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수 영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김병익 전 문학과지성사 대표는 동아일보 해직 기자 출신이다. 1974년 유신체제에 반대하는 '자유언론수호대회' 시위에 나갔다 해직당했다. 역사에 준엄할 법한데, 그의 '인간 이해의 착잡함'이란 글에서 매국노 이완용에 대한 평가는 다소 의외다. 3·1운동의 지도자 손병희 선생이 이완용에게 3·1운동 참여를 권하자, 그는 "매국적이란 이름을 이미 들은 나는 그런 운동에 참여할 수 없소. 손 선생의 운동이 성공하여 내가 그렇게 맞아 죽게 되면 다행한 일이겠소"라며 사양했다고 한다. 이완용은 이 비밀 거사를 일본 경찰에 고발하지도 않았다. 김병익 전 대표는 "이완용의 행적을 보면서 인간 이해가 간단치 않다는 걸 느꼈다"는 소회를 밝혔다.
홍범도 장군은 봉오동, 청산리 전투의 영웅이다. 그런데 최근 육사는 홍범도 장군 흉상을 육사 밖으로 옮기겠다고 밝혀 논란이 일었다. 이유는 홍범도 장군의 소련 공산당 활동 경력, 자유시 참변 연관 의혹, 봉오동 전투에 빨치산으로서 참가했다는 의혹 때문이다. 자유민주주의는 대한민국의 국체이고, 사관학교에서 공산주의자를 기리는 것은 적절치 않다. 문제는 홍범도의 행적과 의혹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이다.
공산주의의 역사적 의미는 가변적이다. 2차대전 때는 파시즘에 대항하는 자유 진영의 전우였다. 일제 식민지 시대 때 민족주의자와 공산주의자는 함께 독립을 위해 싸웠다. 물론 김좌진 장군을 암살하고, 김구 선생을 저격한 극렬 공산주의자도 존재했다. 하지만 공산주의를 단지 독립운동의 방편으로 생각한 경우도 많았다. 홍범도는 1922년 레닌을 직접 접견하고 권총 선물까지 받았다. 하지만 1927년 늦게서야 공산당에 입당했다. 여운형은 당시의 공산주의 운동에 대해 "국제당의 승인을 얻어 독립운동을 하자는 것뿐"이라고 회고했다. 홍범도가 소련 정부에 제출한 인적 조사표에는 직업을 의병, 목적과 희망을 고려 독립이라고 적었다.
1921년 자유시 참변은 한국 독립운동사상 최대 비극 중 하나였다. 그해 초 만주 독립군들이 대거 러시아령에 들어갔다. 봉오동, 청산리 전투의 여파로, 만주 지역의 독립군 근거지가 거의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자유시에 집결한 독립군이 상해파와 이르쿠츠크파로 분열되어 총격전을 벌이는 비극이 발생했다. 이 사건으로 독립군은 괴멸적 타격을 입었다. 문제는 홍범도가 이르쿠츠크파에 가담해 참변을 일으켰다는 의혹이다. 하지만 이 사건은 너무 복잡해서 진실을 알기 어렵다. 신흥무관학교 교관이자 홍범도 부대의 부대장으로서, 참변을 직접 목격한 '김승빈의 편지'는 가장 논리적인 증언으로 보인다. 그는 이 "문제들을 정확히 해명하여 옳게 분석하고, 정당한 결론을 짓는 사업은 그 사변 직후에서도 개인적 입장으로는 불능하였다"고 술회했다. 홍범도는 독립군의 분열을 피하기 위해 소련군의 지시에 따랐다고 한다. 하지만 참변 소식을 듣고 대성통곡했다. 또한 1922년 극동민족대회에서 이르쿠츠크파를 살인자로 비난했다.
홍범도를 둘러싼 논쟁에는 더 깊은 의미도 있다. 민족과 체제의 가치가 충돌하는 문제다. 민족의 관점에서 홍범도는 애국자다. 그러나 체제의 관점에서 자유민주주의의 적인 공산주의자다. 진보 진영은 민족이 우선이다. 홍범도를 인정하지 못하는 체제는 반민족적이라고 본다. 문재인 정부 때 홍범도 흉상을 육사에 설치하고, 김원봉을 국군의 뿌리라고 주장한 이유다. 보수 진영은 체제가 우선이다. 자유와 민주 없는 민족은 공허할 뿐 아니라 위험하다고 본다. 독립운동을 존중하지만, 공산주의자는 인정할 수 없는 이유다. 북한과 통일만 되면 자유와 민주를 희생해도 좋다는 국민은 없을 것이다.
우리 근현대사는 독립과 자유, 계급이라는 중첩되고 모순된 과제를 동시에 해결해야 했다. 홍범도는 아버지부터 머슴이었다, 나라와 동족으로부터 받은 것은 천대와 멸시뿐이었다. 하지만 아내와 두 아들을 독립운동의 제단에 바쳤다. 하지만 역사에서 의도는 결과를 보장받지 못한다. 동기가 선하다고, 역사의 비판이 비껴가지 않는다. 그의 영령은 역사의 수레바퀴에 끼여 신음하며, 그 부조리를 슬퍼할 뿐이리라. 관용과 사랑이 빠진 정의는 위험하다. 정의는 옳지만 파괴적이다. 김병익 전 대표처럼 '역사의 관용'을 생각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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