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현장] 공무상 재해로 무너진 일상, 그 짐을 좀 덜어주오

입력 2023-07-18 13:58:27 수정 2023-07-18 20:04:38

매일신문 사회부 윤수진 기자

윤수진 기자
윤수진 기자

남편에게 쏟는 사랑의 빛만큼 아내의 얼굴에는 그림자가 지고 있었다. 남편을 향한 사랑의 크기를 잴 수 없는 것처럼, 아내의 미소에 드리운 그늘의 깊이 역시 감히 헤아릴 수 없었다.

지난달 23일 대구 북구 칠곡의 한 병원에서 죽곡정수장 부상자 김성배(40) 씨와 아내 이현주(40) 씨를 만났다. 성배 씨는 목에 호흡을 돕는 의료 기구를 차고 있었고, 아내는 연신 기구에서 흘러내리는 체액을 닦아냈다. 하루 종일 치료를 받느라 지친 성배 씨가 취재 도중 꾸벅 잠이 들자, 현주 씨는 "많이 피곤했나 보다" 하며 남편의 머리를 어루만졌다.

부부에게 비극이 닥친 것은 지난해 7월이었다. 대구시상수도사업본부 죽곡정수사업소 지하 2층 저류조에서 청소 용역업체 직원이 황화수소에 중독돼 쓰러지는 사고가 발생하자, 담당자였던 성배 씨는 직접 구조에 뛰어들었다. 이 사고로 저류조 청소 작업자 1명은 결국 가스 중독으로 사망했고, 성배 씨 역시 크게 다쳤다.

성배 씨는 사고 이후 1년이 다 된 지금까지도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자극이나 통증에는 반응하지만, 스스로 생각하거나 움직일 수 없고 말도 하지 못한다. 성배 씨는 1년에 마라톤을 4번씩 참가할 정도로 건강했지만, 지금은 몸무게가 20㎏이나 빠져 예전 모습을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야위었다.

모든 고통은 일상을 잃은 자들의 몫이 됐다. 결혼 1년 6개월 차 새 신부 현주 씨는 초등학교 교사였지만, 지금은 모든 경제활동을 멈추고 남편 간병에 전념하고 있다. 요양보호사 자격증이 있는 성배 씨의 누나와 일주일에서 열흘 간격으로 교대하며 24시간 성배 씨를 돌보고 있는데, 최근에는 남편에게 욕창이 생겨 밤에도 2시간씩 몸을 뒤집어줘야 해서 잠도 제대로 잘 수 없다.

경제적 어려움은 덤이다. 지난해 10월 공무상 재해가 인정됐지만, 지원되는 간병비와 입원 수당은 실제 필요한 금액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른 성배 씨의 간병료 지원은 1일 기준 전문 간병인 6만7천140원, 가족‧기타 간병인 6만1천750원인데, 실제 간병에 드는 돈은 1일 15만~16만 원으로 2배 이상이다. 입원 수당도 한 달 기준 30만 원이지만, 보호자 식비 등을 고려하면 감당하기 어렵다.

성배 씨의 사연이 알려진 후 많은 사람들이 온정의 손길을 내밀었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대책 마련을 주문했고, 대구시 공무원들이 자율 모금을 진행했다. 소식을 접한 죽곡정수장 사망자 유족이 성배 씨에게 성금을 전달하기도 했다. 이 외에도 개인적으로 도움을 주고 싶다며 연락을 주시는 분들이 있었다.

개개인이 조금씩 모은 온정은 성배 씨 가족에게 큰 힘이 됐지만, 진정으로 중요한 문제는 아직 해결되지 않았다. 현주 씨는 인터뷰 때마다 "제가 취재에 응한 것은 공무상 재해 지원이 개선됐으면 좋겠다는 마음 때문"이라며 "우리 같은 피해자가 더 이상 생기지 않았으면 한다"고 했다.

알려지지 않았을 뿐, 지금도 성배 씨와 그 가족들처럼 마음에 어둠을 지고 살아가는 수많은 '공무상 재해' 피해자들이 있을 것이다. 이들의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서는 미흡한 지원 구조를 개선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간병비와 입원 수당 등을 충분히 지원하고, 휠체어 등 보조 장치나 치료 지원 범위를 확대하는 등 실효성 있는 공무상 재해 지원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