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천후에서도 시야 확보 가능한 고화질 단파적외선 센서 세계 첫 개발

경북대 전자공학과는 한 때 고려대 법학과·연세대 경영학과·한국외국어대 영어과와 더불어 대한민국 4대 명문학과로 불렸다. 반도체로 상징되는 '한강의 기적'을 일군 숱한 예비 산업전사(戰士)들이 대구시 산격동에서 우글거렸다. 서울대를 제외하고, 포스텍이나 카이스트가 생기기 전의 일이니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한동안 과거 명성을 찾지 못하는 듯 했는데 새까만 후배가 그 빛나는 전통을 되살렸다.
주인공은 악천후에서도 시야 확보가 가능한 고화질 단파적외선 센서를 세계 처음으로 개발한 이지원 한양대 에리카캠퍼스 나노광전자학과 교수. 그는 경북대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출신으로 벨기에 연구팀을 이끌어 최근 획기적인 작품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했다. 연구 성과는 '네이처 일렉트로닉스'에 게재돼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이 교수는 "국내 이미지 센서 기술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며 "한국의 이미지 센서 기술이 세계 1위가 되도록 관련 분야의 뛰어난 연구 인력을 많이 양성하겠다"고 다짐했다. 대학 후배들을 향해선 넓은 시야를 갖고 도전하라고 응원했다.

-단파적외선 대역의 카메라 기술 개발 의미는?
▶달빛조차 없는 어두운 밤에 시야를 확보하고 선글라스를 투과해 운전자의 시야를 확보하는 장점이 있어 차량용 등에 널리 쓰일 수 있다. 특히, 디스플레이 하부에서 영상획득이 가능해 소비재 활용에 각광 받는다. 이런 볼륨 마켓에서 응용 가능성이 커 수년 내 관련 시장이 수조 원대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 비싼 가격으로 인해 국방 같은 제한적 분야에만 활용이 가능했던 단파적외선 카메라를 저가격 고화질로 구현하는 길을 열었다는 데 의의가 있다.
-구체적 기능에 대해 설명해 달라.
▶기존 단파적외선 카메라에 주로 사용되어 오던 III-V족 반도체 물질은 대단히 비싸다. 공정 가격 또한 높아 해당 기술 기반의 카메라는 대체로 수천만 원 이상이다. 물론 최근에 실리콘 웨이퍼 상에 양자점을 집적하는 방식으로 초저가격의 단파적외선 카메라를 구현하는 기술이 개발돼 관심을 받고 있긴 하다. 하지만 열악한 잡음성능 때문에 고화질로 구현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저희는 양자점과 실리콘의 동시 집적에 더해 디스플레이의 구동에 널리 사용되는 산화물 반도체를 추가로 함께 덧붙여 암부 잡음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전압 고정형 수광 다이오드 픽셀 구조 기술을 최초로 확보했다. 단파적외선 시장에서 양자점 기반의 카메라가 승기를 잡는데 핵심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한다.
-상용화는 언제 가능한가?
▶해당 기술 기반으로 실제 카메라를 구현해 시연되는 최고 수준의 기술 성숙도를 보이고 있어 상용화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고 판단된다. 다만, 기술의 추가 최적화나 차량용 또는 소비재 응용의 높은 신뢰성 요구 수준의 확보, 실제 시장이 열리는 시점을 감안하면 몇 년 이후로 보는 게 합당할 것이다.
-기술 개발을 한 계기는?
▶삼성에서 재직하다가 벨기에 반도체연구소인 IMEC으로 이직해 양자점 기반의 단파적외선 카메라 개발을 맡았다. 양자점 기반의 단파적외선 카메라 기술을 선도하며 높은 수준으로 개발해 내는데 성공하기는 했지만 경쟁 기술인 III-V 기반 카메라 대비 열악한 화질로 응용에 한계가 있는 게 늘 아쉬웠다. 개방형 혁신이 뿌리내린 선진연구소에서 최고 수준의 다양한 기술을 접할 기회를 가졌고, 불현듯 경쟁 기술보다 우위에 설 단파적외선 카메라 아이디어를 고안해 개발에 뛰어 들었다.
-난관은 없었나?
▶아. 사실 다양한 신기술을 접목해 높은 수준의 성숙도로 완성해 내는데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었다. 다양한 팀과 협의하고 협력을 이끌어 내야 했고, 직접 펀딩과 개발 인력을 구해야 했다. 여러 노력 끝에 IMEC의 CEO인 루크 반 덴 호브를 상대로 해당 기술 개발의 지원을 받기 위한 프레젠테이션 기회를 얻었고, 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면서 급물살을 탔다. 아이디어 착안에서 구현에 3년 넘게 걸렸다. 논문으로 제출해 최종 출판하는 동안 1여년의 시간이 추가로 드는 대장정이었다고 표현하고 싶다.
