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신학 윈지코리아컨설팅 대표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도널드 트럼프가 당선된 것을 비롯하여, 터키, 헝가리, 필리핀 등에서 권위주의자들이 집권하고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2022년 윤석열 정부가 집권하면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계 여러 나라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권위주의가 부활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정치철학자 마이클 샌델 하버드대 교수와 미국외교협회 연구원인 조슈아 컬랜칙 등 많은 사람이 이러한 현상을 분석하고 있다.
보수화 내지는 권위주의로의 회귀는 다양한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인데, 나라마다 개인의 경험, 정책적인 이슈, 정치적인 변화 등 다양한 측면에서 발생할 수 있지만 몇 가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첫 번째는 경제 불평등과 소득 양극화다. 최근 몇십 년간 한국을 비롯한 많은 나라에서는 중산층의 소득이 상대적으로 증가하지 않았고, 부의 집중화가 일어났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많은 국가에서 경제 불평등이 심화되면서 중산층이 축소되고, 빈곤층이 증가했다. 이러한 경제적인 불평등과 소득 양극화는 사회 분열을 야기하고, 경제체계와 정치체계에 대한 불신을 키우는 주요한 요인으로 작용했다.
두 번째는 중산층의 몰락이다. 중산층은 민주주의 국가의 경제·정치적 안정성을 높이는 사회의 필수동력인데 중산층의 규모가 줄어들면서 정치적 불안정성이 커졌다는 분석이다.
2019년 OECD는 '압박받은 중산층'(Under Pressure·The Squeezed Middle Class) 보고서를 발표하며 OECD 국가 중산층이 몰락하고 있다고 진단했다.
보고서는 중산층이 치솟는 생활비와 낮은 임금상승률이라는 이중고를 겪으면서 "점점 많은 사람에게 중산층은 꿈일 뿐"이라며 "민주주의 사회와 경제성장률의 기반이 과거만큼 안정적이지 못하다"고 강조했다.
세 번째는 정치혐오다. 정치혐오는 권위주의 정치가 부활하는 나라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현상 중 하나이다. 지난 수십년간 경제의 외형적 규모는 커졌으나 경제성장의 실질적인 혜택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사회경제 구조가 불공정하다고 인식하고 있다. 또한 정치가 부패했다. 기존 정치인이 나를 대변해주지 못하고 대중의 목소리를 무시하거나 불공평하게 대우한다는 인식과도 관련이 있다. 이러한 사회·경제, 정치적인 이유로 기존 정치권에 대한 환멸을 갖게 되고 '차라리 권위주의, 독재정권 때가 더 나았어'라는 권위주의에 대한 향수를 불러온 것이다.
네 번째는 미디어의 영향이다. 전통적인(레거시) 미디어는 보수주의와 분노의 정치를 퍼뜨리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보수적인 언론보도를 통해 보수주의에 대한 지지를 높이고, 분노와 증오심을 조장하는 역할을 했다. 한편, 최근 몇 년 동안 급성장한 유튜브, SNS등 뉴미디어는 AI 알고리즘을 기반으로 개인의 취향과 성향에 맞춘 컨텐츠를 지속적으로 노출시킴으로써 이념적 편식과 편향성을 심화시켰다.
요약하면, 최근 몇몇 국가에서 일어나는 민주주의와 상반되는 개념으로서 보수주의와 권위주의 부활의 핵심요인은 경제위기이라고 할 수 있다. 경제위기는 중산층을 몰락시켰고, 소득 양극화를 심화시켰다. 계층상승의 기회가 사라지고 있다는 인식과 기존 정치인의 태도가 정치혐오를 불러왔고, 보수 매체가 이를 부추겨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있다는 것이다.
위에서 살펴본 내용이 현재 우리사회와 별반 다르지 않다.
OECD는 탄탄한 중산층은 경제·정치적 안정성을 높이는 사회의 필수동력이라면서 중산층의 위기에 대한 각국의 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우리 사회는 중산층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는가?
최근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중산층 이미지 관련 인식 조사'를 실시한 결과 한국사회에서의 '중산층'은 부동산을 포함한 재산과 소득 수준 등 경제적 능력을 기준으로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본인 스스로 중산층에 속한다고 응답한 사람은 10명 중 3명에 그쳤고, 하류층에 속한다는 응답이 41.7%로 나타났다. 스스로의 삶에 대해 낮게 평가하고 계층상승의 기회가 적은 사회라는 인식이 자리잡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지속된 소득 양극화와 부동산 가격 폭등 등이 실질 혹은 체감 중산층이 줄어드는 이유로 지목된다.
중산층의 몰락이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 사회·경제적, 정치적 체제에서 공정성 회복이 중산층 회복의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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