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인이 들려주는 클래식] <34>음악의 셰익스피어-폭풍

입력 2023-07-24 11:26:34 수정 2023-07-24 17:18:16

서영처 계명대 타불라라사 칼리지 교수

미랜더. 서영처 교수 제공
미랜더. 서영처 교수 제공

셰익스피어적이라는 말은 문학의 종합 예술적 형태를 뜻하며 여러 측면에서 분석과 이해가 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폭풍'은 셰익스피어의 음악적 실천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작품으로 셰익스피어 문학의 종합예술로서의 가능성을 재확인하는 작품이다. 셰익스피어는 음악이 일으키는 운동성을 효과적으로 사용해 사건의 전개를 암시하고 원하는 방향으로 이끌어간다.

'폭풍'은 섬을 배경으로 하루 동안 일어나는 혼돈을 다룬다. 섬은 파도 소리, 바람 소리, 갈매기 소리 같은 자연으로부터 제공되는 청각 자료를 풍부하게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소리의 파동과 감각 현상은 운동 에너지를 뿜어내며 섬을 힘 있고 안정적이며 다양한 것들을 수용하는 포괄적인 지형으로 만든다. 바람이 불어오고 파도가 밀려오는 외딴 섬은 범람하는 시간의 이미지를 만들어 내고 섬에서의 하루는 영원과 맞먹는 심리적인 길이를 가진다. 이러한 요소들은 섬을 신비로운 관념의 차원으로 진입시킨다.

'폭풍'은 1막 1장에서부터 시각, 청각, 촉각, 후각, 미각 효과로 오감을 자극하며 몰입도를 끌어올린다. 난파라는 사건은 관객들에게 근육 운동적인 경험을 제공하며 몸으로 체험하는 생생한 감각의 지평을 열어준다. 셰익스피어는 이 중에서도 음악과 청각성에 의미를 부여한다. 셰익스피어의 '폭풍'은 음악의 힘에 대한 철학적 이해에 비추어 사건들을 읽도록 독자들에게 요구한다. '폭풍'에 나타나는 음악의 정치적 성격은 엘리자베스 Ⅰ(1558-1603) 시대 궁정 행사에 수반되던 음악과 여기에 내포된 정치적 함의를 반영한다. 주인공 푸로스퍼로가 주관하는 음악은 압도적인 권위를 드러내는 동시에 개성적이고 즉흥적이다.

대위법은 둘 이상의 독립된 선율이나 성부를 동시에 결합시키는 작곡법으로, 셰익스피어는 각기 독립된 개념이나 인물, 사건들을 자유롭게 병치시키며 작품을 끌고 나가는 동력으로 삼는다. 이것은 동양철학에서 말하는 음양대대(陰陽待對)로, 대위는 존재성 확보를 위한 전제라 할 수 있다. 푸로스퍼로는 복수라는 단선율적 진행이 아니라 복수의 과정 중에서도 퍼디넌드와 미랜더를 맺어주며 당대 유행하던 다성음악의 문학적 차용을 보여준다. 또 상징성을 중시하는 중세적 권위와 감각적 정서를 표출하는 르네상스적 인간성의 대비, 목적성을 지니는 음악과 자율적 음악, 등장인물들간의 관계, 한 인물을 구성하는 이원성의 대위를 통해 작품을 입체적으로 운용하며 감정이 깊고 무게감 있는 예술을 창조한다.

'폭풍'은 ▷폭풍과 난파 ▷혼돈과 갈등 ▷용서와 화해로 진행하며 2개의 대립 요소가 통일을 이루는 3부 형식을 보여준다. 대립과 갈등은 새로운 질서 창조를 위한 무질서로 조화로 나아가는 전제 양식이자 이행 양식으로 기능한다.

'폭풍'은 후대의 예술가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중에서도 베토벤은 동명의 피아노소나타(폭풍 No.17 Op.31-2)를 작곡했고, 영국의 라파엘 전파, 워터하우스(John William Waterhouse)는 두 작품 '미랜더'(1875, 1916)로 외딴섬의 미학적 지형을 한 고독한 영혼을 통해 회화적으로 표현하며 폭풍이라는 대사건의 발생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