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편 잘못 만난 아내, 두 딸 돌보기 위해 닥치는 대로 일하며 어렵게 살아
첫째 딸 이혼 당하고 왜소증 앓아…근육 서서히 빠져 현재 체중 26kg
성실하고 착했던 둘째 딸도 '가와사키병'…정부 보조금으로 연명
"자기야, 너무 보고싶다."
잠시 약을 사러 다녀온 사이였다. 아버지는 내연녀와 영상통화 중이었다. 구강암 걸린 사람치곤 퍽 로맨틱한 목소리로 사랑을 속삭이는 아버지. 병실 입구에 서서 그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았다. 아버지는 이쪽을 힐끗 쳐다보기만 하고, 다시 화면 속 여자에게 시선을 옮겼다. 영상통화보다도 그 무심함이 더 상처였다. 장녀로서 가는 마지막 길이라도 배웅해야겠다는 생각에 간병을 결심했다. 조금이라도 미안함을 느끼겠거니 싶었다. 결국 아니었다. 사경 속에서도 사랑하는 여자를 찾는 다정한 남자가 어떻게 자기 아내와 딸들에겐 이토록 잔인할 수 있을까. 저런 인간이란 걸 끊임없이 확인해 왔는데, 또 바보같이 기대를 걸고 말았다. 상처를 받았다는 사실에 다시 한번 상처를 받고, 그 길로 병실을 나와버렸다.
◆'손'만 보고 결혼한 남편은 춤바람·노름중독… 홀로 자매 힘들게 키워
고미홍(가명·72) 씨 부모님은 원래 서울에서 살았다. 미홍 씨도, 4살 많았던 친오빠도 모두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러다 6·25전쟁이 일어났고, 미홍 씨는 아버지 등에 업힌 채 대구로 왔다. 그 시절 피난민들이 모두 그러했듯, 미홍 씨 가족들도 판잣집에서 생활했다. 아버지는 미군부대 직원으로 일하며 돈을 벌었지만, 형편은 늘 쪼들렸다.
생사를 넘어 대구에 도착했지만, 날 때부터 몸이 약했던 오빠는 11살 어린 나이에 폐렴으로 세상을 떠났다. 어머니 역시 선천적으로 몸이 약했다. 미홍 씨가 중학생이 됐을 땐 병세가 더 심해져 병원에 입원까지 해야만 했다. 간호할 사람이 없어 미홍 씨는 중학교를 그만뒀다. 그렇게 좋아하던 음악 수업도, 피아노 치는 것도 모두 그만둬야 했다. 그리고 그 시절 여자들이 그랬듯, 18살 어린 나이에 미홍 씨는 결혼했다. 얼굴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었다. 결혼 전 남편이 집에 찾아왔을 때 물을 떠 오라 시켜서, 고개를 숙인 채 물을 갖다 준 적이 있다. 물잔을 건네받던 그의 손만 기억하고 있었다.
'손'만 보고 한 결혼은 고통이었다. 남편은 직업도 안 구하고 카바레니, 뭐니 옆에 여자를 끼고 춤추고 놀러 다니기에 바빴다. 그가 집에 들어오는 경우는 친구들 대여섯 명을 불러와 전축을 크게 틀어 놓고 마루에서 춤 연습을 할 때, 아니면 노름에 쓸 돈이 다 떨어졌을 때 이 두 가지뿐이었다. 친정 아버지 소개로 취직한 미군부대도 힘들단 이유로 일주일 만에 때려치우고, 시아버지께 물려받은 개인택시 일도 제대로 안 했다. 택시는 하루 종일 세워 놓고 주유소 건물 안에 있는 은밀한 방에서 노름만 진탕 해댔다. 남편은 당연히 생활비 한 푼도 보태주지 않았다. 미홍 씨는 옷 장사, 다방 일, 식당 설거지, 하숙집 가정부 등등 닥치는 대로 일을 하며 첫째 딸 주혜(가명·54) 씨, 선혜(가명·52) 씨를 어렵게 키웠다.
◆둘째 18살부터 가와사키병, 대학도 못 가… 첫째도 근육 다 빠져 26kg
상황이 이렇지만, 딸들만은 잘 키우고 싶었다. 딸들은 착하디착했지만 건강이 따라주지 않았다. 둘째 선혜 씨는 18살이 되던 해 갑자기 입 안 전체가 퉁퉁 붓고 손에 이상한 반점이 우둘투둘 생기기 시작했다. '가와사키병'이었다. 병명은 처음 병을 발견한 가와사키 도미사쿠라는 일본인 의사의 이름에서 유래했고, 원인이 밝혀지지 않은 희귀질환이라고 했다. 성실하고 착실히 공부해 왔던 딸은 그때부터 병원 신세를 져야 했다. 수능, 대학, 평범하고 행복하게 살아갈 기회… 전부 병에게 빼앗겨 버렸다.
