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 수십년 쌓아올린 성공, 한순간에 와르르…가족 떠나고 빚만 남았다

입력 2023-07-11 06:30:00

13살때부터 섬유공장서 고강도 노동…능력 인정받아 승승장구
결혼 후 회사 차리고 직원 31명 뒀으나 IMF 직전 부도로 빚 17억 생겨
빚 독촉 시달리자 군말없이 이혼…건강 악화 속 홀로 단칸방살이

지난 7일 김흥춘(가명·69) 씨가 화장실과 연결된 자신의 집 입구의 문턱에 앉아 있다. 사글세 납부시기가 곧이라는 생각에 흥춘 씨는 한숨을 쉬었다. 윤정훈 기자
지난 7일 김흥춘(가명·69) 씨가 화장실과 연결된 자신의 집 입구의 문턱에 앉아 있다. 사글세 납부시기가 곧이라는 생각에 흥춘 씨는 한숨을 쉬었다. 윤정훈 기자

"적어도 니 처자식은 지켜냈어야지!"

오늘도 홀로 화장실과 연결된 집 입구 문턱에 앉아 멍하니 시간을 보내고 있는 김흥춘 씨(가명·69). 그럴 때면 어김없이 처남의 말이 복병처럼 튀어나와 가슴을 후벼 팠다. 한때 자신을 친형처럼 따랐던 그에게서 나온 말이라 몇 배는 더 아프다. 저조한 기분을 달래보려 이제는 볼 수 없는 가족들과 함께했던 행복한 순간들을 떠올려보지만, 이내 자신에겐 그런 흔해 빠진 추억조차 없다는 걸 깨닫는다. 무얼 위해 죽도록 일만 했을까. 이런 결말을 위해 지금까지 아등바등 살아온 걸까. 무능의 대가가 고독이라면, 다시 유능해진다면 고독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걸까.

생각이 거기까지 미쳤을 때 헛웃음이 나왔다. 160만원 사글세 낼 돈도 없다는 지금 이 현실이 떠올라서였다.

◆13살에 들어간 섬유공장에서 능력 인정받아 승승장구

흥춘 씨는 국민학교 4학년에 학교를 그만뒀다. 목재소에 근무했던 아버지가 그 무렵 암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돈이 없어 입원 기간도 6개월밖에 안 됐다. 병마와 제대로 붙어보지도 못한 채, 아내와 7남매를 두고 아버지는 눈을 감으셨다. 그 빈자리는 남은 식구들이 채워야 했다. 어머니가 집 한편에 점빵(경상도에서 '작은 슈퍼'를 이르는 말)을 운영했지만 빈곤은 피할 수 없었다. 초등교사를 목표로 고등학교를 다녔던 셋째 형도 어쩔 수 없이 학교를 관두고 연탄 장사를 시작했다.

어리다고 예외는 없었다. 흥춘 씨 역시 국민학교 중퇴 후 11살 나이에 신문배달 일을 시작했다. 새벽 4시 40분에 도착하는 기차역에서 신문을 받아 지국으로 가져가면 어른들이 장수를 확인했다. 확인을 마치면 신문 230부를 양팔 가득 멜빵으로 동여매고 달리고 또 달렸다. 13살부턴 섬유공장에 들어갔다. 주말 없이 일주일 내내, 하루 11~13시간이라는 어른들도 버티기 힘든 고강도 노동을 흥춘 씨는 버텨냈다.

'깡'도 있고, 일머리도 있었던 흥춘 씨. 그는 6개월 만에 보조에서 직접 기계를 다루는 기술자로 승진했다. 섬유 시장이 한창 호경기였던 그 시절, 수요에 비해 기술자가 부족하니 능력 있는 흥춘 씨를 노리는 업체들이 많았다. 흥춘 씨는 17살 나이에 스카우트 제의를 받고 더 좋은 섬유공장으로 이직했다. 옮긴 공장에서도 실력을 마음껏 펼친 흥춘 씨. 19살 땐 지역 대학 섬유공학과에 특별입학한 그는 공장에서 전액 학비 지원을 받으며 공부해 21살에 대학을 졸업했다.

이 공장은 흥춘 씨 인생에 여러모로 고마운 존재다. 아내도 여기서 만났으니까. 아내는 흥춘 씨보다 나이는 1살 어렸지만 일은 더 오래 한 고참이었다. 업무 주기가 겹쳤던 둘은 늘 함께 도시락을 먹었다. 퇴근길엔 흥춘 씨가 아내를 자전거 뒤에 태워 집까지 데려다줬다. 그렇게 사랑은 싹텄다.

