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친정 아버지→남편 '가정폭력 악순환'…희망은 9개월된 아들뿐

입력 2023-08-22 06:30:00 수정 2023-08-23 08:41:28

아버지 피해 어머니·동생과 전국 누벼…우울증 시달리다 자해 소동 벌여
병원서 만난 남편도 술 취하면 폭력적으로 변해…접근금지명령에도 괴롭혀
보증금 낼 돈 없어 이사 못 가…빠듯한 형편 속 대뜸 자궁암 판정까지 받아

장소영(가명·30) 씨가 태어난 지 9개월 된 아들 민호(가명·1)에게 이유식을 먹이고 있다. 박성현 기자
장소영(가명·30) 씨가 태어난 지 9개월 된 아들 민호(가명·1)에게 이유식을 먹이고 있다. 박성현 기자

간신히 아기를 재우고 잠에 들려던 장소영(가명·30) 씨가 화들짝 놀라 눈을 떴다. 1층 대문이 열리는 소리가 귓가를 스친 탓이었다. 혹시라도 2층으로 올라오는 소리가 들리진 않는지, 그러다 이 집의 문을 잡아당기진 않을지, 기어코 그 소리의 주인공이 술 취한 남편이진 않을지, 머릿속은 순식간에 두려움으로 가득 찼다.

몇 분이 지났을까. 걱정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아이가 깰 세라 천천히 몸을 일으켜 창문 밖으로 고개를 빼꼼히 내밀었지만 밖에는 아무도 없었다. 태풍이 온다더니 거센 바람 소리 때문인 듯했다. 집의 출입문과 외부로 통하는 4개의 창문들이 잘 잠겨져 있는지 다시 한번 확인한 후, 마지막으로 방문까지 잠그고 나서 소영 씨는 아기 곁에 누웠다.

이쯤 되니 불행도 습관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세월은 흘렀지만 소영 씨를 둘러싼 상황은 하나도 달라진 게 없었다. 발소리의 주인공이 아버지에서 남편으로 바뀌었을 뿐이다.

◆ 끝난 줄 알았는데...되풀이 된 가정폭력

기억하고 있는 가장 첫 순간은 2살 때다. 아버지가 밥상을 '탁'하고 밀치니 밥알과 몇 없던 반찬들이 덩달아 튀어 올랐고 이내 들렸던 몇 번의 비명소리가 뇌리에 박혔다. 잊힐 법도 했지만 술에 취한 아버지, 맞고만 있는 어머니, 울고 있는 4살 터울의 여동생까지. 늘 반복되는 상황들이 그 기억을 더 선명케 했다. 그때부터 소영 씨는 술에 취해 비틀거리는 누군가의 발소리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소영 씨는 대학을 마치고 아버지의 폭력을 피해 처음으로 집을 떠났다. 어머니와 동생과 살 집을 마련하기 위해 전남 여수, 경기도 오산 등 전국을 누비며 일자리를 찾아다녔다. 그러다 2년쯤 뒤 자신도 살려달라는 동생의 목소리에 소영 씨는 대구로 향했다. 동생이 가고 싶어 했던 대학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얼마 후에는 어머니도 아버지를 피해 대구로 왔고 세 식구는 희망에 들떴다.

하지만 폭력의 그림자는 이들을 놓아 주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기가 죽어있고, 소심했던 동생이 우울증을 앓게 된 것이다. 대구에서 새 출발을 꿈꿨지만 뜻대로 되지 않고, 어머니가 아버지와 이혼하는 과정에서 받은 스트레스도 극심했던 탓이었다. 그 바이러스는 매일 방 한 칸에 같이 있던 소영 씨에게도 금세 번졌다. 2021년 8월의 어느 날 자매는 도저히 숨 쉴 곳이 없다는 생각에 함께 죽자며 자해 소동을 벌였다. 다행히 식당 일을 마치고 퇴근한 어머니가 일찍 이들을 발견했고 병원으로 이송돼 목숨을 건질 수 있었다.

