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킬러 문항’과 윤 대통령

입력 2023-07-05 20:09:24

이호준 서울취재본부장
이호준 서울취재본부장

"좋아질 일만 남았다."

최근 만난 여당 고위 관계자의 말이다. 윤석열 대통령과 여당에 대한 여론 얘기다. 대일 굴욕 외교 논란 등 리스크는 다 지나갔고, 현재 최대 이슈인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는 이미 여론에 반영된 상태라 더 나빠질 게 없다는 것이다. 방송통신위원장 지명이 유력한 이동관 대통령실 특보 논란 정도가 현재 예측 가능한 리스크지만 이 역시 상당 부분 반영돼, 국정 운영이 갈수록 탄력을 받고 내년 총선 낙승으로 이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은 최근 '킬러 문항(초고난도 문항) 출제 배제' 등을 내용으로 한 2024학년도 수능 시행 세부 계획을 공고했다. 교육부와 평가원의 설명에도 난이도, 변별력 확보 실패에 따른 '쉬운 수능' 우려가 숙지지 않고 있다. '출제 기법 고도화' 등 무슨 말인지 알 수 없는 설명만 내놓고 있어서다. 지난달 대통령 보고 후 대통령실에서 진행된 이주호 교육부 장관의 '교육 개혁 및 현안 추진 상황 관련' 브리핑 때부터 혼란은 예견됐다.

킬러 문항 배제 정책은 등장부터 어설펐다. 정책의 '맞고 틀림'을 떠나 공개되는 과정과 대처가 상식적이지 못했다. 아무리 사소하다 해도 교육정책은 갑자기, 슬쩍 흘리듯 내놓을 수 있는 게 아니다. 교육부 장관이 대통령 업무보고 후 대통령실에서, 대통령실 출입기자들을 상대로 먼저 공개할 사안이 아니다. 하물며 수능을 5개월 앞두고 할 얘기는 더 아니다. 수험생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난이도 관련 정책이라면 더더욱 그렇다.

아무리 윤 대통령이 지난 3월에 지시한 내용이라고 해도 그렇다. 교육 관련 정책은 적응 기간과 혼란 최소화를 위해 4, 5년 전에 미리 발표해 온 게 관례였다. 그렇게 해도 '맞다, 아니다' '빠르다, 늦다' '옳다, 그르다' '현장을 너무 모른다' 등의 부정적인 반응이 쏟아지는데 하물며 당해, 그것도 수능을 몇 달 앞두고, 제대로 된 발표도 아니고 대통령실 출입기자들 앞에서 난데없이 깜짝 공개하니 당황스러울 수밖에 없다.

모두 다 만족하는 시험은 없다. 특히 수능 정책엔 늘 불만이 따른다. 다 잘 쳐도 문제고, 다 못 쳐도 문제다. 최상위 수험생만 잘 쳐도 문제고 최상위만 못 쳐도 문제다. '준킬러 문제' 등 난이도 조절에 실패하면 상위권 수험생들이 낭패를 볼 수도 있다. 설사 대통령의 불호령과 지시가 있었다 하더라도 서툴렀고 서둘렀다. 당장 올해부터 적용하려고 급하게 서두르기보다 수능 후 발표해 내년부터 적용하는 게 순리였다.

킬러 문항에 대한 '맞고 틀리고'의 판단은 논외로 하고, 이를 배제하면 다른 방법으로 변별력을 확보해야 한다. 수능 전반의 난이도도 조절해야 한다. 제대로만 된다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이를 위해선 적잖은 시간과 정교한 작업이 필요하다. 그렇지 못할 경우 수능이 운이나 컨디션 등 다른 요인에 좌우될 수 있다. 벌써 올해 수능은 '물수능'이 될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다. '실수 하나라도 하면 망한다'는 등의 우려가 쏟아지고 있다.

결과에 대한 책임의 화살은 윤 대통령에게 향할 공산이 크다. 이후 맞닥뜨려야 할 파장도 간단치 않다. 윤 대통령의 지지율에 영향을 미치거나 총선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여대야소의 목표는 물 건너가고 레임덕으로 이어질 우려도 있다. '좋아질 일만 남았다'고 방심하는 순간 칼끝이 윤 대통령에게 향할 수 있다. 물은 이미 엎질러졌다. 제대로 된 변별력 확보로, '킬러 문항'이 윤 대통령에게 '킬러 문제'가 되지 않기를 바랄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