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읽은 책] 우리도 동물 세계의 일부다

입력 2023-10-26 09:32:11 수정 2023-10-28 06:48:15

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케이틀린 오코넬/ 이선주 옮김/ 현대지성/ 2023)

얼마 전, 갓 돌이 지난 조카와 처음으로 만났다. 낯설어 겁먹을까 봐 몸을 작게 구겨 양손을 흔들고 높은 목소리로 인사했다. 다행히 조카는 쌀알 같은 앞니 네 개를 뽐내며 웃음소리로 답했다. 한 십 년 뒤 명절에는 이가 다 자란 조카가 큰절로 인사할지도 모르겠다.

코끼리 아저씨는 코가 손이라 인사할 때 서로의 입에 코를 가져다 댄다. 얼룩말은 상대방을 입으로 살짝 문 다음 털을 다듬어준다. 인간과 방식은 달라도 본질은 같다. 인사 의례는 유대감을 쌓거나 긴장을 풀기 위해, 또는 존중을 표현하기 위해 행한다.

"의례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우리에게 방법을 알려주고, 한 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세상에서 일상을 유지하게 해준다. 모두가 똑같이 행동할 때 우리는 하나의 공동체로 연결된다. 그러므로 예의를 갖춰 의식을 치르는 동물들에게서 우리가 배울 점이 많다."(20, 21쪽)

코끼리 무리는 짧은 시간 떨어져도 다시 만날 때마다 세세한 순서를 지켜 긴 의식을 치른다. 케이틀린 오코넬은 그들을 30년 이상 관찰한 행동생태학자다. 야생동물이 직접 맞닿으며 감정을 공유하는 모습을 통해 우리가 잃어버린 것이 무엇인지, 의례가 왜 필요한지 알리고자 '코끼리도 장례식장에 간다'를 썼다.

책은 인사, 집단, 구애, 선물, 소리, 무언, 놀이, 애도, 회복, 여행 의례로 구성되었다. 코끼리 외에도 침팬지, 늑대, 고래, 홍학, 곤충 등 다양한 야생동물과 인간이 공통으로 행하는 10가지 의례를 다룬다. 이를 통해 사회적 동물이 관계 맺고 공존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의례는 단순히 특정한 행동을 하는 것이 아니다. 스트레스와 불안을 줄이고, 현재에 집중하게 한다. 호르몬을 변화시켜 신체 기능과 인지 능력, 면역력에까지 영향을 미친다. 저자는 의례의 효과와 본질을 밝히며 인간과 야생동물 세계를 연결 짓는다. 독자가 세상과의 관계를 더욱 튼튼하게 구축하도록 이끈다.

마지막 장에서 저자는 야생동물과 인간의 차이점을 제시한다. 인간에게는 이 행성 위의 모든 생명을 보호할 힘과 파괴할 힘이 있다는 것이다. 야생동물과 그 서식지를 보호하면 결국 인간을 구원할 수 있다. 우리도 동물 세계의 일부기 때문이다.

폭염과 한파, 산불, 가뭄과 홍수로 전 세계가 고통받는다. 기후재난에 맞서 인간의 책임을 다해야 할 때다. 이 책을 펼쳐 장례식으로 애도를 표하는 코끼리와 연대감을 느껴 보길 바란다. 그렇게 모두를 위한 공생에 한 발짝 내디뎠으면 한다.

박선아 학이사독서아카데미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