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나 친구라 부르지 마라" 독립투사 아버지의 그늘…"광복 이후 10년간 떠돌아다녔죠"
달성공원에서 광복회 조직 후 경주 우편마차 습격 등 항일투쟁…옥살이만 20년
아들 우대현 씨는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 설립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이 마지막 소원"
"살아서 분을 풀 날이 있구나 싶었다." 어린 아들을 앞에 앉혀 놓고 광복(光復)을 얘기하던 아버지는 일흔이 훌쩍 넘은 나이였다. 그러나 허리는 꼿꼿했고, 목소리에는 힘이 실려 있었다. 평소엔 과묵한 사람이었지만, 광복을 말할 때만큼은 어떤 열기가 느껴졌다. 아버지의 이름은 백산(白山) 우재룡(1884~1955) 선생. 1963년 건국훈장인 독립장을 추서받은 애국지사다.
지난 11일 대구 달서구 한 사무실에서 만난 우대현(79) 씨. 독립운동가 우재룡의 장남인 그는 아버지의 발자취를 더듬으며 "어렸을 때는 원망도 많이 했다"고 운을 뗐다. 해방 이후 냉엄했던 시대는 독립운동가 집안을 십여 년간 '떠돌이 생활'로 내몰았다.
"6·25전쟁 전후로 친일파가 득세하고 반공체제가 떠오르면서 숱한 독립운동가들이 '빨갱이'로 몰렸습니다. 우리는 살기 위해 계속 도망쳐야 했어요. 어린 시절 경주, 하양, 김포를 거쳐 충청도 산골짜기까지 숨어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아버지의 동지가 마련해준 단칸방에서 살았죠. 1954년에야 달성군에 정착하게 됐습니다. 어릴 땐 원망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점점 커가면서 아버지가 얼마나 대단한 분이었는지를 알게 된 거죠."
우재룡은 광복회 단원 중 대구경북과 가장 깊은 인연을 이어온 독립운동가다. 경상도 창녕현(현 경남 창녕군)에서 태어난 우재룡은 구한말 군인으로 입대해 18세 때 대구진위대에 편입됐다. 1907년 한국군 군대 해산 조치가 내려지자 곧장 영천 보현산을 본거지로 하는 산남의진에 참여해 의병으로 활약했다.
이후 1915년 박상진 등 뜻이 맞는 동지들을 만나 대구 달성공원에서 항일무장단체 '광복회'를 조직했다. 이들은 무력투쟁만이 조국을 구원할 길이라고 여겼다. 광복회의 사령관은 박상진이었고, 우재룡은 권영만과 함께 지휘장을 맡았다.
군자금 모집과 국외책임자 역할을 맡은 우재룡은 경주에서 대구로 향하는 우편 마차를 습격해 일제가 징수한 세금을 챙기는 등 굵직한 활동을 이어갔다. 1917년 대구권총사건으로 사령관 박상진이 체포된 뒤에는 광복회의 중심을 잡았다. 1918년 일제의 탄압으로 광복회가 사실상 와해된 후에도 몇 년간 조직의 회복을 도모하다 체포돼 16년 동안 옥살이를 하게 된다.
우대현 씨는 "아버지가 독립운동하면서 감옥에 보낸 시간만 20년이다. 슬하에 자녀를 두신 것도 예순쯤부터였다"라며 "어렸을 적에는 또래 친구들 아버지보다 나이가 많아 부끄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지금에서야 그의 삶이 조금씩 이해된다. 아버지의 삶은 끝없는 투쟁의 연속"이라고 말했다.
우재룡은 동지들과 함께 일제에 저항하면서도 배신에 대한 두려움을 품고 살았다. 아들은 아버지 마음에 드리웠던 그림자를 기억한다. 우 씨는 "당시 독립운동가들 중에서도 일본의 밀정이 있었다. 아버지는 그에 대한 두려움을 평생 느꼈던 것 같다"라며 "내가 10살 때 '친구집에 다녀왔다'고 하니 아버지가 '아무나 친구가 아니다. 그냥 아는 사람이라고 해라'고 하시더라. 친구는 죽을 때까지 함께하는 사람이라는 얘기였다"고 회상했다.
우 씨는 기억 속의 아버지보다 나이를 더 먹은 지금도 '독립운동가의 아들'로서 살고자 한다. 그는 지난 2018년 독립운동정신계승사업회를 설립하고 상임대표직을 맡고 있다. 지역의 독립운동사를 한데 모아 후세에 고스란히 전달하는 게 우 씨의 목표다.
그는 "내가 죽기 전에 대구의 독립운동 정신을 기릴 수 있는 현창시설을 만드는 게 소원이다. 민간 차원에서는 어려운 사업이니 지자체의 도움이 절실하다"며 "대구형무소 복원과 대구독립운동기념관 건립사업이 추진력을 얻는 것 같았는데 지금은 지지부진한 상태다. 부디 정부와 지자체가 다시 관심을 주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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