살아도 죽은 것만 같던 그 순간에 지금의 남편을 병원에서 만났다. 정확히 무슨 일로 입원한 지는 몰랐지만 그는 소영 씨의 이야기들을 참 잘도 들어줬다. 그와 얘기를 하고 있으면 수많은 걱정들이 잠시나마 해결되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대구가 고향이었던 남편은 퇴원 후 집에만 있던 소영 씨를 데리고 매일같이 나들이에 나섰다. 그와 시간을 보낼수록 소영 씨는 활력을 되찾아갔고, 얼마 안 돼 민호(가명·1)를 뱃속에 품게 됐다.

이제는 평범한 일상을 누릴 일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특별한 직업은 없었지만 성실한 남편이 곁에 있었기에 다시 힘을 낼 수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도 술이 문제였다. 자상한 남편은 술만 취하면 폭력적으로 변했다. 그래도 손찌검은 하지 않아 다행이다 싶었는데, 임신 8개월 때쯤 소영 씨는 술에 취한 남편과 다투다 그의 주먹에 맞아 코 뼈가 부러졌다.

◆ 남편 언제 찾아올지 몰라 두려워...최근엔 암 투병도

그래도 결혼생활은 이어졌다. 매일 아침만 되면 남편은 다시는 술을 안 먹겠다며 다짐을 해댔고, 소영 씨도 이 관계가 부디 또 다른 악몽으로 끝나진 않길 바랐다. 그 뒤로도 남편의 크고 작은 술주정은 계속됐으나 내성이 있는 소영 씨는 그런대로 버텨냈다. 그러다 지난해 11월 민호가 태어났고 남편은 실제로 술을 줄여나갔다. 올해 4월에는 달서구의 한 주택가 월세방으로 이사도 했다.

어렵게 구한 새 보금자리는 금세 사건의 현장이 됐다. 남편은 5월쯤부터 다시 술을 매일같이 입에 대기 시작하더니 전보다 더 폭력적으로 변했다. 경찰의 도움으로 병원도 들락날락했지만 알코올 의존증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다. 소영 씨의 아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민호의 밥상을 뒤엎고, 아이가 우는 데도 고성과 욕설을 멈추지 않았다. 올해 6월 접근금지명령이 내려진 후에도 남편은 매일같이 연락을 해 소영 씨를 괴롭혔다.

시련은 쉴 새 없이 몰아쳤다. 민호를 낳고 올해 초 산후 검진을 받던 소영 씨는 대뜸 자궁암 판정을 받았다. 비교적 초기에 발견돼 수술을 잘 끝났으나 경과를 확인하기 위해 지금도 1달에 두 번씩 진료를 받는다. 2주 전에는 3달 전쯤부터 배에 품고 있던 둘째가 계류 유산 판정을 받았다. 남편은 미워도 민호의 동생은 있으면 좋겠다 싶었지만 무엇이든 맘대로 되는 건 없었다. 민호에게는 양쪽 근육 두께가 달라 가만히 있으면 고개가 오른쪽으로 기우는 사경 증상이 발견돼 1달에 한 번씩 병원에서 재활치료를 받고 있다.

이혼을 준비하고 있는 소영 씨는 당장 살 길이 막막하다. 기초생활수급비와 아동수당, 부모급여 등으로 매달 200만원 정도의 돈이 지원되지만 기저귀와 이유식 등 기본적인 육아에 들어가는 비용과 병원비 등이 만만찮다. 가장 큰 문제는 주거다. 술에 취한 남편이 찾아오는 것을 막기 위해 경찰도 이사를 권했지만 보증금을 낼 목돈이 없어 쉽사리 움직이지 못하고 있다. 현재 집의 보증금은 시어머니가 대신 내준 돈이다. 민호를 친정어머니나 동생에게 맡기고 일을 나가볼까도 생각했지만 둘 다 건강이 안 좋아 그마저도 무리다.

오늘도 소영 씨는 민호에게 이유식을 먹이다 창밖을 내다봤다. 대문은 분명 조용한데, 마음은 점점 더 소란스러워져갔다. 이 모든 게 내 탓일까 하는 자책에 잠시 두 눈의 초점을 잃기도 했다. 그런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민호는 뽀얀 두 손으로 소영 씨의 볼을 매만졌다. 소영 씨는 '희망이 바로 앞에 있구나'하고 생각했다.

