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라언덕] 혐오 사회의 부메랑 효과

입력 2023-08-24 13:57:38 수정 2023-08-24 20:11:35

한윤조 사회부 차장
한윤조 사회부 차장

한국 사회의 치안이 이 정도로 불안했던 적이 있었나 싶다. 전 세계 어느 나라보다 안전하다고 자부할 수 있던 나라였지만, 이유 없는 흉기 난동 사건에다, 대낮의 성폭행·살인 사건, 줄을 잇는 칼부림 예고 글에, 실제 흉기를 들고 다니는 이들이 전국 곳곳에서 검거되는 등 '이상동기범죄' 사건들이 계속되면서 시민들의 불안감이 고조되고 있다.

경찰이 도심에 장갑차를 배치하고 순찰을 강화하고, 범행 예고 글을 쓴 이들을 일일이 추적해 사전 검거하고 있지만 한번 일어난 파장이 좀처럼 숙지지 않고 연이어 확산되는 추세다. 범죄 보도가 쏟아지면서 모방범죄도 생겨나고 있고, 시민들은 대낮 도심 공원에서도 범죄가 벌어지는 상황에 언제 어디서 무슨 일을 당할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떨고 있다.

이런 현상을 보고 있자니 우리 사회의 취약한 이면이 수면 위로 드러난 느낌이다. 깨끗한 공간은 모두들 조심스럽게 사용한다. 하지만 더러운 뒷골목에서는 누구나 쉽게 쓰레기를 버리고 침을 뱉는다. 엉망진창이 되는 건 삽시간이다.

한번 시작된 칼부림 예고 글에 너도나도 덩달아 지금껏 숨겨 왔던 공격성을 드러내고 있다. 여기에 철없는 10대들까지 가세해 재미 삼아 범죄 예고 글을 올리는 판국이다. 수많은 사회적 갈등 상황 속에서도 그나마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던 둑이 훅하고 무너지자 너도나도 그 분위기에 올라타 윤리적·도덕적 기준 따위는 내팽개친 채 내면에 감춰 왔던 폭력성과 잔혹성의 이빨을 드러내고 있다.

이 같은 상황은 이미 예견할 수 있었던 일이다. 우리 사회의 혐오와 증오의 골이 날이 갈수록 깊어지면서 언젠가 우리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었다.

정부는 급히 부족한 경찰 인력 확충을 위해 2017년 폐지했던 의무경찰을 재도입하겠다고 밝혔지만 이것만으로는 사회에 만연해 있는 격앙된 분위기를 잠재우긴 역부족으로 보인다.

지금 대한민국이 이 지경에 이른 것은 서로 편을 갈라 싸우고 자신만의 이익을 위해 서로 경쟁하면서 불거진 혐오와 증오, 차별과 배제가 뿌리 깊게 깔려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건강한 공동체 문화가 형성될 수 없다. 차별받고 모욕당한 누군가는 분노의 감정을 키우게 되고 이는 결국 우리 사회에 부메랑으로 돌아와 시민들을 해친다.

전 세계 분쟁 지역을 취재해 온 독일 출신 저널리스트 카롤린 엠케는 "혐오와 멸시가 계속 심화하고 확대되면 결국 모두가 해를 입는다. 바로 그것이 증오가 가진 힘"이라고, 그의 저서 '혐오사회'를 통해 지적한 바 있다.

그는 특히 현대 사회에서 문제시되는 각종 혐오는 자연 발생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형성된' 감정으로, 혐오와 증오는 만들어지고 특정 방향으로 유도되는 것이기에 사회적 구조도 함께 고찰해 역사적, 지리적, 문화적 맥락상 어디서 발생하는지 인지해야 왜곡된 인식 틀을 개선할 수 있다고 봤다.

당장 경찰력 증원을 통해 시민들이 불안감을 느끼지 않고 생활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회에 만연해 있는 혐오와 증오의 분위기를 바꾸지 않고서는 서로를 믿고 함께 협력하며 살아가는 공동체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어지럽고 살벌한 분위기 속에서 언제까지 불안해하며 살아갈 순 없다.

그렇다면 지금부터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서로 손을 맞잡는 일이다. 문제가 되는 특정 집단을 규정짓고 이들을 공격하고 배제할 일이 아니라, 이들을 우리 사회 일원으로 받아들여 함께 앞으로 나아가는 방법을 고민해야 한다. 지금의 위기가 기회일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