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국민연금 개혁안 세대 갈등
더 내고 더 늦게 받는 개혁안 소식에 젊은 층 "나중에 받을 수 있나" 분통
"연금액 깎이더라도 일단 받고 보자" 고갈 우려 조기 수급자 해마다 증가
"용돈 연금이라도 있어서 다행…개편 신중해야"
우리나라 인구 구조가 역피라미드형으로 빠르게 변화하면서 각종 사회보장 제도도 위기를 맞고 있다. 사회가 부양해야 할 노인 인구는 급증하는 반면, 이들을 부양해야 할 생산가능인구는 빠르게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세대 간 갈등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분야는 '연금'이다. 저출산·고령화로 연금을 받을 사람은 계속 늘지만, 연금보험료를 납부할 사람은 줄어 기금이 고갈될 수밖에 없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고령층은 자신들이 그동안 납부한 연금을 노후에 제대로 받아야 한다는 입장인 반면, 젊은 세대는 청년층에게만 희생을 강요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청년층에만 부담 지워선 안 돼"
10년 차 직장인 신민정(35) 씨는 입사 초부터 누구보다 노후 준비를 착실해 해왔다고 자부한다. 현 직장에 입사한 지난 2014년부터 매년 400만원 정도를 연금저축펀드, 연금저축보험에 부었고 결혼 전엔 매달 100만원 이상은 꾸준히 저축했다.
하지만 퇴직 후의 삶을 떠올리면 불안감을 떨칠 수 없다. 노후에 기댈 곳은 퇴직금과 홀로 준비한 개인연금이 전부일 것이란 생각 때문이다.
특히 퇴직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국민연금이 고갈될 것이란 전망이 나올 때마다 미래는 더욱 암담하게 느껴진다.
신 씨는 "회사 동기나 친구 대부분이 납부한 국민연금을 원금만큼도 못 받을 것이란 점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인다"며 "지금 국민연금을 수령하는 부모님께 용돈을 드린다는 마음으로 크게 신경을 쓰지 않겠다고 여기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연금 개혁 이슈를 지켜보면서도 답답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보험료율 인상, 수급 개시 연령 상향 등 개혁안이 나올 때마다 젊은 층에게 부담을 지우려는 쪽으로 바꾸려는 것 같아 분통이 터진다.
그는 "마음 같아선 노후 준비는 알아서 할 테니 덜 내고 덜 받거나 의무가입 제도를 폐지해 원하는 사람만 가입하도록 했으면 좋겠다"며 "인구구조상 앞으로 젊은 세대 부담이 갈수록 무거워질 텐데, 보험료를 납부하는 쪽에만 부담을 지우는 방향으로 가선 안 될 것"이라고 말했다.
공직사회에 갓 발걸음을 내디딘 청년들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초등학교 교사 이준호(27) 씨는 봉급 명세서를 볼 때마다 한숨부터 내쉰다. 그는 세전 약 300만원의 월급을 받고 있지만 세후 그의 통장으로 입금되는 돈은 250만원이 채 안 되기 때문이다.
그의 세금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공무원 연금'으로 약 30만원이 매달 빠져나가간다. 이 씨 역시 '낸 돈을 언제 받을 수 있겠냐'는 마음뿐이다.
그는 "사기업과 달리 우리는 2배 이상의 돈을 연금에 쏟아붓고 있지만 나중에 그만큼 돌려받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금 젊은 공무원들은 퇴직 후 기존 공무원 은퇴자들과 같은 삶은 누리지 못할 것"이라며 "차라리 이 돈을 내가 매달 저축을 하고, 나중에 노령연금을 받는 것이 더 낫다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용돈 연금이지만 기댈 곳은 국민연금뿐"
젊은 시절 중소기업에서 20여 년간 근무하다, 이후 약 10년간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운영한 조경수(70) 씨. 매달 국민연금 110만원 정도에 손주를 돌보는 아내가 자녀에게 받는 용돈 100만원으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젊은 시절보다 팍팍해진 삶에 경조사비라도 아끼고자 얼마 전부턴 나가던 모임도 모두 끊었다. 조 씨는 큰돈은 아니지만 매달 나오는 국민연금이라도 없었다면 노후가 아찔했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그는 "지금 연금을 받는 사람들은 젊은 시절 국가를 믿고 연금을 내기 시작해 수십 년간 납부한 사람들이다. 젊은 사람이야 마음만 먹으면 일할 곳이 있고 정책 변화에 맞게 노후 계획을 짤 수 있는데, 노년층은 연금 말고는 별다른 방도가 없다"며 "연금을 받는 사람들에게 불리한 쪽으로 개편하는 건 신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최근 조 씨는 국민연금 수령 시기를 둘러싼 주변 분위기도 확연히 바뀌었다고 느낀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일을 할 수 있을 때까지 하고 늦게 받겠다'는 분위기였지만, 요즘은 연금액이 깎이더라도 당겨 받길 원하는 사례가 많아졌다.
조 씨는 "은퇴자들이 모인 온라인 카페에 가보면 '나중에는 지금보다 더 못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일찍 받는 게 낫다'고 서로 권유하는 경우가 많다"며 "수령 시기를 연기하면 받을 돈은 많아지겠지만 건강보험료를 폭탄을 맞을 수 있기 때문에 빨리 받는 것만 못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국민연금공단에 따르면 연금을 원래 수령할 나이보다 앞당겨 받는 수급자는 매년 늘고 있다. 국민연금은 법정 수령 시기보다 1년씩 먼저 받을수록 연 6%가 깎여 빨리 받을수록 불리한 구조임에도 연금 고갈 우려 등으로 조기 수령을 원하는 은퇴자들이 많아진 것이다.
최근 5년간 조기 연금 수급자 연도별 추이를 보면 ▷2018년 58만1천338명 ▷2019년 62만1천242명 ▷2020년 67만3천842명 ▷2021년 71만4천367명 ▷2022년 76만5천342명 등으로 꾸준히 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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