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춘추] 권주가(勸酒歌)가 국가(國歌)가 되다

입력 2023-07-25 10:57:08

금동엽 문화경영 컨설턴트

금동엽 문화경영 컨설턴트
금동엽 문화경영 컨설턴트

우리나라 국가를 불러 보아서도 그렇듯이 국가는 다소 엄숙한 분위기의 노래라고 알고 있다. 이런 국가는 처음부터 국가로 사용할 목적으로 작곡되는 경우도 많지만, 어떤 국가는 국민이 쉽게 부를 수 있도록 기존의 잘 알려진 노래에 가사가 붙여진 것도 있다. 그중에는 국가로 삼기 힘들 만한 노래에 가사를 붙인 것도 있는데 바로 미국 국가다.

미국 국가의 기원은 미국과 영국 두 나라 사이의 전쟁에서 찾을 수 있다. 1814년 9월 13일 비가 내리던 날, 1812년에 있었던 전쟁의 연장선에서, 영국군은 25시간 동안 1천500발 이상의 포탄을 볼티모어의 맥헨리 요새에다 퍼부었다고 한다. 맹렬한 로켓 공격을 이겨낸 미군 병사들이 승리의 표시로 게양한 미국 국기가 새벽 미명에 요새 상공에 펄럭이자, 이를 보고 감동한 변호사이면서 아마추어 시인이었던 프란시스 스콧 키는 '맥헨리 요새 방어'라는 제목의 애국적인 시를 썼다. 그리고 그는 당시 유행했던 노래의 멜로디에다 자신의 시를 가사로 붙였으며, 나중에 이 노래는 별들로 반짝이는 깃발이라는 의미의 '스타 스팽글드 배너(Star-Spangled Banner)'라는 이름으로 국가로 불리기 시작했다.

여기서 재미있는 사실은 미국 국가의 선율로 쓰인 노래가 '천국의 아나크레온에게(To Anacreon in Heaven)'라는 제목의 권주가였다는 것이다. '아나크레온 송'으로도 불리는 이 노래는 런던의 '크라운 앤드 앵커'라는 술집에서 주로 모였던 '아나크레온 협회'의 공식 협회가(協會歌)였다. 18세기 후반에 결성된 이 협회의 회원은 아마추어 음악가인 신사들이었다고는 하지만, '아나크레온'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애주가이기도 했을 것이다.

'아나크레온'은 기원전 582년에 태어난 고대 그리스의 서정시인으로 당시 아테네에서 많은 인기를 누렸다고 한다. 그의 작품에는 진지한 것도 있지만 후기의 작품이 주로 에로티시즘, 환락, 포도주를 찬양하고 있음을 볼 때, '아나크레온 송'은 '아나크레온'을 빙자해 그들 모임의 취지를 옹호하는 주당들의 노래인 셈이다. 이 노래의 가사는 6절로 돼있는데 모든 절의 후렴은 "미의 여신인 비너스의 도금양(桃金孃)과 술의 신인 바쿠스(그리스 신화의 디오니소스)의 포도 덩굴을 엮자"로 끝난다. 관목에 속하는 허브인 도금양은 젊음, 사랑, 다산을 위해 물에 우려서 먹었다고 하며, 바쿠스의 포도나무는 풍요, 방종, 취함과 관련이 있다. 따라서 '아나크레온 송'의 내용은 술에 취한 에로티시즘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관능적인 노래의 멜로디에 가슴 벅찬 가사를 붙여 만들어진 미국 국가는 불리기 시작한 지 100년을 훨씬 넘긴 1931년에야 공식적으로 국가가 되었으며, 5절인데다가 음역이 넓어 가장 부르기 어려운 국가 중의 하나로 인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