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은 1800년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던 필라델피아 임시수도에서 워싱턴 DC로 천도했다. 독일, 스위스, 캐나다 등 지역 간 균형을 중시하는 연방국가의 수도처럼 남부와 북부의 경계선에 독립행정구역을 설정했다. 화합의 상징인 연방의 수도와 접한 버지니아부터 남부가 시작된다. 서편에 자리한 애팔래치아 산맥을 넘으면 중부가 펼쳐진다. 서부나 대양주의 주는 뒤늦게 연방에 가입했다.
1776년 독립을 전후해 미국이 설정한 최우선 발전목표는 북미의 동부 연안에 편중된 13개의 오리지널 식민지를 넘어서는 일이었다. 1803년 프랑스로부터 남부 루이지애나와 중부를 매입하고 19세기 중반에는 스페인이 개척한 플로리다와 텍사스까지 편입시켰다. 남북전쟁 이후 산업화가 촉진되고 철로가 확장되자 미국은 자본주의와 민주주의가 상승작용한 근대화 효과를 누렸다.
미국 남부는 민권운동이 확산된 1960년대에도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이 남아 있었다.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의 스토리처럼 노예를 활용한 플랜테이션 농업을 고수하려고 남북전쟁까지 불사했다. 이러한 선택으로 남부는 오랫동안 저발전의 악순환에 시달려야 했다.
인종차별을 다룬 영화 "그린북"도 1960년대 초를 배경으로 한다. 당시 미국은 스프트닉과 가가린의 우주탐사에 자극받아 소련과의 체제경쟁을 강화하는 한편 가난과의 전쟁에도 착수했다. 하지만 킹 목사의 연설로 유명한 워싱턴 행진(1963), 백인 전용석에 대항한 미시시피 자유여름(1964), 참정권 운동을 촉진한 셀마행진(1965) 등에도 철옹성은 견고했다.
뉴욕시 북쪽 브롱크스에 거주하며 클럽의 해결사로 살아온 근육질의 참전용사 발레롱가와 카네기홀에 거주하며 교양이 넘치는 셜리 박사는 피부색과 행동이 정반대다. 하지만 유색인종을 위한 남부여행 정보지 그린북을 활용해 남부 투어를 진행하면서 공감대를 형성한다.
피아노 트리오의 공연은 켄터키, 노스캐롤라이나, 테네시, 아칸소, 앨라바마 등으로 이어졌다. 남부로 향하는 길목에 자리한 켄터키는 말과 닭을 활용한 프랜차이즈의 성공사례이다. 켄터키 더비와 KFC라는 향토브랜드처럼 경북 영천이 경마의 적지로 판명되면 별빛촌 상표의 인지도가 향상될 것이다.
노스캐롤라이나 주도 랄리 공연을 주선한 지역 토호는 환영 만찬에서 흑인 가정부가 추천했다는 치킨을 메인 요리로 제공해 셜리를 당혹케 한다. 이곳은 남북전쟁의 격전지답게 시내 양복점은 유색인종의 피팅 룸 사용을 거부하고 셜리의 동성애 현장을 경찰이 구타하며 단속할 정도로 억압적이다.
당시만 해도 노스캐롤라이나는 인재가 유출되는 전형적 낙후지대였다. 하지만 1980년대 이후 리서치트라이앵글파크라는 혁신클러스터가 부상하면서 경쟁력이 급상승했다. 산업구조 고도화의 성패는 우수한 인재가 좌우한다. 미국의 고등교육은 주립대학과 커뮤니티 칼리지가 분담해 왔다. 여기에 명문사립 듀크가 인근 대학과 연합해 리서치트라이앵글파크를 선도했다. 이는 지방정부-기업-대학의 공조를 요구하는 글로컬대학30 정책의 원형이다.
보수적 농장벨트의 중심지 애틀랜타는 대구처럼 방직산업으로 성장했다. 인종차별이 극심했던 이곳의 관문공항은 지금도 유색인종이 드물다. 영화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의 고집센 할머니가 조지아 주도인 메이컨 출신 흑인 운전기사와 공감하고 킹 목사의 연설에 귀를 기울일 무렵에 변화가 시작되었다. 1996년 올림픽을 전후해 개발 특수도 누렸다. LA와 뉴욕에서 이주한 한인들이 코리아타운을 건설하고 현대기아차도 조지아와 앨라바마를 선택했다. 하지만 뉴욕으로 옮겨간 CNN 사례는 치열해지는 글로컬 경쟁의 단면이다.
텍사스 스타일의 정수는 공화국 깃발이 나부끼고 멕시코 음악을 즐기면서 바비큐를 체험하는 것이다. 미국 4위 도시로 부상한 휴스턴은 밀도가 낮아 황량한 느낌이지만 목축, 항만, 석유, 우주, 의료를 앞세워 도약했다. 멕시코와 인접한 샌안토니오의 명소 리버워크는 청계천이 벤치마킹할 정도로 수변도시 브랜드로 유명하다. 알라모를 비롯해 멕시코에 항전한 개척민들의 요새를 순회하는 미션 트레일도 관광객을 모으고 있다. 댈러스는 세제와 규제 수단으로 한인들의 이주와 투자를 유치하고 예술과 건축까지 장착해 고속성장을 달성하였다. 주도 오스틴은 행정과 교육 및 예술에 특화한 안정적 발전을 추구해 왔다.
플로리다는 카리브해 섬나라는 물론 중남미 이민자들의 진출이 활발한 곳이다. 반도의 남부에 자리한 휴양도시 마이애미와 키웨스트는 물론 놀이동산과 은퇴자의 천국인 올랜도와 사라고사는 지리적 고립을 기후 마케팅으로 극복한 지역개발 사례이다. 반면에 무리한 관광 투자로 파산한 홋카이도 유바리는 반면교사 대상이다. 한적한 북부의 주도 탈라하시에 행정과 교육을 배치한 균형발전 정책도 교훈적이다.
뉴올리언스는 미시시피강과 5대호를 경유해 퀘벡까지 이어진 프랑스의 식민지 거점이었다. 증기선이 다니던 루트는 멤피스의 블루스, 내슈빌의 컨트리, 클리블랜드의 로큰놀 등 대중음악의 성지로 부상했다. 항만으로 번성했던 뉴올리언스는 항공시대를 맞이해 퇴조했다. 게다가 카트리나 이후에는 재난도시로 각인되며 도심지와 놀이동산의 슬럼화가 촉진되었다. 이에 화려한 유흥과 이색적 건물로 유명한 프렌치 쿼터를 배경으로 문화와 축제를 기획하는 도시재창조에 부심하고 있다.
초강대국 미국도 글로컬이 촉발한 위협에 유의하고 있다. 일자리를 늘리기 위해 자국 해외공장의 리쇼어링과 수입국가의 기업유치를 병행한다. 연방정부는 미국에서 생산된 부품을 사용하고 현지에서 조립해야 보조금 혜택을 부여하기 시작했다. 주정부도 전략적 육성산업을 활용한 특화발전에 매진하고 있다. 카운티나 도시정부도 환경과 역량을 고려한 중장기 발전목표를 적극적으로 관리하고 있다.
김정렬(대구대 교무처장, 자치경찰학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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