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분 희생 덕분에 자식들 번듯하게 살아…꿈에서라도 '감사합니다' 말씀 올리고 싶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하늘에서 추석은 잘 보내셨는지요? 추석 때 저희들이 차린 차례상이 흡족하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추석이 지나니 날씨가 조금 쌀쌀해지긴 했지만 저희들은 잘 지내고 있습니다.
아버지를 보낸 지 4년, 어머니를 보낸 지는 이제 곧 두 달이 돼 갑니다. 살아계실 적 아버지는 늘 건강 관리도 잘 하셨던지라 쓰러지시고 나서 2주만에 돌아가실 거라곤 생각도 못했는데 갑자기 이별을 맞아 한 1년간은 아버지 생각날 때마다 눈물지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서였을까 어머니 돌아가실 때에는 가족들이 모여서 마음의 준비를 해서 차분히 보내드렸던 것 같습니다.
아버지를 생각하면 먼저 떠오른 게 '천자문'이었습니다. 어린 시절 아버지는 저희 1남3녀 자식들에게 천자문 책을 한 권 씩 주시고는 한 페이지 씩 펜에 잉크를 찍어 쓰고 외우게 하셨습니다. 제대로 쓰고 외우지 못하면 잠자리에 들 수 없었죠.
저희들은 천자문 공부를 피해보겠다고 잉크병을 엎질러보기도 했고 언니는 책을 잃어버렸다고 말한 적도 있지만 피할 수는 없었던 공부였습니다. 그 때만 해도 아버지는 참 무서운 사람이라 생각했는데 이제 생각해보니 그 때의 공부 덕분에 저를 포함해 아버지 자식들이 다 번듯한 가정 꾸리며 살고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아버지, 이제서야 고백합니다. 아버지 덕분에 제가 지금의 자리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아버지는 제게 "공무원은 늘 청렴해야 한다. 청탁 같은 건 받으면 안 된다"라고 늘 말씀하셨죠. 그 때마다 저는 그 말씀을 너무 많이 들은 나머지 "요즘 누가 청탁을 한다고 그러냐"며 툴툴거리기도 했었습니다.
누군가가 아버지에게 딸이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이런저런 부탁을 해 왔던 적이 있었고 그것들을 모두 거절하셨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알게 되면서 아버지가 저를 많이 아끼고 걱정하는 마음이 너무 커서 저를 볼 때마다 그런 말씀을 하셨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그 말씀이 아버지 돌아가신 이후에도 계속 남아 제가 공무원으로서 살아가는 데 큰 이정표가 되고 있습니다.
어머니는 늘 가족에게 헌신적이셨죠. 넉넉하지 않은 살림을 아버지와 함께 꾸려가시느라 힘드셨고 자식들이 다 크고 나서도 뒷바라지를 멈추지 않으셨죠. 제 큰 아들이 어릴 때 어머니는 저 대신 손자를 돌봐주시느라 힘을 많이 쓰셨죠. 고맙다는 말을 매일 해도 모자랄텐데 저는 퇴근해서 오면 힘들어서 뻗어버리느라 고마움도 표현을 제대로 못했습니다.
돌아가시고 나니 죄송스런 마음이 들었습니다. 멀리서 출퇴근하는 딸이 애처로워서 당신 집이 구청에서 가깝다는 이유로 각종 밑반찬을 싸서 구청에 찾아오신 적도 있었죠. 그 헌신 덕분에 공직생활을 잘 이어나갈 수 있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돌아가신 뒤에 두 분의 사진들을 하나하나 살펴봤습니다. 그 사진에는 젊은 시절 영민하고 패기 넘치는 청년이었던 아버지와 멋쟁이였던 어머니의 모습이 있었습니다. 생각해보니 아버지는 영특함이 보통은 넘는 분이셨고 어머니도 미적인 감각이 많은 분이셨는데 자식들을 키우시느라 이를 제대로 꽃피우지 못하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두 분의 희생 덕분에 저희 자식들이 잘 커왔음에도 한 번도 아버지께, 어머니께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못 드린 것 같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늦게나마라도 말씀드립니다. 저를, 저희 남매를 잘 키워주셔서 감사합니다. 꿈에라도 나타나주세요. 꿈에서라도 제 목소리로 직접 감사하다는 말씀 올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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