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숙한 향이다. 마을 동산 옆으로 난 길을 가는데 "나 여기 있어." 하며 향긋한 내음이 말을 건넨다. 산 쪽을 보니 하얀 꽃숭어리를 주렁주렁 매단 아까시나무가 반갑다는 듯이 눈맞춤을 한다. 따뜻한 날씨 탓인가, 4월 말인데 벌써 꽃이 피기 시작했다. 아직 봉오리 상태인 것이 더 많지만, 특유의 진한 향기가 행인들의 코끝을 간질이며 존재감을 알린다. 5월이 되어 만개하면 향기에 둔한 사람들조차도 취할 것이다.
아까시나무는 본래 북아메리카에서 자라던 외래식물이다. 어떤 토양에서나 잘 적응하여 일제강점기 때부터 헐벗은 산야에 사방용, 조림용으로 널리 심었다고 한다. 6.25 전쟁 후, 폐허가 된 산에도 많이 심어졌다. 실제로 장소를 가리지 않고 잘 자라서 효과를 많이 본 고마운 나무다. 한때는 일제가 들여온 데다, 황소개구리처럼 생장이 왕성하고 잘 번식해서 많이 베어졌고 홀대받기도 했다. 하지만 밀원, 땔감, 목재 등으로 워낙 쓰임새가 다양하다 보니 아직도 야산에서 많이 자라고 있다. 근래에는 다시 심는다는 소식이 들리기도 한다.
아래로 드리워진 아까시 나뭇잎을 만져본다. 작은 잎이 마주나기로 붙은 잎줄기가 아직은 어려서 부드럽고 연하다. 조금만 더 자라 힘이 생기면 파마를 할 수 있을 것 같다. 파마에 생각이 가닿자 기억 저 멀리서 아까시 잎줄기를 두 손 가득 든 아이가 사붓사붓 걸어 나온다. 초여름이었다. 아까시나무가 많던 마을 뒷산에서 소를 먹이고 있었다. 소가 풀을 뜯는 동안 그 애가 여자아이들에게 파마를 해 주겠다고 했다. 작은 잎을 모두 훑어낸 잎줄기는 낭창낭창하여 잘 구부려졌다. 그 잎줄기로 아이들의 제멋대로 뻗은 단발머리를 돌돌 감아서 양쪽 끝을 묶어주었다. 한 시간쯤 뒀다가 풀어주었는데, 머리카락에 제법 곱슬곱슬하니 볼륨이 생겼다. 친구의 모습에서 자기 모습을 가늠해 보고 예뻐졌다며 얼마나 좋아했던지. 고작 잎 따 먹기 놀이를 하거나 배고프면 꽃잎이나 따먹던 시골 아이들에게 아까시 파마는 새로운 문화 충격이어서 어제 일처럼 기억에 선연하다.
그 앤 어느 날 갑자기 우리 마을에 나타난 아이였다. 반세기도 더 지나다 보니 이젠 모습조차 뚜렷하지 않고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여느 시골 아이들과는 달리 아까시 꽃잎처럼 하얗던 피부는 머리에 각인돼 있다. 그 앨 첨 본 것은 초등학교 5학년이 되기 직전 봄방학 때였다. 소문에 의하면 그 앤 먼 친척 아저씨가 바람을 피워 생긴 딸이었다. 돈 벌러 혼자 올라간 서울에서 만난 여자와 살림을 차렸는데, 그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라고 했다. 아저씨가 하던 일이 실패하자 여자는 아이를 두고 사라져서 귀향하며 데리고 왔다고 했다.
10년 넘게 홀로 시부모 모시고 자식들을 건사하느라 고생한 본처에 대해 잘 아는 마을 아낙네들은 그 애를 마뜩잖게 생각했다. 친모가 술집 여자였다는 확실하지 않은 소문까지 나돌아 더 업신여겼다. 그 앤 서울에서 살다 와선지 피부가 뽀얀 데다, 낯선 환경인데도 붙임성이 좋아서 싹싹하고 인사도 잘했다. 하지만 어른들은 호감 가는 외모도, 붙임성 있는 성격도 싫어했다. 그 애 친모의 출신성분과 관련지어 폄훼하고 동네 아이들과 같이 어울려 다니는 것도 꺼렸다. 어른들과는 달리 또래 아이들은 소문과는 아랑곳없이 금세 친해졌다. 풀이 제법 자란 늦봄부턴 같이 어울려 소 먹이러 다니고 냇가로도 쏘다녔다.
파마한 모습을 자랑하려고 집에 돌아오니 할머니는 대뜸 큰 소리로 야단부터 쳤다. "아이고, 계집애 하나가 동네에 잘못 들어와 순진한 애들을 다 물들이는구나." 비녀를 꼽고 한복을 고집하며 유학자 집안이라는 것에 긍지를 가졌던 할머니는 평소에도 서양문물에 거부감이 심했다. 게다가 그 애가 해줬다고 하니 더 못마땅한 터였다. 할머니의 지청구에도 아랑곳없이 나는 거울을 보며 제법 그럴싸해진 머리카락을 이리저리 만져보았다. 얼굴에 관심을 가지고 거울을 들여다본 것이 그때가 처음이 아니었을까. 아쉽게도 아까시 파마는 두어 시간이 지나자 그만 풀려버렸다. 그 애와의 인연이 짧게 끝나버린 것처럼.
생각해 보면 그 앤 아까시나무와 같은 존재였다. 외지에서 들어와 낯선 곳에서 뿌리내린 아까시나무. 좋은 점이 많은데도 일제와 황소개구리에 연관 지어 거부감을 일으켜서 베어내기도 한 나무다. 그 애 역시 특유의 친화력으로 동네 사람들과 어울리려고 애썼지만, 외지인에다 서출이라는 태생적 한계 때문에 환영받지 못했던 존재였다. 아까시나무가 장점으로 인해 지금은 쓰임도 많고 호감으로 바뀌었듯, 그 애도 시골에서 좀 더 살았더라면 장점을 인정받고 사랑도 받았을지 모른다. 아쉽게도 그 앤 2년도 못 채우고 어느 날 마을에서 감쪽같이 사라져버렸다. 중학교 진학조차 못 할 형편이란 소문을 들었는지 초등학교 졸업 무렵 친엄마가 나타나서 급하게 데려갔다고 했다.
그 앤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사라진 이후 마을에 단 한 번도 나타나지 않았던 아이. 그 애는 그 옛날 아까시 파마를 기억하고 있을까. 질시 받았던 기억 때문에 50여 년 전 시골에서의 2년간을 기억에서 지워버리지는 않았을까. 아까시나무와 같았던 그 애가 뚜렷한 형체도 없이 아까시나무 위로 하얗게 피어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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