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병현 개인전 'a. Inclination'
8월 5일까지 갤러리 팔조
화면 위 두 종류의 선(線)이 지난다. 한 치의 오차 없이 정교하게 병렬한 선들이 감탄을 자아낸다. 하나는 뭔가로 표면을 뜯어낸 듯한 선이고 다른 하나는 손상되지 않은 원래의 선이다.
정병현 작가의 작업 방식은 독창적이고, 또 한국 동시대 미술에서 독보적이다. 대학 졸업 이후 20여 년간 구상 작업에 몰두했던 그는 10여 년 전부터 과감히 전혀 다른 방식의 작업을 펼쳐오고 있다.
그는 한지(오합지)에 안료를 칠하고 다시 한지를 붙여 색을 칠하는 작업을 수없이 반복한다. 페인팅한 한지를 겹겹이 쌓은 뒤, 타투 바늘로 가장 위의 어두운 색 겹을 뜯어낸다.
결국 드러나는 선은 타투 바늘이 지나간 흔적인 셈. 색을 심기 위해 쓰이는 타투 바늘은 오히려 한지 속에 내재된 색채, 즉 작가의 마음을 드러내도록 한다.
김석모 미술사학자는 "두가지 다른 성질의 선은 화면 위에 공존하며 미학적 긴장감을 자극한다. 하나의 선은 표층, 겉, 감춤에, 다른 하나는 심층, 안, 드러냄에 속해있다. 역설적이게도 내적 선은 더욱 가시화되고 오히려 표면의 선이 심연으로 깊이 가라앉아있다"고 했다.
그의 작품을 가까이에서 보면 한지 특유의 부드러운 보풀이 보이고, 빛에 따라 새로운 색을 발한다. 그의 작업은 바늘로 수많은 폭력을 가하는 방식이지만 한지가 가진 촘촘하고 무수한 조직은 그것을 온전히 받아내고 부드러운 보풀로 드러낸다. 작가는 "모든 과정을 견뎌내고 수용하는 한지의 강인함과 부드러운 성질이 마치 어머니를 닮았다"고 말했다.
작품명은 대부분 'Ambiguous Inclination'(오묘한 기울기)다. 기울어진 선들과 기하학적 이미지에서 나타나는 모호한 느낌을 담고 있다.
"군위 사유원에 건축가 알바로 시자가 만든 전망대 '소대'가 있습니다. 15도쯤 기울어져 있는 것이 특징인데, 직접 올라가보니 저절로 반대쪽으로 몸을 기울이게 되는, 평생 느껴보지 못한 모호한 기울기를 체감할 수 있었어요. 그러한 느낌을 작품에 담고자 했던 것 같습니다."
또한 작가는 불규칙적인 밑작업(한지 페인팅)과 규칙적인 뜯어냄의 조화를 통해 인간의 불완전성을 얘기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완벽함에 대한 갈망보다 불완전성에서 발생되는 갈등을 받아들이고자 한다. 작업은 곧 삶의 여정과도 같다"고 말했다.
이어 "언제나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작업 태도가 중요한 것 같다. 한결 같은 마음으로 꾸준히 작업을 해나가겠다"고 했다.
정병현 작가의 전시 'a. Inclination'은 갤러리 팔조(대구 수성구 용학로 145-3 2층)에서 8월 5일까지 이어진다. 053-781-68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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