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든 삶이었지만 덕분에 자식들은 가난에 때 묻지 않고 행복했습니다"
'다음 생은 멋진 여성의 삶 사시길…"
어머니, 은숙, 진숙, 해숙 세 자매가 편지로 인사 올려요.
어머니를 하늘로 보내고 처음 추석을 보냈어요. 처음으로 어머니 없이 차례상을 차렸는데 모두 우왕좌왕 정신이 없었네요. 예전에는 어머니가 시키시는 대로 준비하면 됐었는데 이제는 다섯 남매가 어머니 없이 차리다보니 뭘 먼저 해야 할 지도 모르겠고 정신없이 추석을 준비했어요.
오신 손님들이 "차례상 잘 차리긴 했는데 너네 어머니 계실 때랑 맛이 조금 다르다"고 말씀하실 때 어머니의 빈자리가 크게 느껴졌어요. 어머니 생전 계실 때 배웠던 방법 그대로 요리했는데 맛이 조금씩 다르다고 하시더군요. 손님들이 가시고 나서 '뭐가 모자랐을까' 생각해 봤지만 결국엔 어머니 손맛을 자식들이 따라가기 쉽지 않다고 생각했어요.
하긴 우리 어릴 때 생각하면 어머니는 참 대단하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어요. 집안의 실질적인 가장이셨고, 새벽에 식구들 아침상과 자식들 도시락까지 다 만들어놓고 공장으로 출근하는 버스를 타셔야 했고 조금이라도 더 벌어보겠다시며 잔업까지 마치면 밤 9시가 넘어서야 집으로 돌아오셨죠.
돌아오신 뒤에도 가족들 뒤치다꺼리며 다음날 아침 준비며 궂은 일을 다 해나가셨죠. 공장 일 때문에 50대 때부터 몸이 서서히 망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사진을 보면서 알게 됐어요.
토요일이 되면 네 딸과 함께 집안의 밀린 빨래를 했고, 그 이후 먹던 칼국수, 수제비는 꿀맛이었어요. 라면이 귀하던 때 라면을 끓이면서 국수도 함께 넣어 삶아주셨는데 우리들은 그 꼬불꼬불한 면 더 먹겠다고 투닥거리던 기억도 나네요.
게다가 책임감도 너무 강하셨죠. '자식들 배 고프면 안 된다'며 집에 쌀 떨어지는 걸 못 참으셨죠. 그래서 외상으로라도 쌀을 사오시곤 외상값을 못 갚게 되면 가게 앞을 지나가는 게 너무 조마조마하셨다죠. 어머니 덕분에 자식들은 가난했지만 가난에 때묻지 않고 행복하고 즐겁게 컸습니다. 어머니에게 살림을 배우다보니 우리 네 딸들도 음식할 때 양을 넉넉하게 하는 편이에요.
우리 자식들이 어머니에게 고마운 건 그 책임감을 실천하시고 물려주셨다는 거예요. 어릴 때 우리들이 "엄마 사는 게 너무 힘들어보인다. 차라리 도망가지 그랬냐"라고 했더니 어머니 말씀이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는 자식들 두고 어찌 떠나냐"고 하셨죠? 돌아가시고 나니 어머니가 저희들을 버리지 않아서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요. 우리들도 가정이 생기고 자식을 키우고 보니 어머니가 얼마나 힘들게 살았는지 어렴풋하게나마 느낍니다.
어머니 마지막 가시던 날이 자꾸 기억나네요. 우리 자식들은 어머니가 상태가 호전돼 가시는 걸 보고 마음을 놓고 있었던 때였어요. 병원에 입원해 계시면서 각종 검사수치가 너무 좋게 나왔던 날 우리들은 "이제 며칠 있으면 퇴원하시겠구나"하며 마음을 놓고 있었어요. 그래서 개인적인 일들을 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병원에서 상태가 악화됐다는 전화가 왔고 다들 병원으로 달려왔지만 결국 어머니는 눈을 감으셨죠.
가까이 사는 세 자매가 모여서 어머니 이야기를 하면 몇 시간이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어머니는 우리에게 많은 기억과 추억을 남겨주셨어요. 마지막에 못 다한 말, 이 자리를 빌어서 전합니다. 어머니, 우리는 어머니 딸이어서 너무 좋았습니다. 힘든 삶이었지만 그래도 우리들을 낳아주시고 곁에 계셔주셔서 너무 고맙습니다. 다음 생은 지금처럼 고생하는 삶이 아닌, 어머니가 이때껏 보여주신 멋진 모습을 세상에 발휘하는 멋진 여성으로 살아가시길 자식들이 빌게요. 사랑합니다, 어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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