남편은 딸이 쓰러져가는 와중에 내연녀와 살림을 차리기 위해 가출하고, 변호사 선임을 통해 강제로 이혼까지 진행했다. 그래도 자식들을 위해 이혼은 하지 않고 있던 미홍 씨가 비참해지는 순간이었다. 여기에 남편이 노름으로 생긴 빚을 갚지 못해 원래 살고 있던 집도 넘어가고, 그 무렵 신혼이었던 첫째 딸 주혜 씨는 이러한 가정사를 알게 된 시댁 측에 의해 이혼을 당하게 됐다. 이때부터 집안 형편도 급격히 어려워지기 시작했다. 선혜 씨는 가와사키병 여파 중 하나로 눈물샘이 파괴돼 망막에서 계속 염증이 생기는 증상을 앓았다. 지역 큰 병원 안과에서 눈 수술만 12번을 했다. 며칠 입원만 하면 200만원이 우습게 깨졌다. 수혈 한 번만 받아도 6만원이 슥슥 빠져나갔다.
독한 악령이라도 붙은 것인지. 이혼 후 미홍 씨와 함께 살고 있는 첫째 주혜 씨는 지난해부터 왜소증까지 앓고 있다. 37살 나이에 생리가 끊겼을 정도로 원래도 건강한 편은 아니었지만, 1년 전부터 근육이 서서히 빠지더니 지금은 체중이 26kg밖에 안 될 만큼 몸이 망가졌다. 미홍 씨 또한 거의 20년 동안 병원을 매일 다녀야 했던 막내딸을 보살피고 병원비를 부담하느라 극도의 스트레스를 받아왔고, 이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기 시작했다. 3년 전부터 퇴행성 관절염으로 거동이 어려워져 휠체어를 타야 하지만, 오르막길이 많은 동네에 살아 그러지도 못한다. 양쪽 무릎 수술을 하려면 700만원이 나온다고 해서 수술은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여기에 시력까지 급격히 나빠져 식사할 때 반찬이 안 보여 주혜 씨가 반찬을 직접 숟가락 위에 올려줘야만 먹을 수 있다. 당뇨로 인한 녹내장으로 의심되지만 수술비가 얼마나 나올지 걱정돼 물어보지도 못하고 있다.
환자가 셋이나 되기 때문에 집만이라도 깔끔하고 안락해야 하는데... 아픈 세 모녀가 살고 있는 현재 집은 수리 기사들도 이사를 추천하는 폐가 수준의 집이다. 집안 곳곳에 누수가 심해 내벽엔 곰팡이가 피어있고, 다 삭은 수도꼭지에선 까만 물이 나온다. 보일러실 관이 터졌을 땐 수도세만 20만원 넘게 나온 적도 있다. 노후화로 전기적 요인에 의해 불이 날 위험이 있어 미홍 씨가 지내는 거실 외 다른 방은 전기를 차단해 늘 어두컴컴하다.
지난 5월 항암치료 도중 세상을 떠난 남편은 끝까지 도움이 안 됐다. 남편이 집 계약을 할 당시 구두로만 하고 계약서를 쓰지 않아 주거급여 대상자임에도 '계약서 부재'로 세 모녀는 그 혜택을 받지 못하고 있다. 집주인은 월세는 안 받을 테니 대신 집에 문제가 있으면 스스로 수리하라고 말하지만, 수리할 곳이 한둘이 아니고 막대한 수리 비용을 댈 돈도 없다. 이사를 하는 게 최선이지만 정부 보조금 130만원으로 연명하고 있는 처지에 보증금 내기가 두려워 그러지도 못하고 있다.
오늘도 유일하게 전기를 켜 놓는 거실에 다닥다닥 모여 있는 세 모녀. 열심히 살아왔을 뿐인데, 다들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환자가 돼버렸다.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은 서로를 의지하며 앞으로는 좀 나아지길 막연히 기대하는 것뿐이었다. 세 모녀는 가만히 서로의 손을 잡고 그렇게 기도를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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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성금내역]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 중퇴하고 고기잡이·횟집·공사장 용역 등 전전하다 심장판막에 이상 생겨 3번 수술 받고 신장장애까지 겹쳐 10년간 혈액투석 중인 정지원 씨에게 2,231만원 전달
가난 때문에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고기잡이·횟집·공사장 용역 등을 전전하다 심장판막에 이상이 생겨 3번 수술을 받고 신장장애까지 겹쳐 10년간 혈액투석 중인 정지원 씨(매일신문 9월 12일자 10면)에게 2천231만3천360원을 전달했습니다.
