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전 세계에서 인도 관련 새로운 고유명사들이 유행하고 있다. 찬드라얀, 아디티야, 망갈얀, 바라트 등이 그것이다. 인도는 2014년 아시아에서 최초로 화성 궤도에 망갈얀이라는 우주선을 진입시켰다. 그리고 얼마 전에 찬드라얀-3가 세계 최초로 달의 남극 착륙에 성공한 후 태양 관측용 탐사선인 아디티야-1의 발사에도 성공했다. 또한, 내년까지 유인우주선의 지구 궤도에 진입을 성공시켜 3일간 임무를 수행할 계획이다. 우주과학 분야에서 거둔 이러한 업적은 IT 분야 외에 인도의 위상을 세계적으로 높여주었다.
◆'바라트'로 국명 바꾸려는 인도
또한 최근에 인도는 G20 정상회의의 성공적인 개최로 대내외적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G20 정상회의에서 '바라트'라는 인도의 국명이 큰 화제가 되었다. 한국 뉴스에서도 '인도는 바라트라고?' '인도는 국명을 바라트로 변경하나' '바라트로 국명 바꾸려는 인도' 등 바라트라는 인도 국명에 대한 관심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인도 정부가 국명을 '바라트'로 바꾼다는 공식적인 보도는 없다. 인도의 본래 국명은 헌법상 '인디아, 즉 바라트'라고 되어 있다. 한국의 국명이 코리아가 아닌 '한국'인 것처럼 인도의 국명은 '바라트'이다. 다시 말해, 인도는 그동안 인디아와 바라트라는 국명을 함께 사용해 왔다. 다만, 이번에 인도 정부 측에서 G20 정상회의에 참석하는 정상들에게 보낸 초대장에 '인도 대통령' 대신에 '바라트 대통령'이라고 쓰여 있었기 때문에 이 일이 새로운 이슈로 부각된 것이다.
그렇다면 그동안의 관례와 다르게 인도 정부는 이번 G20 정상회의에서 왜 인디아가 아닌 바라트라는 명칭을 사용했을까. 인도 정부는 이번 정상회의를 주최한 것을 기회 삼아 인도인이 고대부터 사용해 온 국명을 세계인에게 알리고자 했던 듯하다. 즉, 전 세계인들에게 고대부터 사용되어 온 인도 국명을 알림으로써 국경의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추구하려고 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 대한 이해를 위해 우방국인 한국의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올해가 한·인도 수교 50주년이 되기 때문에 G20 정상회의에서 한국은 주목의 대상이었다. 윤석열 대통령은 인도를 방문, 인도에 거주하는 동포들을 만나 "세계 5위의 경제 대국이자 최대 인구 대국인 인도가 한국과 함께 나아가야 할 중요한 파트너"라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특히 한국 기업들이 인도 내에서 지속적으로 투자를 확대해 나갈 수 있도록 인도 측에 우호적인 통관 환경 조성 및 수입 제한 조치 완화와 관련하여 모디 총리의 각별한 관심을 요청했다. 정상회담이 끝난 후 모디 총리는 "윤석열 대통령과 심도 있는 논의를 했다. 양국 관계의 전반적인 현황을 논의하고 인도와 대한민국 간의 통상관계 및 문화 교류를 더욱 강화하기로 했다"고 했다.
다만,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 러시아의 푸틴 대통령이 불참한 만큼 이번 G20 정상회의는 친미 동맹의 회의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이번 회의를 통해서 볼 때 미국과 러시아, 미국과 중국, 남한과 북한 등 서로 간의 적대적 관계는 지난 세기, 냉전 질서의 종료 후에도 여전하다. 어찌 보면 영원히 화해하지 못한다는 적대적인 관계라는 것은 인류의 문제가 아니라, 인류를 만든 신의 의도일지도 모른다.
인도의 고대 서사시 〈마하바라트〉에는 신이 인간을 대립시켜서 전쟁하게 만든다는 이야기가 있다. 〈마하바라트〉는 기원전 300년경에 쓰인 대서사시이며 권력을 위해 왕자들이 서로 싸우는 비극적인 전쟁 이야기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 등장하는 전쟁 무기들은 오늘날 다양한 방식으로 발명된 무기와 핵폭탄과 비슷한 부분이 많다. 〈마하바라트〉 속의 수많은 이야기는 인도인들에게 과학적 발명에 대한 원동력이 되었을 것이다.
