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정민 기자의 '니하오, 항저우'] 베테랑 레슬러 쓸쓸한 퇴장

입력 2023-10-05 13:04:32 수정 2023-10-05 19:13:42

대구 경북공고 출신 류한수, 메달 획득 실패
아시안게임 3연패 노렸으나 이란 선수에 고배
류한수, "후배들에게 좋은 모습 못 보여 미안"
동료 베테랑 김현우도 동메달 결정전서 패배

4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린안 스포츠문화전시센터에서 열린 제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 레슬링 남자 그레코로만형 67㎏급 8강에서 한국 류한수가 이란 다니알 소라비에게 기술을 허용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4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린안 스포츠문화전시센터에서 열린 제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 레슬링 남자 그레코로만형 67㎏급 8강에서 한국 류한수가 이란 다니알 소라비에게 기술을 허용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선배들이 좋은 모습을 보여줬어야 했는데 후배들에게 미안합니다."

한국 남자 레슬링 대표팀의 베테랑 류한수(35)에겐 이번 아시안게임이 고별 무대였다. 대회 전 이번이 마지막으로 태극마크를 달고 나서는 것이라 했는데 '유종의 미'를 거두지 못했다. 그래서 그는 경기 후 공동취재구역에서 더욱 아쉬운 한숨을 토해냈다.

1988년생인 류한수는 아시안게임 3연패를 향해 출사표를 던진 베테랑 레슬러. 대구 출신으로 대구의 레슬링 명문' 경북공고', 경성대를 거치며 실력을 다듬어왔다. 2014 인천 아시안게임,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거머쥔 한국 레슬링 대표팀의 간판이다.

한국 레슬링의 간판 류한수. 대한체육회 제공
한국 레슬링의 간판 류한수. 대한체육회 제공

전성기가 지난 나이지만 기량은 녹슬지 않았다. 지난 5월 열린 국가대표 재선발전에서 압도적인 실력으로 우승, 아시안게임 3연패를 예감케했다. 고질적인 허리 통증과 어깨 부상으로 어려움이 있었으나 이를 악물고 버텼다.

애초 항저우 아시안게임은 지난해 열릴 예정이었다. 이 대회를 끝으로 은퇴하려 했던 류한수는 코로나19 사태로 대회가 1년 연기되자 은퇴를 미뤘다. 대회가 연기되면서 아내 김미례 씨에게 금메달을 결혼 선물로 안기려던 계획도 무산됐다. 그 대신 결혼 1주년 기념 선물로 금메달을 건네겠다고 각오를 다졌다.

2016년 리우 올림픽 당시 기자가 류한수를 취재, 게재한 기사. 채정민 기자
2016년 리우 올림픽 당시 기자가 류한수를 취재, 게재한 기사. 채정민 기자

항저우에서 본 류한수는 7년 전 모습 그대로였다. 기자가 2016년 브라질 리우 올림픽에서 '털보 레슬러' 류한수와 마주친 적이 있었다. 당시 20대 후반이었던 류한수의 얘기는 매일신문에 게재((https://news.imaeil.com/page/view/2016081804244049870)됐다. 그는 동메달 결정전에서 라술 추나예프(아제르바이잔)에게 패한 뒤 "응원해주신 국민과 부모님, 친구들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남겼다.

4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린안 스포츠문화전시센터에서 열린 제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 레슬링 남자 그레코로만형 67㎏급 8강에서 한국 류한수가 이란 다니알 소라비와 경기를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4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린안 스포츠문화전시센터에서 열린 제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 레슬링 남자 그레코로만형 67㎏급 8강에서 한국 류한수가 이란 다니알 소라비와 경기를 펼치고 있다. 연합뉴스

세월을 거스르듯 그는 다시 태극마크를 달았다. 하지만 끝내 메달을 다시 목에 걸진 못했다. 항저우 아시안게임 레슬링 남자 그레코로만형 67㎏급 8강에서 떨어졌고 8강 상대였던 이란의 다니알 소라비가 준결승에서 패했다. 그를 이긴 소라비가 결승에 진출하면 류한수도 패자부활전에 진출할 수 있었으나 소라비의 발걸음도 멈추면서 류한수의 메달 레이스도 막을 내렸다.

소라비에게 진 류한수는 리우 올림픽 때처럼 눈물을 글썽이지 않았다. 표정은 초연했다. 다만 짙은 아쉬움이 묻어났다. 그는 "면목이 없다. 상대 분석에서 실수가 있었던 것 같다"며 조용히 공동취재구역을 떠났다.

4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린안 스포츠문화전시센터에서 열린 제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 레슬링 남자 그레코로만형 77㎏급 1라운드 16강에서 한국 김현우가 이란 아민 카비야니네자드에게 패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4일 중국 저장성 항저우 린안 스포츠문화전시센터에서 열린 제19회 항저우 아시안게임 레슬링 남자 그레코로만형 77㎏급 1라운드 16강에서 한국 김현우가 이란 아민 카비야니네자드에게 패한 뒤 아쉬워하고 있다. 연합뉴스

또 한 명의 베테랑도 이번 아시안게임에서 실패를 맛봤다. 류한수의 든든한 동료 김현우(34)가 그레코로만형 77㎏급 동메달 결정전에서 류루이(중국)에 3대5로 패했다. 부상을 안고 싸운 김현우는 "비록 메달을 따진 못했으나 나와 나라를 위해 싸우려고 노력했다"며 "마지막 아시안게임이다. 후회 없이 최선을 다했다"고 했다.

그렇게 두 베테랑의 아시안게임이 끝났다. 농익은 기량은 여전하지만 국제 무대에선 나이로 인해 체력에 문제가 있다는 게 걸림돌. '젊은' 레슬링 유망주가 잘 보이지 않으면서 이들이 다시 태극마크를 달 가능성도 있다. 노장의 승부에는 아직 마침표가 찍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