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엔 깁스해도 다 출근했어" 교장·교감 갑질에 멍드는 학교 현장

입력 2023-06-21 11:14:54

대구교사노동조합 지역 교사 755명 대상 설문조사 실시
응답자 중 66.4%가 학교관리자에 의한 갑질 경험有
갑질 신고자 보호, 주기적 모니터링 체계 마련 필요… 조례 제정 목소리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출처 클립아트코리아

#대구 한 초등학교에서 근무하는 5년차 교사 A씨는 지난달 발목 인대 염좌로 전치 4주 진단을 받았다. 진단을 받은 다음 날 병가를 신청하려고 했지만, 학교 교감으로부터 "나도 지금 디스크가 있는데 진단서를 끊으면 4주는 바로 나온다", "옛날엔 깁스해도 다 출근했다"는 등의 면박을 당했다. 또한 학교 측은 호전되면 바로 출근할 수 있도록 한 달 전체로 병가를 내지 말고, 4번에 걸쳐 1주일씩 끊어서 병가를 내라고 지시했고, A씨는 어쩔 수 없이 학교 측 요구를 따라야 했다.

#대구 초등 교사 B씨는 봄방학 때 하루 연가를 쓰고 당일치기로 가족 여행을 다녀오려다 교장·교감과 마찰을 겪어야만 했다. 이미 새학기 준비를 다 마쳤고, 수업에 지장이 없는 방학 때 연가 사용이 권장되고 있음에도 학교 관리자 측은 "아직 새학기 준비를 못 마친 교사들도 있는데 본인만 연가를 쓰면 좀 그렇지 않느냐", "봄방학은 방학이 아니다"는 등의 이유를 대며 연가 승인을 미뤘다. 우여곡절 끝에 B씨는 결국 연가를 다녀왔지만, 이후 방학 기간 동안 다른 교사들보다 이틀 더 근무하는 불이익을 당했다.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이 학교 관리자로부터 '갑질'을 당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으면서, 신고자 보호 강화 및 관련 조례 제정 등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대구교사노동조합이 지난달 30일부터 이달 8일까지 교사 75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대구 지역 학교 내 관리자 갑질 실태 파악을 위한 설문 조사' 결과에 따르면, 응답자 중 66.4%(501명)가 학교 관리자에 의한 갑질을 경험한 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대구교사노조 제공
대구교사노조 제공

유형별로는 '복무 및 휴가 승인 관련'이 21.1%로 가장 많았다. 그 다음으론 ▷비민주적 학교 운영 및 독단적 의사결정(18.8%) ▷지나친 교육활동 간섭 및 감시 행위(10.7%) 등의 순이었다. '성희롱 또는 성적 수치심 유발 행위'도 36명(2.2%)이 경험했다고 응답했다.

갑질을 당했을 때 어떻게 대처했는지 묻는 질문엔 '그냥 참고 넘겼다'가 53.2%로 절반이 넘는 비중을 차지했다. 국민신문고, 고충심사, 교육청 갑질피해신고센터 등을 활용했다는 응답은 0.7%(5명)에 불과했다.

대구시교육청에선 지난 2018년 말부터 갑질신고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유치원·초등학교·중학교에서 발생한 경우 해당 교육지원청으로, 고등학교와 특수학교는 본청 관련 과에 접수된다. 다만, 조사 과정에서 자신이 노출될 것을 우려해 센터 이용을 꺼리는 교사가 많은 실정이다.

대구교사노조는 "신고가 접수되면 각 지원청 감사과나 담당 장학사 등이 사안을 다루는데 아무래도 한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람들이라는 생각 때문에 신고 사실이 노출돼 불이익을 받을까봐 센터 이용을 꺼리는 교사들이 많다"고 설명했다.

교사들은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불이익으로부터 신고자를 보호하고, 교육청이 이를 주기적으로 모니터링할 체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아울러 갑질신고 관련 제도 개선을 추진할 기반인 조례 제정을 서둘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현재 17개 시·도 중 교육청 직장 내 괴롭힘 조례를 제정한 곳은 11곳으로, 대구를 비롯한 강원, 광주, 대전, 울산, 충남은 해당 조례가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이보미 대구교사노조 위원장은 "이번 조사를 통해 아직도 많은 학교에서 갑질이 발생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며 "교육활동의 최전선에 있는 교사들에 대한 비인격적 갑질 행위가 만연해지고, 무감각해진다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교육활동으로 돌아가 학생들이 질 좋은 교육을 받지 못하게 될 수 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