이 성금엔 ▷(주)삼이시스템 10만원 ▷국제정밀(김용근) 5만원 ▷김영관 5만원 ▷이창영 5만원 ▷강종수 3만원 ▷이병규 2만5천원 ▷박희숙 2만원 ▷신종욱 2만원 ▷문민성 1만원 ▷전지원 5천원 ▷'김나현쌤' 10만원 ▷'석미혜(계대)' 1만원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아픈 엄마 위해 의사되겠다는 아들 뒷바라지 해야 하는데 무릎인대 파열로 수술 받아 부엌 가는 것조차 버거워진 박항선 씨에게 2,340만원 성금
아픈 엄마 위해 의사되겠다는 아들 뒷바라지를 해야 하는데 무릎인대 파열로 수술 받아 부엌 가는 것조차 버거워진 박항선 씨에게(매일신문 9월 19일자 10면)에게 47개 단체, 118명의 독자가 2천340만4천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에스엘(주) 200만원 ▷피에이치씨큰나무복지재단 200만원 ▷건화문화장학재단 150만원 ▷(주)대구은행 100만원 ▷빛명상본부 60만원 ▷(주)태원전기 50만원 ▷세무법인송정김천2 50만원 ▷신라공업 50만원 ▷한라하우젠트 50만원 ▷㈜태린(김규남) 45만원 ▷최상규이비인후과 40만원 ▷㈜신행건설(정영화) 30만원 ▷한미병원(신홍관) 30만원 ▷(주)동아티오엘 25만원 ▷㈜백년가게국제의료기 25만원 ▷금강엘이디제작소(신철범) 20만원 ▷대백선교문화재단 20만원 ▷대창공업사 20만원 ▷(주)구마이엔씨(임창길) 10만원 ▷(주)우주배관종합상사(김태룡) 10만원 ▷(주)이구팔육(김창화) 10만원 ▷경주천마자동차학원 10만원 ▷기독교대한성결교회봉산교회 10만원 ▷김영준치과의원 10만원 ▷대구동양자동차운전전문학원(최우진) 10만원 ▷세움종합건설(조득환) 10만원 ▷신성산업(김용환) 10만원 ▷이재만 대구지방세무사회 회장 10만원 ▷제일키네마섬유(이필남) 10만원 ▷창성정공(허만우) 10만원 ▷건천제일약국 5만원 ▷명EFC(권기섭) 5만원 ▷베드로안경원 5만원 ▷선진건설(주)(류시장) 5만원 ▷세무사박장덕사무소 5만원 ▷우리들한의원(박원경) 5만원 ▷이전호세무사 5만원 ▷전피부과의원(전의식) 5만원 ▷참한우소갈비집(신동애) 5만원 ▷채성기약국(채성기) 5만원 ▷칠곡한빛치과의원(김형섭) 5만원 ▷피플라이프(박태호) 5만원 ▷흥국시멘트 5만원 ▷매일신문구미형곡지국(방일철) 3만원 ▷청산(우창하) 3만원 ▷사단법인대한민국힐링문화진흥원 1만원 ▷하나회(김미라) 1만원
▷도경희 200만원 ▷김상태 박정민 이정추 각 100만원 ▷김진숙 50만원 ▷성현탁 30만원 ▷박철기 신금자 허금주 각 20만원 ▷곽용 엄세영 이종철 조득환 최창규 각 10만원 ▷하경석 9만원 ▷김순향 백미화 변대석 서정오 신광련 신연걸 안대용 이경자 이복남 이상준 이종하 임채숙 전우식 정원수 진국성 최영철 최한태 하혜련 각 5만원 ▷김점숙 김태욱 박승호 이대성 이서연 이석우 정소영 조진우 최춘희 각 3만원 ▷권오영 류휘열 문민성 박기영 박임상 서숙영 성민교 송재일 안현준 유명희 이장호 이재민 이재열 이해수 정주현 천정창 최미향 각 2만원 ▷국민정 김갑용 최정원 최지원 각 1만5천원 ▷권오현 권유진 김균섭 김다영 김삼수 김상옥 김성옥 김성진 김태천 박건우 박상옥 박인배 박재석 박홍선 우순화 유귀녀 윤인주 이두만 이영수 이운대 이인성 이인실 정서원 조영식 지호열 천미경 천혜민 최경철 하정현 각 1만원 ▷박랴희 백진규 이시은 이진기 조용인 각 5천원 ▷권두영 3천원 ▷이장윤 2천원 ▷이현주 최연준 각 1천원
▷'찬미예수님' 40만원 ▷'사랑나눔624' '주님사랑' 각 10만원 ▷'김민규안다겸' '김민성,김태윤(위브' '박항선님' '재원수진' '피땀눈물(LOGIS' 각 5만원 ▷'정정후(3남매맘' 3만원 ▷'석희석주' 2만원 ▷'김경희서율' '조희수힘내세요' '지현이동환이' 각 1만원 ▷'수민' 5천원 ▷'김명숙도움' 3천원 ▷'지성이' '채영이' 각 2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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