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8년 6월 8일 독도 미공군 폭격사건' 희생자 위령제 거행

입력 2023-06-08 15:41:28 수정 2023-06-08 19:57:26

6·8 폭격사건의 진상 관련 특별강연 열리기도
무고한 어민 14명 사망·6명 중경상…피해 보상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뒷배경에 일본 있었다는 정황 있어

6·8 독도 폭격 사건 희생자 위령제가 8일 울릉군 울릉읍 저동리 촛대바위 앞에서 열리고 있다. 대구변호사회 제공.
6·8 독도 폭격 사건 희생자 위령제가 8일 울릉군 울릉읍 저동리 촛대바위 앞에서 열리고 있다. 대구변호사회 제공.
6·8 독도 폭격 사건 희생자 위령제가 8일 울릉군 울릉읍 저동리 촛대바위 앞에서 열리고 있다. 대구변호사회 제공.
6·8 독도 폭격 사건 희생자 위령제가 8일 울릉군 울릉읍 저동리 촛대바위 앞에서 열리고 있다. 대구변호사회 제공.

'6·8 독도 미 공군 폭격사건'에 희생된 어민의 넋을 달래기 위한 위령제가 8일 거행됐다.

울릉군과 푸른울릉독도가꾸기회가 주최·주관한 이번 행사에는 종교계, 대구지방변호사회, 대구비룡라이온스회, 대구 동구회 등 후원 단체와 유족 등 80여 명이 참석했다.

행사는 애초 독도에서 열릴 예정이었지만 기상이 좋지 않아 울릉군 울릉읍 저동리 촛대바위에서 진행됐다.

이들은 이날 6·8 독도사건에 대한 전문가 토론회도 열었다. 토론에선 일본이 이 사건을 교묘하게 이용해 독도 영유권 주장을 펴고 있는 부분도 심도 있게 다뤄졌다.

푸른울릉독도가꾸기회 등에 따르면 6·8 독도 미 공군 폭격사건은 1948년 6월 8일 낮시간에 발생했다. 미 공군이 오전 11시 30분쯤 독도 상공을 지나면서 어로 활동 중이던 어민들을 폭격한 것이다.

당시 언론은 어민 14명이 숨지고 6명이 중경상을 입었으며, 선박 14척이 피해를 입었다고 보도했다.

실제 피해는 이보다 더 컸지만 정부 차원의 정확한 폭격 경위 파악과 피해조사 없이 사건이 마무리되는 바람에 피해 보상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다.

미군 기밀문서보관소에서 발굴한 자료에선 사망·실종 30명, 침몰 선박 80척으로 기록돼 있고 1995년 푸른울릉도가꾸기회·한국외국어대의 조사에서는 선박 피해 80여 척, 피해 인원 150~320명으로 추정됐다.

경북도가 독도조난어민위령비를 세운 건 폭격사건이 발생한 지 2년이 지난 뒤였다.

이 사건의 뒷배경에 일본이 있었다는 정황도 있다. 일본 외무성의 독도 영유권 주장이 담긴 '10포인트' 중에는 일본이 미군에 독도를 폭격훈련구역으로 제공했다는 것을 관보에 게재했다는 내용이 있다.

푸른울릉독도가꾸기회 관계자는 "독도를 자기네 영토라는 잘못된 정보를 미군에 제공해 폭격 연습장으로 쓰도록 했고, 이 때문에 무고한 어민 수십 명이 죽었다"며 "이는 엄연한 국제적 범죄행위"라고 주장했다.

한편, 6·8 독도사건 관련 행사는 대구에서도 열렸다. 대구지방변호사회 독도평화위원회는 이날 시민 등을 초대해 '6·8 폭격사건의 진상과 앞으로의 과제'를 주제로 특별강연을 마련했다. 강연은 전충진 전 매일신문 독도상주기자이자 한국복지사이버대 독도과 초대 학과장이 맡았다.

6·8 독도 폭격 사건 희생자 위령제가 8일 울릉군 울릉읍 저동리 촛대바위 앞에서 열리고 있다. 대구변호사회 제공.
6·8 독도 폭격 사건 희생자 위령제가 8일 울릉군 울릉읍 저동리 촛대바위 앞에서 열리고 있다. 대구변호사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