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동엽 문화경영 컨설턴트
천재적인 음악가 중에는 특이한 행동을 한 사람이 많다. 위대한 작곡가이며 독일 오페라의 독보적인 존재였던 리하르트 바그너도 이 중의 하나로, 복장에 있어서 상당히 기이한 사람이었다. 아마도 바그너의 기행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이 그를 방문했던 사람들은 충격을 좀 받았을 것인데, 중세 시대의 복장을 한 바그너가 응접실의 문을 활짝 열어젖히고서는 마치 신하가 왕의 입장을 알리는 장면에서처럼 문지방에 잠시 서 있곤 했기 때문이다.
손님들은 당연히 놀란 채, 벨벳과 새틴으로 된 재킷에 목깃과 소매가 프릴로 장식된 실크 셔츠를 받쳐 입고, 영국의 헨리 6세나 썼을 만한 모자를 쓴 한 남자를 바라보았을 것이다. 바그너는 자신의 기분뿐만 아니라 그를 만나러 온 사람들에 따라 복장을 바꾸곤 했는데, 특히 작곡할 때는 중세의 음유시인처럼 입었다고 한다.
'삼총사'의 작가인 알렉상드르 뒤마도 첫 방문에서 바그너의 복장을 보고 당황해했다. 물론 이 당혹감은 곧바로 웃음으로 바뀌었지만 말이다. 이날 그는 바그너와의 대화 중에 한때 '가장 비싼 소음'이라고 정의했던 음악에 대한 자신의 무지에 대해 유머러스하게 둘러댔다. 하지만 바그너가 미소 없는 딱딱한 얼굴로 반응하자 뒤마는 기분이 상해 집으로 돌아가, 나중에 '철물점 주변의 어둠 속을 뛰어다니는 고양이들의 폭동에 영감을 받은 바그너의 소음'이라는 경멸스러운 항의 조의 글을 썼다.
한참이 지나 이번에는 바그너가 도로 뒤마를 찾아갔는데, 뒤마는 바그너를 바로 만나주지 않고 기다리도록 했다. 30분이 지나서야 깃털로 장식한 헬멧, 코르크로 된 구명조끼 및 꽃무늬 드레스 가운을 멋지게 차려입고 나타난 뒤마는 행진하듯 들어오면서 위엄 있는 말투로 "작업복을 입고 나타나서 실례하네. 내 아이디어의 절반은 이 헬멧에, 나머지 절반은 사랑의 장면을 쓸 때 신는 잭부츠(무릎 위까지 올라오는 가죽 장화)에 담겨 있다네"라고 하면서 바그너의 복장 취향을 놀렸다. 이렇다고 해서 둘 사이가 나쁜 것은 아니었으며, 바그너와 뒤마는 좋은 친구 관계에 있었다.
바그너의 특이한 복장에 관해서 혹자는 그 원인을 그의 병에 둔다. 사실 바그너는 심한 발진과 염증 등을 동반하는 봉와직염(蜂窩織炎)으로 고통받았는데, 아마도 이것이 그가 부드러운 새틴 가운과 쿠션을 좋아하게 된 이유로 추측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바그너의 편지 내용에서 그가 여장을 좋아했다고 추측하기도 한다. 바그너는 편지로 파리의 재단사에게 레이스 장식과 기타 여성스러운 터치로 장식된 '우아한 의상'을 주문했는데 주로 분홍색이었다고 한다. 겉으로는 두 번째 부인인 코지마(프란츠 리스트의 딸이며 베를린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의 첫 수석 지휘자였던 한스 폰 뷜로우의 전처)를 위한 것이었지만, 꼼꼼했던 코지마가 자신의 일기에서 이런 내용을 전혀 언급하지 않은 것으로 봐서 그가 사용하려고 했던 것으로 의심한다.
코지마는 바그너의 66번째 생일을 맞아 홍학 깃털로 만든 분홍색 카펫을 주문하기도 했다. 바그너는 자신의 마지막 오페라인 '파르지팔'에 대한 영감을 얻기 위해 방을 장미향이 나는 분홍색 쿠션으로 두르고 향수로 욕조를 채웠다고 한다. 이런 그의 성향은 나치가 투사한 상남자로서의 바그너의 이미지와는 거리가 멀다. 69세였던 1883년, 그가 베네치아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할 때 분홍색 드레스 가운을 입고 있었다는 소문도 있으나 소문은 그저 소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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