 나면 연희 씨에게 성관계를 시도하려 했다. 그는 농사에 쓰는 낫, 꼬챙이 등을 들고 부부가 자고 있는 침실에 들이닥쳐 연희 씨에게 성관계를 하자며 협박하기도 했다. 그곳에 연희 씨의 편은 없었다. 집안에서 유일하게 시동생만이 농장비를 다루고 글을 읽을 줄 알았기에 남편과 시어머니도 시동생에게 꼼짝을 못 했다. 시어머니는 그저 '너만 입 다물면 된다'고 연희 씨에게 함구할 것만 강요했다. 남편이라는 사람은 연희 씨를 지켜주지는 못할망정 쉴 새 없이 부부관계를 요구하기만 했다. 연희 씨가 둘째 출산 후 병원에서 돌아와 몸이 안 좋았을 때도 남편은 그랬다.

◆보육원 탈출 위해 택한 결혼은 더 끔찍… 지금은 트라우마 안고 독거 중

시댁 탈출을 결심한 건 28살쯤이었다. 친정어머니가 전신 화상을 입는 사고를 당했다. 연희 씨는 연락받은 날 곧장 밤 기차를 타고 병원에 도착해 밤새 어머니를 간호했다. 다음날 시댁에서 전화가 왔다. 수화기 너머로 어머니에 대한 안부는커녕 '간호할 사람이 니밖에 없냐'는 호통이 들려왔다. 시댁의 배려 없는 모습에 온갖 정이 다 떨어진 연희 씨는 그 길로 시댁과 연을 끊었다. 이후 연희 씨는 파출부, 여관 청소, 식당 설거지 등 여러 숙식 제공 일자리를 전전하며 떠돌이 생활을 했다. 하지만 지적 장애로 인해 업무 처리 속도가 느려 직장 동료들과 자주 마찰을 겪고, 직장을 그만두는 일이 잦았다. 사람에게서 받은 상처와 무력감, 그리고 고독이 연희 씨를 끝없이 괴롭게 만들었다. 사이다에 농약을 섞어 마시는 등 극단적 선택을 시도하기도 했다.

어머니 장례를 치른 그해 가을, 연희 씨는 40살쯤 대구로 이사 왔다. 홀로 비좁은 원룸에 틀어박혀 기초생활수급비로 연명하고 있는 연희 씨. 이 최소한의 생활조차 건강상 문제들로 위협받고 있다. 가장 큰 문제는 어금니가 하나도 없어 음식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한 다는 것이다. 앞니로 음식을 씹어야 하는데 두 앞니마저 틀어져 제대로 음식을 먹을 수 없다. 죽 같은 음식밖에 못 먹는데 죽값도 만만찮아 물에 밥을 말아 먹거나, 아예 끼니를 거를 때가 많다. 임플란트를 해야 하지만 치아 하나에 180만원이나 들어 엄두도 못 낸다.

여기에 어린 시절부터 앓아왔던 천식으로 늘 가슴 답답함, 호흡 곤란 등에 시달려 산소발생기를 늘 달고 살아야 한다. 대구에 왔을 때부터 류머티즘 관절염으로 두 무릎 통증이 심해져 일주일에 2~4번 정형외과를 방문해 주사도 맞고 있다. 오랜 독거생활로 정신 건강도 나날이 악화되고 있다. 우울증으로 한 달에 1번씩 정신과를 방문해 약을 지어 먹고 있지만, 과거의 트라우마는 쉽게 지워지지 않았다.

오늘도 홀로 침대에 누워 시간을 보내고 있는 연희 씨. 극심한 고독이 온몸을 비틀어 온다. 밖으로 나가볼까 싶다가도 지나가는 남자들의 얼굴을, 그 위에 겹치는 수많은 시동생의 얼굴을 마주할 자신이 없어 포기한다. 연희 씨가 의지할 수 있는 건 방 한편에 놓인 산소발생기, 그것밖에 없었다.

*매일신문 이웃사랑은 매주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소중한 성금을 소개된 사연의 주인공에게 전액 그대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개별적으로 성금을 전달하고 싶은 분은 하단 기자의 이메일로 문의하시길 바랍니다.

※ 이웃사랑 성금 보내실 곳

대구은행 069-05-024143-008 / 우체국 700039-02-532604

예금주 : (주)매일신문사(이웃사랑)

▶DGB대구은행 IM샵 바로가기

(https://www.dgb.co.kr/cms/app/imshop_guide.html)

https://www.dgb.co.kr/cms/app/imshop_guide.html

[지난주 성금내역]

◆남편 수면 중 심장마비로 눈감고 기초생활수급자 신세에 갈수록 폭력 성향 짙어지는 자폐 아들 키우느라 힘겨운 임숙현 씨에게 2,149만원 전달

남편이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뒤 갈수록 폭력 성향이 짙어지는 자폐 아들을 홀로 키우느라 힘겨운 임숙현 씨에게(매일신문 10월 17일자 10면) 씨에게 2천149만4천원을 전달했습니다.