'마하바라트'는 말 그대로 '대인도'(大印度)라는 뜻이다. '마하바라트'라는 용어에는 대서사시의 시대, 통합되어 있던 하나의 인도를 향한 인도인의 열망이 내재되어 있다. 그런 점에서 최근 바라트라는 국명의 부각에는 국제사회에 '대(大)인도'를 널리 알려서 통합된 인도, 즉 국경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인도 정부의 의도가 깊이 내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국경 문제라는 것은 역사책의 서술을 근거로 자신의 영토를 확장해 온 중국 정부의 태도와 관련한 것이다. 최근까지도 중국은 인도 일부 지역을 자기 영토라고 주장했다. 이러한 중국 정부의 태도 때문에 인도 정부는 바라트라는 또 다른 국명을 내세워 고대의 인도야말로 넓고 넓은 히말라야 산까지 영토를 가진 큰 국가였다는 것을 세계적으로 호소하기로 한 것이다. 〈마하바라트〉 대서사시는 '바라트'라는 인도 국명의 국제적인 부각 때문만이 아니라 한국에서도 이슈가 되고 있는 영화 〈오펜하이머〉 때문에도 인도 내에서 논란이 되고 있다. 이 영화에서 〈마하바라트〉 서사시에 들어 있는 바가바드기타 경전이 신성 모독의 방식으로 표현되었기 때문이다.
누구나 알고 있듯 오펜하이머는 히틀러가 저지른 침략 행위를 멈추기 위해서 원자폭탄을 만든 과학자이다. 과학자로서는 새로운 발명을 했지만, 그의 발명품은 엄청난 수의 사람들을 죽음에 이르게 했다. 이 비극적인 결과는 오펜하이머에게 돌이킬 수 없는 상처가 되었다.
◆악한 존재를 폭력의 방식으로 처벌한다는 신의 말씀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발명한 원자폭탄이 일본의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투하되어 수많은 인명을 살상하는 것을 본 직후, 한 인터뷰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는 세상이 예전과 같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몇몇 사람들은 웃었고, 몇몇 사람들은 울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 사람들은 침묵했습니다."
힌두교 경전인 바가바드기타의 대사가 기억에 남는데, 비슈누 신이 왕자를 설득하려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의무를 다해야 하고, 그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 다중 무장한 모습을 취하며 '이제 나는 죽음이요 세상의 파괴자가 되었다'고 말합니다. 아마도 우리 모두, 어떤 식으로든 그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여기서 오펜하이머가 인용한 힌두교 경전인 바가바드기타는 바로 〈마하바라트〉의 일부이다. 〈마하바라트〉 서사시에서는 왕실 형제 간에 영토와 권력을 얻기 위한 싸움이 벌어지고, 이 싸움의 참가자 중 중대한 역할을 하는 아르주나라는 왕자가 '어찌 같은 형제를 죽일 수 있겠느냐'고 자문한다.
이에, 전쟁에서 가장 중요한 일을 담당하는 비슈누 신의 8번째 화신인 크리슈나가 비슈누의 모습으로 나타나 다음과 같이 답한다. "나는 시간이다. 세상을 무너뜨릴 수 있는 그 무궁무진한 파괴의 근원이다. 네가 이 전쟁에 참여하든 말든 반대쪽 왕자의 전사들은 죽고 멸망할 거다." 크리슈나 신은 어떻게든지 왕실의 형제들을 선과 악, 두 개의 구도로 대립시켜 악한 쪽의 왕자들을 죽게 만들겠다는 자신의 의지를 표명하고 있는 것이다.
오펜하이머는 선을 실현하기 위해서 전쟁을 동원하여 악을 죽인 크리슈나 신에 자신을 빗댄 것이었다. 악한 존재를 폭력의 방식으로 처벌하거나 죽인다는 식의 신의 말씀은 유대교나 기독교의 경전에도 있는데 오펜하이머는 굳이 인도의 바가바드기타의 구절을 인용하고 있는 것이다. 그가 보기에 신이 인간을 대립시켰다가 전쟁하게 한다는, 즉 인류 상잔의 기원을 드러내는 데 인도의 경전만 한 것이 없었던 것이 아닐까.
25만 명에 달하는 수많은 죽음에 대한 무거운 자책을 오펜하이머가 적어도 영화 〈오펜하이머〉에서 보여준 것처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영화감독은 굳이 사랑을 나누는 잠자리에서 야한 행위를 하는 방식으로 〈바가바드기타〉에 나온 파괴의 신을 표현해야만 했던 것일까?
인도의 경전을 폄하하고 무시하는 〈오펜하이머〉의 이 부분을 두고 인도인들이 분노를 터트린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여기에는 어쩌면 구제국이었던 영국의 경제를 앞지르는 것은 물론, 미국과 영국 등 서구 세계 도처에서 인도인이 핵심적 요직을 차지하는 등 인도의 급부상에 대해서 서구 세계 일반이 지닌 위기감이 묘하게 작동한 것일 수도 있으리라.
앞잘 아흐메드(영남대 박정희새마을연구원 연구교수 khanafzal@y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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