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킬러' '준킬러' 무슨 차이?…수능 역대급 킬러문항 어떤 것들 있었나

입력 2023-06-20 17:09:59 수정 2023-06-20 22:15:45

사교육업계에서 사용되던 말… 자체 분석 통한 정답률 따라 킬러·준킬러
2018학년도 영어 절대평가 도입 이후 변별력 확보 위해 국어에 킬러문항…
수능 시행 30년, 최상위권 N수생 느는 상황에 어쩔 수 없었던 측면도…

정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정부가 대학수학능력시험에서 '킬러 문항' 출제를 배제하고 수능의 적정 난이도 확보를 위해 출제 기법 등 시스템을 점검하기로 협의한 지난 19일 대구 수성구의 한 학원 건물 외벽에 부착된 '수능 대비 고3 주말반 모집' 안내문 앞으로 학생이 지나가고 있다. 안성완 기자 asw0727@imaeil.com

최근 교육계에서 뜨거운 감자로 부상한 대학수학능력시험(수능) 국어 영역의 '킬러문항'이 등장한 배경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지난주 윤석열 대통령이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에게 교육개혁 추진 상황을 보고받는 자리에서 "공교육 교과 과정에서 다루지 않는 분야의 문제는 수능 출제에서 배제해야 한다"고 발언한 데 이어 지난 19일 이 부총리까지 나서 '킬러문항 배제'라는 보다 구체적인 출제 방향을 공언했다.

이에 따라 오는 11월 16일 치러질 2024학년도 수능에선 '킬러 문항'을 배제하면서도 변별력을 갖추기 위해 킬러 문항의 자리를 준킬러 문항이 대체할 것이라는 관측에 한층 힘이 실리고 있다.

◆킬러문항이 대체 뭔데… 역대급 킬러문항 어떤 것들 있었나

우선 '킬러문항'이란 많은 응시생들이 풀이에 어려움을 느껴 정답률이 낮은 문제를 일컫는 말로, 공식적으로 기준이나 개념이 정해진 단어는 아니다.

수능 출제 기관인 한국교육과정평가원(평가원)은 문항별 정답률을 따로 공개하지 않으며, 사교육업체들이 자체 분석을 통해 정답률을 추정하고 있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킬러문항이라는 단어는 대략 5~6년 전부터 사교육업계에서 사용되기 시작했던 말로, 정답률이 낮을 경우 이를 킬러문항이라고 하고 이보단 정답률이 높지만 그래도 변별력이 있었던 문제를 준킬러문항이라 표현했다"며 "고유 명사나 공식적으로 사용되는 용어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차상로 송원학원 실장은 "시험별, 과목별로 정답률이 다르고, 딱 정해진 개념이 아니라 업체마다 다르지만, 통상 국어에선 정답률이 2~30%대 밑이면 킬러, 4~50%대면 준킬러라 한다"며 "수학은 정답률이 한 자릿수일 때 킬러, 그 이상부터 30%대까지는 준킬러라 보고 있다"고 했다.

2023학년도 수능 국어영역에서
2023학년도 수능 국어영역에서 '킬러문항'으로 손꼽히는 17번 문제. 종로학원 제공

지금까지 킬러문항으로 악명이 높은 문항들을 살펴보면, 우선 역대급 '불수능'으로 꼽힌 2019학년도 수능 국어 영역 31번이 있다. 과학과 철학이 융합된 지문을 읽고 만유인력에 대한 별도 제시문을 해석해야 풀 수 있었기에 당시 고교생 수준에서 풀기 어렵다는 비판이 일었다.

2020학년도 수능 국어 영역에서 킬러 문항으로 꼽힌 40번도 유명하다.

이 문항은 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BIS 비율)을 다룬 경제 지문을 읽고 풀어야 하는 문제였는데, 지문에 제시된 BIS 비율 계산식에 따라 비율을 직접 계산해야 풀 수 있어 까다로운 문제로 평가됐다.

지난 수능 국어 영역에선 일명 '게딱지 문제'로 유명했던 17번 역시 과학 관련 지문이지만 수학적 추론이 필요해 풀기 어려웠던 킬러문항으로 꼽힌다.

◆영어 절대평가 도입 등 영향

교육계에선 국어 영역의 독서 부문 난이도가 급상승하기 시작한 건 영어 영역에 절대평가가 도입된 이후부터라는 시각이 대체적이다.

표준점수는 자신의 원점수가 평균으로부터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보여주는 지표로, 시험이 어려울수록 높게, 쉬울수록 낮게 산출된다.

국어 표준점수는 2005학년도부터 2018학년도까지는 127점∼140점에 그쳐 평이한 수준이었다.

그러다 2018학년도 수능부터 영어 영역에서 원점수 기준 90점이 넘으면 1등급을 부여하는 절대 평가가 도입됐고, 이후 2019학년도 수능에서 국어 표준점수는 150점으로 최고점을 찍었다.

그 뒤로도 2020학년도 140점, 2021학년도 144점, 2022학년도 149점을 기록해 2018학년도 이전 수준을 웃돌았다.

지문 길이는 1990년대와 별반 차이가 없지만, 정보의 양이 많고 생소한 개념이 등장하는 지문이 나오며 시험 난도가 급상승했다.

주요 과목 중 하나였던 영어 영역이 절대 평가 도입·시험 난도 하락 등으로 변별력을 잃자, 출제 당국이 변별력을 확보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국어 영역에 기댄 것으로 풀이된다.

아울러 1994학년도 수능이 도입된 지 30년이 흐르며 대부분 문제 유형이 간파됐기 때문에 킬러 문항이 등장할 수밖에 없었다는 시각도 있다. 예전 같은 난도의 문제로는 더 이상 상위권의 실력을 가름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박원규 경원고 진로진학부장교사는 "문과 쪽 사고력 평가를 담당하고 있던 두 축이 국어와 영어였는데, 영어가 절대 평가로 빠지면서 공백이 발생했다. 문과적 소양 평가 및 최상위권 안에서 학생들의 우열을 가리기 위해 국어의 역할이 중요해지면서 킬러 문항 등장에 영향을 줬다"며 "특히 수학은 주관식 문항이 있어 교육과정 내에서 출제해도 변별력을 갖추는 게 상대적으로 수월한데, 국어는 그렇지 않다보니 변별력 확보를 위해 주로 비문학 지문에서 교육과정 외의 내용이 포함된 경우가 종종 있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최근엔 의대 쏠림이 심화되며 최상위권 N수생들이 늘며 변별력 갖추기가 더 까다로워진 것도 킬러 문항 등장에 일부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며 "사실 수능이 시행된 지 30여 년이 되면서 수험생들이 웬만한 문제 유형은 다 꿰고 있기 때문에 평가를 위해선 더 어렵게 낼 수밖에 없는 측면도 있다"고 부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