-공동연구에 나선 벨기에 IMEC에 대해 소개해 달라.
▶IMEC은 Interuniversity Micro-Electronics Center의 약자다. 1984년 대학연구소로 출발해 현재 세계 최고의 반도체연구소로 명실상부하게 자리매김한다. 성공적인 반도체 테스트 베드로서 삼성과 하이닉스·TSMC·인텔·애플·구글·ASML같은 기업이 고객이다. 극자외선 노광(EUV) 기술 개발 또는 초미세 반도체 공정 개발 등에 있어 선구적인 역할을 한다. 최첨단의 반도체 팹을 구비하고 있으며 현재 약 90개국 5천 500여명의 연구원들이 몸담고 있다. 또 모태인 루벤카톨릭대학교의 교수와 학생들이 상주하며 공동연구를 수행하는 등의 학·연·산 협력의 모범사례로 손 꼽힌다.
-IMEC의 국내 유일 객원교수로서 활발한 공동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시너지는?
▶대학에서 쉽게 접하기 힘든 선단 공정에 대한 접근이 수월하고, 반도체 분야 최고의 연구원들과 공동 작업으로 완성도 높은 반도체 연구가 가능하다. 공동 학위 수여 또는 인턴 십 기회, 공동연구를 매개로 학생들에게 한 차원 다른 수준의 연구를 경험하도록 해 더 폭넓은 연구와 진로 기회를 제공한다고 자부한다.
-계획이 있다면?
▶국내 이미지센서 기술의 성숙에 기여하고 싶다. 한국은 오랜 기간 일본에 밀려 만년 2위 신세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국내에 이미지센서 연구를 활발히 수행하는 뛰어난 교수님들이 계시다. 하지만 이미지센서 소자의 특성과 픽셀 설계의 연구 기반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한국의 이미지센서 기술이 세계 1위가 되도록 관련 분야의 탁월한 연구 인력을 양성하는데 이바지하겠다는 다짐을 한다. 머지않은 미래에 직접 개발한 기술로 스스로 창업해서 크게 한번 키워보고자 하는 마음도 있다.
-교수로서 하루 일과는?
▶지난해 임용돼 1년이 조금 넘은 새내기다. 아직 서툰 면이 …. 그래서 아침 일찍 출근해 강의를 준비하고, 학생들을 지도하고, 직접 연구를 수행하며, 새 연구 과제를 구상하다보면 거의 매일 늦은 시간에 퇴근한다. 운이 좋아 자질 있는 석·박사 학생을 예상보다 많이 모집했고, 훌륭한 선·후배님과도 교류하며, 연구비 수주도 순조로운 편이다. 다 함께 매일매일 성장해 나가고 있는 것 같아 하루하루 즐겁게 생활한다.
-경북대 전자과 후배들에게 팁을 준다면
▶좀 더 넓은 시야를 가지고 도전하기를 추천한다. 경북대 전자과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명문학과이며 실제 현업에서 높은 수준의 역량을 자랑한다. 자신감을 가지고 다양한 가능성을 시험해 보면 생각 이상으로 더 많은 기회가 있다는 걸 알게 될 것이라고 자신한다.
◆이지원 교수 누구
수조 원 대 신시장 개척의 길을 열어가는 이 불혹(不惑)의 R&D(연구·개발) 벌레는 대구가 고향으로 경북사대부고와 경북대 전기·전자·컴퓨터 공학부를 졸업했다. 삼성에서 산학 장학금을 받아 카이스트에서 석·박사를 한 자수성가형이다. 부모들이 힘들어하던 IMF 구제금융시기를 스스로 보란 듯 이겨냈다. 대학 때는 전액 국비 지원을 받아 6개월간 미국 시카고 소재 IIT에서 교환학생으로 다양한 경험을 쌓았다.
어릴 때부터 과학자가 꿈이었다. 백과서적류의 책에서 지식을 얻었고, 특히 수학을 좋아해 어려운 문제들을 풀면서 즐거움을 느끼곤 했다.
삼성전자 책임연구원을 거쳐 IMEC 책임연구원·리더·수석연구원을 지냈다. 12개의 해외특허 (미국 10개·중국 2개)와 7개의 국내특허를 보유하고 있다. 네이처 일렉트로닉스 논문 포함 12개의 주저자 SCI 논문이 있으며 삼성 논문상 동상 (2014년)과 ISOCC 칩 디자인 콘테스트 은상 (2012년)을 수상했다.
어릴 때와 마찬가지로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걸 좋아한다고. 부모님께 자주 전화를 드려 바쁘다는 핑계로 고향에 자주 가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랜다고. 방학이면 객원연구원으로 있는 IMEC에서 가족의 항공·체재비를 지원해줘 연구휴가를 함께 떠나는 따뜻한 가장(家長)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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