◆야심만만 차린 공장 망하고 가족들 다 떠나… 남은 건 빚·가난·고독

26살에 결혼식을 올리고 그해 딸을, 이듬해 아들을 낳았다. 아버지 없는 설움을 잘 아는 흥춘 씨였기에, 누구보다 든든한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마음이 컸다. 그러다 1989년쯤 다니던 공장을 나와 회사를 차렸다. 회사 개업한 지 2년 만에 주택을 사고, 한때 직원을 31명이나 둘 정도로 성장하는 등 독립은 성공적인 듯했다.

그러나 흥춘 씨의 회사는 IMF 발생 직전 부도를 맞았다. 당시는 법인 간 대금 거래 시 현금보다 어음 결제가 업계 관행이었다. 거래처로부터 판매 대금을 어음으로 받고, 그 어음들은 다른 거래처로부터 섬유 생산에 필요한 약품 등을 구매하는 데 또다시 사용됐다. 그러나 어음을 발행한 회사들이 부도가 나며 연쇄부도가 발생했고, 흥춘 씨의 회사도 이 여파를 피해 갈 순 없었다. 부도와 함께 17억원 빚이 생겼다.

13살때부터 수십 년을 업계에서 구르며 쌓아 올렸던 성공이, 무너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흥춘 씨는 월급이 밀린 직원들에게 집단소송을 당해 4개월 교도소 신세도 치렀다. 이후 떼인 돈을 돌려받기 위해 서울로 떠나 사방팔방을 뛰어다녔다. 그러던 중 아내로부터 더 이상 이렇게 살 수 없으니 제발 이혼해 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빚쟁이들이 집에 하루가 멀다고 찾아와 아내와 자식들을 괴롭힌다고 했다. 무능한 가장은 차라리 없는 게 아내와 자식에게도 낫다는 생각에 군말 없이 이혼했다.

이후 택시 기사로 일하며 홀로 단칸방, 여관 등을 전전하며 지냈다. 하지만 사업 실패로 인한 그림자는 빚 독촉을 알리는 고지서들과 채무자의 형태로 흥춘 씨를 계속 따라다녔다. 노크 소리, 전화벨 울리는 소리 등이 너무 무서워 한때 정신병원에 입원했지만, 그마저도 돈이 없어 두 달만 있다가 나왔다. 파산이나 회생도 해보려고 여러 차례 시도했지만, 연체된 건강보험료 160만원도 못 내고 있는 마당에 파산 등에 드는 법률 비용을 감당할 수 없어 번번이 포기했다.

유일한 생계 수단이었던 택시 운전도 퇴행성 관절염으로 7년 전 그만뒀다. 왼쪽 무릎 연골이 닳아 수술을 해야 하는데, 보험 적용도 안 돼 800만원이 든다고 해 포기했다. 그 뒤로부터 정부보조금 80만원에 의지하며 최소한의 생활만 하고 있는 흥춘 씨는 고혈압, 고지혈증, 심장협심증 등으로 먹고 있는 약만 4가지다. 지난해 여름엔 생애 처음으로 협심증 때문에 119에 실려 가기도 했다. 당시엔 의료급여가 적용되지 않아 정신을 차려보니 의료비로 50만원이 넘게 나왔다. 의사는 치료가 더 필요하다고 했지만 비용 부담으로 6일 만에 퇴원했다.

언제 어디서 날아올지 모르는 빚 독촉 고지서, 언제 어디가 아플지 모르는 연로한 육신…. 흥춘 씨의 삶은 불안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러나 그 불안의 무게를 이해해 줄 사람은 흥춘 씨 곁엔 아무도 없었다.

*매일신문 이웃사랑은 매주 여러분들이 보내주신 소중한 성금을 소개된 사연의 주인공에게 전액 그대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개별적으로 성금을 전달하고 싶은 분은 하단 기자의 이메일로 문의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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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성금내역]

◆어린 시절부터 당뇨로 힘든 시절 보내다 결혼 후 지적장애 아들 치료에 헌신하고 현재 건강 상태 악화돼 아들에게서 보살핌 받고 있는 임미양 씨에게 2,283만원 전달

약한 몸으로 지적장애 아들 치료에 헌신하다가 현재 건강 상태가 악화돼 오히려 아들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임미양(매일신문 6월 27일자 10면) 씨에게 2천283만3천440원을 전달했습니다.

▷국제정밀(김용근) 5만원 ▷다빈치커피대명마루점 5만원 ▷동산내과 (박경아) 5만원 ▷동산내과 (박준석) 5만원 ▷김옥선 20만원 ▷오정환 10만원 ▷전시형 10만원 ▷김해윤 5만원 ▷박옥선 5만원 ▷박정희 5만원 ▷서석호 4만원 ▷이병규 2만5천원 ▷배영철 2만원 ▷신종욱 2만원 ▷홍준표 2만원 ▷최정원 1만5천원 ▷최지원 1만5천원 ▷김성옥 1만원 ▷박현주 1만원 ▷배상연 1만원 ▷서형덕 5천원 ▷이장윤 2천원이 더해졌습니다. 성금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코로나·이혼·태풍 피해 연달아 맞닥뜨린 가운데 홀로 ADHD 및 지적장애 첫째 아들과 심한자폐성장애 있는 둘째 아들 키워야 하는 박신지 씨에게 2,319만원 성금

