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칼럼] 야당 대표의 단식

입력 2023-09-17 19:06:48 수정 2023-09-17 19:09:39

김해용 논설주간
김해용 논설주간

3일 굶으면 사람은 남의 집 담을 넘는다고 했다. 식욕은 그만큼 강렬한 욕구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어떤 이는 곡기(穀氣)를 스스로 끊는 선택을 한다.

1981년 아일랜드 단식투쟁은 최대·최장 규모 단식 사례로 꼽힌다. 아일랜드의 무장단체(IRA) 활동 혐의로 체포된 양심수 수십 명은 당시 영국 정부를 향해 자신들을 정치범으로 대우해 달라고 요구하며 극한의 단식투쟁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10여 명이 아사(餓死)했다. 사망은 55~75일 사이에 발생했다. 이 사례를 근거로 의학계에서는 인체의 단식 한계를 72일로 본다. 기적을 바란다 해도 75일은 넘길 수 없다고 판단한다.

우리나라에서는 박관현 씨가 5·18 진상 규명 등을 요구하며 1982년 50일간 단식을 벌이다가 숨진 사례가 있다. 강의석 씨가 사립학교 종교 교육을 반대하며 46일 단식을 했으며 세월호 유가족 김영오 씨도 46일 단식을 했다.

앞서 밝힌 72일은 의학적 한계치일 뿐이다. 단식이 2주일을 넘으면 당사자 목숨이 위태로워질 수 있다. 그만큼 단식은 사회적 약자나 정치적·종교적 소수자 등이 자기 목숨을 걸고 선택하는 최후의 카드다. 그렇다고 해서 단식투쟁이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죽음을 무릅쓴다는 각오가 없다면 단식은 조롱의 대상이 되기 십상이다. 힘 있는 자의 단식도, 자기 이익을 관철하기 위한 단식도 그렇다.

목하 대한민국에서는 제1야당 대표의 단식이 정치 이슈를 빨아들이고 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단식이 18일로써 19일째다. 그는 무기한 단식 돌입의 이유로 ▷민생 파괴·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윤석열 대통령의 사과 ▷일본 오염수 투기에 대한 국제재판소 제소 ▷전면적 국정 쇄신과 개각 등을 내세웠다. 이 대표의 단식투쟁 명분에는 대다수 국민이 공감할 만한 대의가 있을까?

그의 단식과 거물 정치인의 역대 단식을 비교해 보자. YS는 1983년 대통령 직선제 도입 등을 요구하며 23일간 단식했다. DJ는 1990년 내각제 반대 및 지방자치제 실현을 요구하며 13일 동안 단식했다. 요구가 분명했고 대의도 있었다. 하지만 이 대표의 요구에는 그러한 선명성이 결여돼 있다. 윤 대통령이 응할 것 같지도 않다. 오히려 이 대표의 단식에는 '사법 리스크 방탄용' '민주당 내부 결속용'이라는 꼬리표가 따라다닌다. 게다가 '출구'도 안 보인다.

명분이야 어찌 됐든 단식은 길어질수록 효과가 극적으로 커진다. 야당 대표의 단식 장기화는 정치에 부담이다. 처음에는 비판적 거리를 두던 여권도 대응 분위기가 바뀌고 있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는 16일 SNS에 "저는 며칠 전 이재명 대표께 단식 중단을 요청한 바 있다"며 "이 대표께 단식 중단을 다시 한번 정중히 요청드린다"는 글을 올렸다. 홍준표 대구시장도 16일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단식 초기 철부지 어린애 밥 투정 같다고 했던 말을 사과드린다.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목숨 건 단식을 조롱한 건 잘못"이라며 단식 중단을 권고했다.

이 대표로서는 단식투쟁을 통해 이미 그 나름 절반의 성공을 거뒀다. 민주당 내부 단속을 이끌어 냈고 뉴스 중심에도 섰다.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으니 이제 그만할 때도 됐다. 홍준표 시장이 권언했듯이 세상사는 '신외무물'(身外無物) 즉, 몸이 없으면 소용이 없다. 이 대표는 단식을 멈추기 바란다. 대한민국을 위해 필요한 행동이며, 그 자신을 위해서도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