*매일신문 이웃사랑은 매주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소중한 성금을 소개된 사연의 주인공에게 전액 그대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개별적으로 성금을 전달하고 싶은 분은 하단 기자의 이메일로 문의하시길 바랍니다.

※ 이웃사랑 성금 보내실 곳

대구은행 069-05-024143-008 / 우체국 700039-02-532604

예금주 : (주)매일신문사(이웃사랑)

▶DGB대구은행 IM샵 바로가기

(https://www.dgb.co.kr/cms/app/imshop_guide.html)

https://www.dgb.co.kr/cms/app/imshop_guide.html

[지난주 성금내역]

◆남편 공사 현장에서 사고로 일찍 세상 떠나고 아들까지 소뇌위축증으로 눈감았는데 딸까지 소뇌위축증 걸려 힘겹게 치료시키는 중인 박현숙 씨에게 2,457만원 전달

남편은 사고로, 아들은 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이후 딸까지 아들이 앓았던 소뇌위축증 걸려 힘겹게 치료시키는 중인 박현숙(매일신문 8월 1일자 10면) 씨에게 2천457만3천411원을 전달했습니다.

이 성금엔 ▷우리중앙안과 5만원 ▷이신덕 30만원 ▷김옥선 20만원 ▷전시형 10만원 ▷이창영 5만원 ▷나선희 3만3천원 ▷이서연 3만원 ▷이병규 2만5천원 ▷배숙이 2만원 ▷신종욱 2만원 ▷이재숙 2만원 ▷남장호 1만원 ▷안현준 1만원 ▷이진기 5천원 ▷김건율 2천원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미혼으로 살다 뒤늦게 얻은 딸(자폐 1급)을 홀로 키우다가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장애 단기 보호시설로 딸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민귀주 씨에게 2,935만원 성금

미혼으로 살다 뒤늦게 얻은 딸(자폐 1급)을 홀로 키우다가 교통사고로 크게 다쳐 장애 단기 보호시설로 딸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민귀주(매일신문 8월 8일자 10면) 씨에게 53개 단체, 217명의 독자가 2천935만2천650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피에이치씨큰나무복지재단 200만원 ▷건화문화장학재단 150만원 ▷21보드게임카페(김성원) 120만9천원 ▷㈜대구은행 100만원 ▷㈜태원전기 100만원 ▷최상규이비인후과 80만원 ▷한미병원(신홍관) 60만원 ▷세무법인송정김천2지점 50만원 ▷신라공업 50만원 ▷한라하우젠트 50만원 ▷(재)대백선교문화재단 40만원 ▷금강엘이디제작소(신철범) 40만원 ▷㈜태린(이일우) 40만원 ▷㈜신행건설(정영화) 30만원 ▷㈜동아티오엘 25만원 ▷㈜백년가게국제의료기 25만원 ▷㈜삼이시스템 20만원 ▷㈜우주배관종합상사(김태룡) 20만원 ▷경주천마운전전문학원 20만원 ▷대창공업사 20만원 ▷신성산업(김용환) 20만원 ▷이정하세무사 20만원 ▷㈜구마이엔씨(임창길) 10만원 ▷DCNCA강원 10만원 ▷구마이엔씨 10만원 ▷국제정밀(김용근) 10만원 ▷김영준치과의원 10만원 ▷대구국제블루아트페어 10만원 ▷동양자동차운전전문학원(최우진) 10만원 ▷베드로안경원 10만원 ▷선진건설㈜(류시장) 10만원 ▷세움종합건설(조득환) 10만원 ▷와우이벤트(황선자) 10만원 ▷우리들한의원(박원경) 10만원 ▷이재만 대구지방세무사회 회장 10만원 ▷이전호세무사 10만원 ▷창성정공(허만우) 10만원 ▷채성기약국(채성기) 10만원 ▷칠곡한빛치과의원(김형섭) 10만원 ▷(복)가정복지회 9만4천원 ▷국선도풍각수련 6만원 ▷청산(우창하) 6만원 ▷㈜이구팔육(김창화) 5만원 ▷건천제일약국 5만원 ▷더좋은이름연구소(성병찬) 5만원 ▷동신통신㈜(김기원) 5만원 ▷세무사박장덕사무소 5만원 ▷전피부과의원(전의식) 5만원 ▷흥국시멘트 5만원 ▷동신통신㈜(김기원) 3만원 ▷매일신문구미형곡지구(방일철) 3만원 ▷서성상회(박형근) 2만원 ▷사단법인대한민국힐링문화진흥원 1만원 ▷하나회(김미라) 1만원