코로나와 이혼, 태풍 피해를 연달아 맞닥뜨린 가운데 홀로 장애가 있는 두 아들을 키워야 하는 박신지(매일신문 7월 4일자 10면) 씨에게 47개 단체, 222명의 독자가 2천319만2천500원을 보내주셨습니다. 성금을 보내 주신 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피에이치씨큰나무복지재단 200만원 ▷건화문화장학재단 150만원 ▷(주)대구은행 100만원 ▷(주)태원전기 50만원 ▷신라공업 50만원 ▷한라하우젠트 50만원 ▷㈜태린(양홍석) 40만원 ▷최상규이비인후 40만원 ▷삼성기공(장태종) 30만원 ▷㈜신행건설(정영화) 30만원 ▷한미병원(신홍관) 30만원 ▷(주)동아티오엘 25만원 ▷㈜백년가게국제의료기 25만원 ▷금강엘이디제작소(신철범) 20만원 ▷대백선교문화재단 20만원 ▷대창공업사 20만원 ▷(주)구마이엔씨(임창길) 10만원 ▷(주)삼이시스템 10만원 ▷(주)우주배관종합상사(김태룡) 10만원 ▷경주천마운전전문학원 10만원 ▷김영준치과의원 10만원 ▷남경사 10만원 ▷세움종합건설(조득환) 10만원 ▷신성산업(김용환) 10만원 ▷창성정공(허만우) 10만원 ▷하나비스어학원 10만원 ▷건천제일약국 5만원 ▷국제정밀(김용근) 5만원 ▷동신통신㈜(김기원) 5만원 ▷명EFC(권기섭) 5만원 ▷베드로안경원 5만원 ▷봉란옥(이순자) 5만원 ▷선진건설(주)(류시장) 5만원 ▷세무사김기욱사무소(김기욱) 5만원 ▷세무사박장덕사무소 5만원 ▷이전호세무사 5만원 ▷전피부과의원(전의식) 5만원 ▷채성기약국(채성기) 5만원 ▷칠곡한빛치과의원(김형섭) 5만원 ▷피플라이프(박태호) 5만원 ▷흥국시멘트 5만원 ▷국선도풍각수련원 3만원 ▷매일신문구미형곡지국(방일철) 3만원 ▷청산(우창하) 3만원 ▷서성상회(박형근) 2만원 ▷사단법인대한민국힐링문화진흥원 1만원 ▷하나회(김미라) 1만원

▷도경희 200만원 ▷김상태 100만원 ▷김진숙 조성택 각 50만원 ▷김재균 이신덕 각 30만원 ▷박전호 박철기 성현탁 진민지 각 20만원 ▷곽용 김순향 남정해 박매자 박원경 박인숙 윤종언 이명호 이순주 이재일 이현숙 임영주 장정순 전우식 조득환 최영철 최창규 각 10만원 ▷김재용 7만원 ▷고선앵 김경호 김규한 김상수 김창국 도경현 박일희 박종천 백미화 변대석 신광련 안대용 안정원 양선영 엄희숙 이경자 이종하 이준희이향엽 임채숙 장은희 정원수 조용균 최한태 함창환 각 5만원 ▷나선희 3만3천원 ▷곽병완 권규돈 김단 김덕우 김정수 김태욱 김평섭 류화정 문석 박승호 서영열 신성욱 이대성 이서연 이석우 이승진 장충길 정원화 정의관 최윤영 최춘희 하경석 한명환 각 3만원 ▷권두형 김동진 김석범 김태천 남영희 류태운 류휘열 박기영 서성만 서숙영 서은주 성민교 송재일 신동출 오나연 이선미 이재민 이재숙 이재열 이해수 정주현 차정혜 최혜원 각 2만원 ▷최미실 1만5천원 ▷권오영 권유진 김나율 김다영 김삼수 김성진 김성하 김연성 김영미 김유석 김은영 김주현 김지 김지현 김하준 남장호 문호민 박선우 박인배 박인수 박정희 박철용 박태용 박태훈 박홍선 배상영 서진경 서효정 송나영 송재중 안호성 오서현 우순화 우철규 유귀녀 유명희 윤인주 윤태석 이미란 이병순 이선형 이영수 이운대 이재훈 이현숙 장철호 전연수 전재현 전주완 정서원 정준홍 조규태 조성민 조영식 조진주 조현규 지호열 최경철 최준수 최한나 허성범 각 1만원 ▷손희정 송은민 이광민 이시은 이은혜 이진기 조민경 조용인 각 5천원 ▷문민성 4천원 ▷김건율 유한정 각 2천원 ▷김기만 이현주 조규범 최연준 각 1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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