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미술관 정상화 언제쯤] 기약 없는 관장 임용에 지역 미술계 우려 증폭

입력 2023-06-26 19:30:00

양측 뜻 굽히지 않고 있어 장기전 불가피
관장 공석 장기화 시 기관 위상 하락 등 우려
특정 감사 결과 내달 발표, 부속동 리모델링 제자리
“대구시 등이 나서 특단의 대책 마련할 필요” 지적

최은주(왼쪽) 전 대구미술관장과 안규식 전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장.
최은주(왼쪽) 전 대구미술관장과 안규식 전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장.

대구미술관장 공석이 수개월 이어진 것은 처음이 아니다. 대구시는 2018년 7월 최승훈 전 관장의 임기가 만료된 이후 관장 공모를 세차례나 거쳤고, 이듬해 4월이 돼서야 최은주 전 관장을 임용했다. 무려 9개월간의 공석이었지만 당시는 면접 심사에서 '적격자 없음'을 이유로 재공모가 진행됐고, 더 나은 적임자를 찾기 위한 과정이었기에 앞이 깜깜한 지금과는 판이한 상황이라는 게 지역 미술계의 전언이다.

◆어떻게 법적공방까지 이어졌나

지난 3월 14일, 문예진흥원은 대구미술관 신임 관장을 공모한다고 밝혔다. 최은주 전 관장이 서울시립미술관장에 지원한 사실이 알려지고나서 사의를 표명한 지 일주일만이었다.

문예진흥원은 서류, 면접심사 등 빠르게 절차를 진행해 4월 6일 안규식 전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장을 임용후보자로 내정했다. 하지만 이튿날 안 전 관장이 이전 기관에 근무할 당시 받은 징계 이력이 알려졌고, 결국 문예진흥원은 "결격사유 조회과정에서 미술관장의 직무를 수행하기에는 부적절한 징계 기록이 발견됐다"며 19일 내정을 취소했다.

안 전 관장이 받았던 이전 징계는 대구미술관 학예실장 때 부하 직원의 지도감독 소홀로 인한 정직 3개월, 클레이아크김해미술관장 때 직원간 관계도를 작성한 것을 이유로 한 경고 처분이다. 관장 결격사유가 해임, 파면 처분 등에 한한다고 명시된 문예진흥원 인사 규정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안 전 관장은 "소명 기회 한번 주지 않고 내린 결정에 대해 황당함, 분노를 느꼈다"며 법적 대응을 예고한 데 이어 실제로 문예진흥원을 상대로 내정 취소통보 무효 소송과 재공모 중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했다.

이후 지난 11일에는 안 전 관장의 내정 취소를 무효로 봐야한다는 법원의 판단이 나오기도 했다. 재판부는 당시 "안 씨에 대한 합격 공고를 함으로써 근로계약을 체결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 내정 취소통보는 근거 없이 행해진 것으로 무효로 볼 여지가 크다"며 본안 소송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 안 씨에 대한 내정 취소통보 효력을 정지했다.

하지만 안 전 관장의 내정 취소에 대해서는 문예진흥원도 뜻을 굽히지 않고 있어 장기전은 불가피할 전망이다. 본안 소송 최종 판결까지 재공모도, 안 씨의 재임용도 없을 것이라는 입장을 고수하며 변호사를 추가로 선임해 대응해나가겠다고 했다.

시기를 가늠할 수는 없지만, 재판 결과 문예진흥원이 승소할 경우 문예진흥원은 곧바로 관장 재공모에 돌입할 것으로 보인다. 문예진흥원이 패소 시에는 안 전 관장의 내정 취소가 무효로 되고, 안 전 관장이 임용 수순을 밟을 전망이다.

최근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이건희 컬렉션 전시를 구경하는 관람객들. 매일신문 DB
최근 대구미술관에서 열린 이건희 컬렉션 전시를 구경하는 관람객들. 매일신문 DB

◆당장은 흔들림 없어보이지만…

대구미술관은 최 전 관장이 사임한 이후에도 이건희 컬렉션에 12만명의 관람객을 동원하며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이달부터는 다티스트전, 소장품 기획전 등 계획했던 전시들을 차근차근 선보이고 있으며, 내년 전시 계획도 80% 가량 세워진 것으로 알려졌다.

외부적으로 보여지는 부분에 있어 당장은 흔들림이 없어보이지만, 내년까지 관장 공석이 이어질 경우 기관의 위상 하락, 외부 기관과의 적극적인 교류에 있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는 것이 지역 미술계의 시각이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사태 해결을 위해 대구시가 나서는 등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지역 화가는 "지금까지 거쳐간 대구미술관장들이 2년 이상 재직한 적이 거의 없다. 10여 년간 2년 재직, 공석을 반복하며 벌써 6대 관장을 맞게 생겼다"며 "관장이 바뀔 때마다 그들이 지향하는 기관의 정체성이 변해왔다. 이제는 제대로 큰 틀을 잡고 안정을 찾아야할 것"이라고 말했다.

관장직을 둘러싼 법정 공방뿐만 아니라 내달 대구시의 특정 감사 결과 발표도 있을 예정이어서 대구미술관을 향한 우려는 숙지지 않을 전망이다. 앞서 지난 4월 대구시는 소장품 위작 의혹과 관장 채용 논란 등을 계기로 대구미술관 특정 감사를 실시했고, 소장품 3점이 위작으로 판명난 바 있다.

대구시가 소장품 수집, 인사뿐만 아니라 운영과 회계 등 전반적인 부분에 대해 고강도 감사에 돌입한다고 공표했던만큼 내달 있을 특정 감사 결과에 시선이 쏠린다. 감사 결과 발표 이후에도 소장품 140여 점에 대해 추가 감정을 하겠다는 계획이어서 대구미술관 관련 이슈는 끊임없이 도마에 오르내릴 것으로 보인다.

또한 올해 하반기부터 시민에 개방하기로 했던 대구미술관 부속동 리모델링도 아직 실시설계 단계에 머물러있다. 대구시는 이르면 내년 상반기는 돼야 공사가 마무리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다른 미술계 인사는 "부산 등 다른 지역들이 문화예술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체계를 확립해나가고 있는 상황에서 지금까지 쌓아온 대구의 미술 위상에 자칫 부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걱정이 크다. 좀 더 적극적으로 사태를 해결하려는 노력이 필요해보인다"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