▷도경희 200만원 ▷김상태 김진숙 이정추 각 100만원 ▷이신덕 이영석 각 60만원 ▷조성택 채석연 각 50만원 ▷박전호 박철기 성현탁 각 20만원 ▷곽용 김순향 변대석 신광련 이경자 이재일 장정순 전시형 정미숙 정원수 조득환 최창규 최채령 각 10만원 ▷김재용 7만원 ▷강봉열 곽해경 권오성 김미희 김주도 민귀주 박규수 박보람 박영옥 백미화 서정오 안대용 안현숙 엄현경 윤순희 이경옥 이경진 이동호 이종하 이현숙 임채숙 전우식 정휘태 정희영 조재홍 진국성 최상수 최수영 최정원 최종호 최한태 하혜련 각 5만원 ▷이서연 이석우 각 6만원 ▷권오영 방순옥 서숙영 4만원 ▷나선희 3만3천원 ▷강종수 구윤희 권규돈 김연화 김종균 김태욱 김평섭 류상열 변현택 신장미 이대성 이재열 임애경 조진우 최정원 최지원 최춘희 하경석 홍주화 각 3만원 ▷이병규 이윤정 이현목 각 2만5천원 ▷곽병완 김다영 김덕우 김동진 김동혁 김석범 김성진 류휘열 박기영 박임상 박정민 박종천 박해성 박홍선 박희숙 송재일 신종욱 안혜란 여환주 옥민욱 윤영선 이연화 이영수 이운대 이재민 이해수 장레나 전현지 정주현 조영식 최경철 각 2만원 ▷강명은 강준혁 강지원 권령경 권봉수 권오현 권유진 권재은 권증남 김삼수 김서영 김순희 김은영 김주현 김진만 김태천 김하경 김혜경 노아란 도은미 문민성 문석 박건우 박미오 박영수 박인배 박진구 박찬희 박태용 배규리 배상영 성소희 안인호 우순화 유귀녀 유명희 이아영 이원형 이유진 이정수 이정우 이지호 전승기 전유환 정서원 정영선 조인숙 지호열 한정화 황성광 황영신 각 1만원 ▷최웅환 9천원 ▷가지영 김수화 김진혹 문은지 서연서 서연우 손희정 신지윤 우승희 윤인주 이진기 전지원 조용인 각 5천원 ▷문민성 4천원 ▷권두영 김진욱 박선정 각 3천원 ▷박경미 이장윤 각 2천원▷김기만 최연준 각 1천원

▷'성 암' '주님사랑' 각 20만원 ▷'김나현쌤' '사랑나눔624' '케이이수이솜' 각 10만원 ▷'나노김동현' 7만원 ▷'귀주님사연김민정' '김민규안다겸' '재원수진' '천유경 마리아' '홍경애(힘내세요)' 각 5만원 ▷'석희석주' 4만원 ▷'정루카' '해만진주이안' 각 3만원 ▷'김승빈(김천)' '류현수 신지연' '지현이동환이' 각 2만원 ▷'어려운시기돕기' 1만6천원 ▷'건별이힘내요-!' '더운날씨힘내시' '등대불빛' '반규민1009' '익명' 각 1만원 ▷'8.15광복절맞이' 8천15원 ▷'애독자' 5천원 ▷'지성이' '채영이' 각 4천원 ▷'조금이라도보태' 900원 ▷'조금이라도돕기' 6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