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규택 계명문화대 한국어문화과 교수
군은 유·무형의 전력이 공존해야 하는 집단이다. 병력의 규모와 첨단 무기 같은 유형 자산과 무형 전력인 정신력이 마차의 좌우 바퀴처럼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의미이다. 아무리 첨단 무기를 갖춘 선진 과학화 군대라 하더라도 장병들이 분명한 대적관(對敵觀)을 형성하지 못하면 필패(必敗)하는 것이 군이다. 군은 유사시 국가 존립의 첨병으로서, 그리고 평시엔 전쟁 억지의 플랫폼 역할을 다한다.
미국의 막강한 원조를 받은 중국 국민당군과 남베트남군의 패전은 우리에게 반면교사의 선례가 되었다. 압도적인 병력과 월등한 무기로 무장한 국민당군이 패한 것은 정보 노출과 정신력이 무너졌기 때문이다. 최신 전투기를 비롯한 첨단 무기로 무장했던 남베트남군이 항복한 것도 결국 정신력에서 패배했기 때문이다. 정신 전력 부재의 남베트남군 지휘관들은 도망가거나 항복하기 바빴고, 그 대가는 참혹했다. 군대는 분명한 대적관으로 싸울 의지와 결기가 있을 때 승리할 수 있다. 우리는 이런 확고부동한 정체성을 가진 군을 국가 최후의 보루라 부른다.
논란 중인 육군사관학교 충무관 앞의 흉상 문제로 사회가 혼란스럽다. 이 문제는 애초 정체성이 다른 홍범도를 나머지 네 분의 독립운동가와 함께 전시한 것이 잘못이었다. 문재인 정부가 천안함 피격 사건과 서해 공무원 피살 사건에서 보였던 태도를 보면 홍범도 흉상을 육사에 세운 이유를 이해할 수 있다. 육사에 '6·25전쟁사'를 필수과목에서 선택과목으로 바꾸는 등 사관생도 교육의 정체성에 허점을 드러내게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미 동족상잔의 6·25전쟁을 겪으면서 반공이 국군의 제일 가치여야 한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 영역은 적어도 남북통일이 될 때까지는 반드시 지켜야 할 우리 군의 최우선 정체성이어야 한다. 대한의군 참모중장 안중근 장군의 '위국헌신군인본분'이란 표어를 가슴에 새기면서 반공을 국시(國是)로 실천하면 된다. 독립운동을 했거나 영웅적인 행위를 했다고 모두 국가유공자가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국가유공자는 나라가 지향하는 가치에 합당해야 한다. 이념이 국가가 지향하는 정체성과 다르다면 비록 독립운동가이거나 역사적인 인물일지라도 국가유공자로서는 부적합하다. 사실과 달리 왜곡된 인물이 국가유공자가 되면 허구이며 거짓이고 기만이다. 호국 간성을 양성하는 육사에서 잘못된 정체성을 교육하게 되면 자칫 회색분자를 양산하는 이적행위로 이어진다.
1949년 4월 15일 진해 덕산 비행장에서 350여 명의 해군 수병을 선발해 해병대를 창설했다. 약 1년 뒤, 해병대는 6·25전쟁을 겪는다. 해병대는 해군과 협동작전으로 한국군 단독 통영 상륙작전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 이로써 해병대는 명실공히 무적 해병대, 귀신 잡는 해병대로서 그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이어오고 있다. 1980년 광주보다 부마(부산과 마산)항쟁이 먼저 일어났다. 이때 현장에 나간 해병대는 국가 최후의 보루 역할을 충실히 수행한다. 당시 현장 지휘관은 해병대원들에게 데모대가 돌을 던지면 그냥 맞으라고 했다. 해병대는 국민을 지키는 군대여야 한다는 것이 그 이유였다. 가슴 뭉클한 명료한 명령이었다. 해병대원들은 지휘관의 명령을 추상같이 받아들였으며, 빗자루로 주변을 청소하고 시민들의 안전에 최선을 다했다. 이것이 소위 'X병대'라고 불리던 시절에 보여준 국가전략 기동부대인 해병대의 참모습이었다. 그런 해병대가 최근에 고 채 상병 사망 사건으로 내분에 휩싸인 것 같아 못내 안타깝다. 해병대 지휘부의 건전한 판단, 그리고 '3군에 앞장서서 해병은 간다'란 가사처럼 현명하고 정의로운 해병대로 거듭나길 바란다.
홍범도 흉상 이전 문제와 안타까운 해병대 사태가 혹여나 우리 군을 바라보는 부정적인 시각이 되지 않아야 할 것이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이 두 경우가 정치적으로 악용되지 말아야 한다. 인간은 본의 아니게 위기에 처할 수 있다. 그러나 위기는 곧 기회이듯, 지금 군 안팎의 위기에 대한 해법을 우리 역사에서 찾았으면 한다. 다시 삼도수군통제사가 되었지만, 명량해전을 앞둔 절체절명의 이순신과 그의 사즉생을 상기해 보자. 지금은 사즉생의 리더십이 필요하고, 결국 우리 국군은 국가 최후의 보루 역할을 다할 것이다. 우리 장병들의 건승을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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