이 성금엔 ▷대구경북서예가협회 15만원 ▷서성상회(박형근) 2만원 ▷박종천 5만원 ▷이상준 5만원 ▷이서연 3만원 ▷신종욱 2만원 ▷김갑용 1만5천원 ▷강병구 1만원 ▷김성옥 1만원 ▷'도영유준' 2만원 ▷'김명숙도움' 3천원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어린 시절 두 차례 화재 겪으며 가난하게 자라 지금도 목욕탕 일하며 힘겹게 홀어머니 모시고 있는 계보영 씨에게 2,266만원 성금

어린 시절 두 차례 화재를 겪으며 가난하게 자라 지금도 목욕탕에서 일하며 힘겹게 홀어머니 모시고 있는 계보영 씨(매일신문 10월 24일자 10면)에게 48개 단체, 121명의 독자가 2천266만1천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에스엘(주) 200만원 ▷피에이치씨큰나무복지재단 200만원 ▷건화문화장학재단 150만원 ▷(주)대구은행 100만원 ▷빛명상본부 60만원 ▷(주)태원전기 50만원 ▷세무법인송정김천2 50만원 ▷신라공업 50만원 ▷한라하우젠트 50만원 ▷㈜태린(윤남귀) 45만원 ▷최상규이비인후과 40만원 ▷㈜신행건설(정영화) 30만원 ▷한미병원(신홍관) 30만원 ▷(주)동아티오엘 25만원 ▷구미현대병원 25만원 ▷㈜백년가게국제의료기 25만원 ▷금강엘이디제작소(신철범) 20만원 ▷대백선교문화재단 20만원 ▷대창공업사 20만원 ▷(주)구마이엔씨(임창길) 10만원 ▷(주)삼이시스템 10만원 ▷(주)우주배관종합상사(김태룡) 10만원 ▷(주)이구팔육(김창화) 10만원 ▷경주천마운전전문학원 10만원 ▷김영준치과의원 10만원 ▷달서구약사회 10만원 ▷대구동양자동차운전전문학원(최우진) 10만원 ▷두드림정신건강의학과의원(정진영) 10만원 ▷세움종합건설(조득환) 10만원 ▷신성산업(김용환) 10만원 ▷이재만 대구지방세무사회 회장 10만원 ▷창성정공(허만우) 10만원 ▷국제정밀(김용근) 5만원 ▷베드로안경원 5만원 ▷선진건설(주)(류시장) 5만원 ▷세무사박장덕사무소 5만원 ▷우리들한의원(박원경) 5만원 ▷이전호세무사 5만원 ▷전피부과의원(전의식) 5만원 ▷채성기약국(채성기) 5만원 ▷칠곡한빛치과의원(김형섭) 5만원 ▷피땀눈물(로지스올) 5만원 ▷흥국시멘트 5만원 ▷국선도풍각수련원 3만원 ▷매일신문구미형곡지국(방일철) 3만원 ▷청산(우창하) 3만원 ▷사단법인대한민국힐링문화진흥원 1만원 ▷하나회(김미라) 1만원

▷도경희 200만원 ▷김상태 이정추 각 100만원 ▷김진숙 50만원 ▷성현탁 이신덕 각 30만원 ▷김신영 김옥선 박철기 각 20만원 ▷곽용 구자규 김명숙 김형희 박창서 안성희 조득환 최창규 허정원 각 10만원 ▷김석진 김순향 변대석 신광련 안대용 이경자 이종하 이진술 임채숙 전우식 정원수 최상수 최영철 최한태 각 5만원 ▷나선희 3만3천원 ▷강민주 권규돈 김태욱 변현택 안정원 윤선희 이서연 이석우 임경숙 전연수 조진우 최춘희 각 3만원 ▷이병규 2만5천원 ▷공성창 권오영 김은영 박기영 서숙영 안현준 유명희 이재민 이재열 이해수 정주현 조혜란 천정창 최선태 각 2만원 ▷최정원 최지원 각 1만5천원 ▷권오현 권유진 김경진 김다영 김덕우 김삼수 김성진 김외년 김종식 김태상 김태천 박건우 박미화 박인배 박홍선 안영숙 우순화 우철규 유귀녀 이대성 이서영 이영수 이운대 이준수 이준우 이현민 정서원 정혜원 조영식 지호열 최경철 한정화 각 1만원 ▷문민성 9천원 ▷류시배 윤인주 이순덕 이진기 조철제 각 5천원 ▷권두영 김진욱 각 3천원 심금자 이현주 조규범 최연준 각 1천원

▷'범물동김선우' '사랑나눔624' '주님사랑' 각 10만원 ▷'익명' 3만원 ▷'반규민1009' '석희석주' '선재' '조희수힘내세요' '지현이동환이' '힘내세요' 각 1만원 ▷'민' '성금' '수 ' 각 5천원 ▷'지성이' '채영이' 각 2천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