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각과 전망] 44조 적자 한전 자구책, 정말 뼈를 깎는 각오일까

입력 2023-06-06 18:30:00 수정 2023-06-06 20:36:42

이석수 서부지역본부장
이석수 서부지역본부장

한국전력은 2021년 2분기 7천529억 원의 적자를 기록한 이래, 8분기 연속 마이너스 행진을 이어가고 있다. 2021년 5조8천억 원, 2022년 32조6천억 원의 적자가 났다. 올해 1분기까지 누적 적자 규모는 무려 44조6천억 원에 달한다.

적자의 대부분은 전기를 팔면 팔수록 손해를 보는 역마진 구조에서 기인한다고 한다.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액화천연가스(LNG), 유연탄 등 국제 에너지 가격이 올랐지만, 전기 원가 대비 판매 가격은 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전 세계적인 인플레이션 상황에서 정부가 물가 상승을 우려해 전기 요금 인상을 억제한 탓도 있다.

하지만 정부는 전기 요금 인상에 앞서 한전에 대해 강도 높은 자구책 마련을 요구했다. 무조건 요금 인상을 통해 적자를 보전해 주는 손쉬운 방식은 이제 통하지 않는다는 의미다. '뼈를 깎을 정도'의 개혁으로 전기 요금 정상화에 따른 국민 부담과 불편을 조금이나마 경감하라는 주문이다.

급기야 한전은 지난달 25조 원 규모의 재무구조 개선 관련 자체 대책을 내놨다. ▷자산 매각 2조9천억 원 ▷사업 조정 5조6천억 원 ▷비용 절감 3조 원 ▷수익 확대 1조1천억 원 ▷자본 확충 7조4천억 원 ▷전력 구입비 절감 5조6천억 원 등이 주요 내용이다.

임원 및 간부 사원들의 성과급과 임금 인상분 반납도 포함된다. 전 직원의 동참은 노조와 합의가 필요하다고 한다. 하지만 한전 직원들의 위기 체감은 그렇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지난달 12일 자구 노력 발표 후 열흘 만에 노사협의회를 열어 임금 인상분 반납 등을 안건으로 상정했지만, 노조는 "명분 없는 임금 인상분 반납에 반대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고 한다.

44조 원이라는 적자는 재벌 기업이라도 도산할 지경인데, 한 해 오른 임금조차 반납할 명분이 없다고 하니 할 말을 잃게 만든다. 잘나갈 때 몇백% 성과급 잔치는 당연한 것이고, 적자가 나면 국민들에게 전가하겠다는 뜻 아닌가. '신의 직장' 한전 직원들의 평균 연봉은 2021년 기준 8천496만 원이다. 그중 억대 연봉자는 전체 직원(2만3천563명)의 15%를 차지한다.

사실 한전이 자구책이라고 밝힌 정원 496명 감축도 기획재정부의 공공기관 운영 가이드라인에 따른 '정원 조정'이지, 한전 자체로 대규모 인력 감축은 고려하고 있지 않다.

국민이 아닌 그들만을 위한 한전의 방만한 경영 사례는 속속 드러나고 있다. 지난해 가파른 금리 상승에도 주택자금 사내대출은 연 2.5~3% 금리에 최대 한도 1억 원에 달한다. 시중금리를 적용하고 최대 7천만 원까지인 기재부 지침도 무시했다.

또 지난해부터 직원 거주를 위한 사택 229세대를 매입 또는 신축했고, 임차 세대까지 총 577세대를 새로 조성한 것으로 드러났다. 사상 최대의 적자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1년 반 동안 투입한 비용만 1천300억 원에 이른다. 전국적으로 한전의 사택은 3천188세대로 집계된다. 특히 고연봉자인 처장급 이상 임직원(308명) 중 38%(119명)는 단독 사택을 이용하고 있다.

이런 한전이 6월부터 전국 지사, 지점에 들어가는 모든 신문을 끊는다고 한다. 비용 절감을 위한 자구책의 일환이라고 한다. 그들의 과도한 복지 혜택은 양보를 못 하면서 신문값 줄이는 것으로 뼈를 깎는 절박감이 드러날까. 그저 한전에 대한 불편한 소식은 눈 감고 귀 막겠다는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