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UN 전승기념관 건립 왜 다부동인가?

입력 2023-06-28 17:32:08 수정 2023-06-28 20:57:43

백선엽 장군, 다부동 전투에서 미군과 더불어 북한군 3개 사단을 격멸. 전쟁의 흐름을 바꿔놨다는 평가.
경북도, 호국 메모리얼 파크 조성 계획 등 다부동 일대 호국 인프라 탄탄

28일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 국제연합(UN)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경북도는 다부동에 16개국 6·25 참전국들의 전몰자 합동추모공간을 갖춘 UN 전승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28일 칠곡군 다부동전적기념관에 국제연합(UN)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경북도는 다부동에 16개국 6·25 참전국들의 전몰자 합동추모공간을 갖춘 UN 전승 기념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우태욱 기자 woo@imaeil.com

경북 칠곡군 다부동은 UN 전승 기념관 건립의 최적지로 꼽힌다.

다부동에는 전적기념관이 있고 경북도 호국 메모리얼 파크가 들어서는 등 호국·보훈 인프라가 탄탄하기 때문이다. 특히 다부동 전투는 6·25 전쟁의 흐름을 뒤바꾼 전적지라는 역사적 명분도 갖고 있어 긍정적이다.

대구 북방 22km에 위치한 다부동(현재 경북 칠곡군 가산면 다부리)은 6·25 전쟁 당시 대구 방어에 있어 가장 중요한 전술적 요충지로 통했다.

만약 다부동이 북한 수중에 들어가면 아군은 지형상 10km 남쪽으로의 철수가 불가피했다. 대구가 적 지상화포의 사정권내에 들어가기 때문이다.

북한군은 다부동 일대에 증강된 3개 사단을 투입, 약 2만1천500명의 병력과 전차 약 20대(후에 14대 증원) 및 화기 670문으로 필사적 공격을 감행했다.

이에 반해 지역 방어를 담당한 국군 제1사단은 보충받은 학도병 500여 명을 포함, 7천600여 명의 병력과 172문의 화포만으로도 열세한 전투력을 극복하고 공산군의 이른바 8월 총공세를 저지했다. 북한군 전력을 한 곳에 묶어두고 패퇴시킴으로써 인천상륙작전 등 전세를 뒤집는 반격의 발판을 마련한 전투였다.

전쟁사 전문가들은 "낙동강 전선의 요충지인 다부동에서 백선엽 준장이 이끄는 국군 제1사단과 미군 2개 연대가 큰 희생을 감수하면서 북한군 3개 사단을 격멸했다"며 "이 전투로 북한군은 공세종말점에 도달했고 유엔군은 추후 반격의 계기를 마련할 수 있게 됐다"고 평가했다.

6·25 전쟁 328고지 부근에서 국군장교가 작전을 지휘하고 있는 모습
6·25 전쟁 328고지 부근에서 국군장교가 작전을 지휘하고 있는 모습

◆칠곡의 55일 전투
1. 낙동강 방어선 X선 구축(1950. 8.1. ~ 8. 4)--8월 1일 워커 미 제8군 사령관의 명령
2. 왜관철교 폭파(1950. 8. 3)-북한군의 남진 저지
3. 369고지 전투(1950. 8. 6.~ 8.12)-낙동강을 건너온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
4. 금무봉 전투(1950. 8.9. ~ 8.10)-북한군의 기습과 포격으로 다수의 미군장병 사상
5. 낙동강 방어선 Y선 구축(1950. 8.13)-왜관과 다부동 중심으로 방어선 축소
6. 자고산 미군포로 학살 만행(1950.8.13. ~ 8.17)-북한군 미군 포로 40여명 학살
7. 유학산 전투(1950.8.13.~ 8.23)-9회 백병전과 병력 1천여 명 손실끝에 유학산 탈환
8. 328고지 전투(950.8.13.~8.24)-12일간 고지주인 15번 바뀌는 혈전 끝에 국군 승리
9. 수암산 전투(1950.8.15.~8.30)-막대한 병력손실을 입으며 북한군과 처절한 전투
10.유엔군 융단폭격 실시(1950.8.16)-폭격기 98대 왜관일대 북한군 집결지에 960톤의 폭탄 투하
11.볼링앨리 전투(1950.8.18.~8.23)-신주막 계곡에서 6·25전쟁 최초의 전차전
12.가산산성 전투(1950.8.18. ~8. 27)-가산산성 일대에 배치된 북한군을 섬멸함
13.가산전투(1950.8.31. ~9. 4)-가산에서 남진북한군을 물리치고 방어진지 확보
14.팔공산 전투(1950.9.5.~9.14)-대구 점령위해 팔공산에서 공격하는 북한군 격퇴
15. 315고지 전투(1950.9.11.~9.12)-대구 북쪽 12km까지 진출한 북한군 격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