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품 재판매보상청구권 도입, 미술 서비스업 신고제도 마련이 골자
“공정한 거래·유통질서 확립, 작가 권리 보장 위한 장치”
“컬렉터와 화랑에 부담…미술시장 경색시킬 우려” 반응 엇갈려
최근 미술품 재판매보상청구권, 이른바 추급권(Resale right) 규정을 포함한 미술진흥법이 제정되면서 미술계가 술렁이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달 30일 K-미술 생태계의 창작·유통·향유 선순환 체계를 구축하고 한국 작가들의 해외 진출 주춧돌 역할을 할 미술진흥법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고 밝혔다. 그간 개별법을 통한 체계적인 지원 제도가 마련돼있는 문학, 공연, 출판, 음반, 영화 등에 비해 미술은 개별법이 없었다.
미술진흥법 제정안의 핵심은 ▷미술품 재판매보상청구권 도입 ▷미술 서비스업 신고제도 마련 등이다. 작가의 권리를 보장하는 동시에, 체계적인 미술진흥정책 추진과 짜임새 있는 지원을 위한 제도적 초석을 놓겠다는 것.
이 중 추급권이라고도 불리는 재판매보상청구권을 두고 미술계에서 입장차가 오가는 양상이다. 이는 미술품이 작가로부터 최초로 판매된 이후 재판매될 때 해당 미술품을 창작한 작가가 재판매 금액의 일부를 보상받을 수 있는 권리다.
추급권은 양도할 수 없으며 작가 생존 기간과 사후 30년간 존속한다. 작가가 사망한 경우 법정상속인이 행사할 수 있다. 다만 미술품 재판매가가 500만원 미만인 경우, 원작자로부터 직접 취득한 지 3년이 넘지 않고 재판매가가 2천만원 미만인 경우, 업무상 저작물인 경우에는 적용하지 않는다. 보상 요율은 작가·업계의 의견을 수렴해 대통령령으로 정한다.
미술품의 가격은 작가의 평생에 걸친 창작 노력과 활동에 따른 명성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다만 복제가 쉬운 음반, 도서, 영상물과는 다른 특징을 갖고 있어 작가가 최초 판매 후 추가적인 수익을 기대하기 어렵다. 추급권은 미술품의 이러한 특수성을 고려한 창작자 권리보장 제도라고 볼 수 있다. 고흐, 세잔 등의 미술품이 비싼 가격으로 거래됨에도 불구하고 창작자와 그 가족들이 빈곤하게 삶을 마감하는 불합리한 현실에 대응하고자 프랑스에서 1920년 처음 도입됐다.
하지만 현장의 반응은 엇갈린다. 공정한 거래·유통질서 확립과 작가 보호를 위해 필요한 장치라는 의견이 있는 반면, 오히려 미술품 유통시장을 경색시키는 제도가 될 것이라는 우려도 만만찮다.
지역 화가 A씨는 "일단 작가의 권리를 보호하는 법이 제정됐다는 데 큰 의의가 있는 것"이라며 "차후 의견 수렴을 통해 실효성 있게 보완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반면 미술계 종사자 B씨는 "작가에게는 자산 가치가 오를 것이라는 희망으로 인해 더욱 작업에 전념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겠지만, 예술성보다 시장성에 치중할 우려도 있다"며 "앞으로 업계 의견 수렴 및 세부적 신고 기준이 중요할 듯하다"고 했다.
대구에서 화랑을 운영하는 C씨도 "우리나라는 프랑스에 비해 미술 역사가 짧고 급박하게 자본 위주로 성장해왔다. 일부의 경우 투기 개념으로 가격을 의도적으로 올리기도 하는데, 일괄적으로 적용하는 건 맞지 않다"며 "오히려 첫 구매 때 가격을 내려서 구매하는 등 제도를 피해가려는 방식이 생겨날 우려도 있다. 국내 미술시장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정책"이라고 지적했다.
또다른 화랑 대표 D씨는 "창작에 대한 작가의 권한도 중요하지만, 신진·청년작가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화랑의 역할의 입장도 고려해줬으면 한다. 많은 비용을 들여가며 작가를 지원하고 있는데 막상 작가가 주목받고 나서 제대로 보상을 못받는건 화랑도 마찬가지"라고 토로했다.
이어 "사실 작가를 위한다는 건 명분이고 미술 거래에 대한 세무자료 수집과 자금 흐름 파악, 세수 확대가 목적인 것 같다. 여러모로 컬렉터들에게 부담을 주고 중소형 화랑은 더욱 힘들어지는, 미술 시장을 위축시킬 수 있는 제도라는 생각"이라고 꼬집었다.
문체부는 이같은 미술업계의 우려 사항들에 대해 하위 법령 준비 작업과 연계해 의견을 나눌 기회를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업계의 의견이 최대한 반영돼 제도가 시행될 수 있도록 법 시행을 위한 충분한 준비기간을 뒀다고 밝혔다. 문체부에 따르면 정책적 기반 구축은 공포 후 1년, 재판매보상청구권 도입은 공포 후 4년이 경과한 날부터 시행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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