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창골 학살’ 유해발굴 73년만에 첫삽 뜬다…24일 개토식

입력 2023-05-23 15:05:30 수정 2023-05-23 21:33:10

한국전쟁 초기 가창댐 인근서 1400여명 처형
“가창댐 축조 시 나온 유해 이장한 장소” 복수 증언 참고
농지로 쓰여 보존상태 양호할 듯… 6월까지 발굴 마무리

대구에서 유해 발굴이 이뤄지는 규모 150㎡ 상당의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 89-6 일원. 이곳은 1950년대 가창댐 공사 당시 발견된 유해가 이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으로, 현재는 빈 밭이다. 진화위 제공
대구에서 유해 발굴이 이뤄지는 규모 150㎡ 상당의 달성군 가창면 용계리 89-6 일원. 이곳은 1950년대 가창댐 공사 당시 발견된 유해가 이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으로, 현재는 빈 밭이다. 진화위 제공

'가창골 학살' 피해자들의 유해가 묻힌 것으로 추정되는 가창댐 인근 농지에 대한 유해발굴(매일신문 2022년 10월 24일 단독보도)이 24일 시작된다. 대구 최초의 국가 차원 민간인 학살 피해자 유해 발굴 사업으로 유족들은 73년만의 발굴 조사가 성과를 낼 수 있을 지 마음을 졸이고 있다.

진실화해를위한과거사정리위원회(이하 진화위)는 24일 오후 한국전쟁 발발 전후 민간인 학살장소로 알려진 대구 달성군 가창골에서의 유해발굴을 시작한다고 23일 밝혔다.

이번 유해 발굴은 진실화해위원회의 지자체 보조사업의 하나로 6천만원의 예산을 투입해 추진된다. 발굴대상지는 가창댐 바로 아래에 위치한 가창면 용계리 토지 225㎡다. 1950년대 가창댐을 만들 당시 발견된 유해가 이장된 것으로 추정되는 지역으로 매장 추정 유해는 약 30구다.

가창골 학살은 대구형무소에 상주하던 대구경북지구 CIC(방첩대)와 3사단 22연대 소속 헌병대, 경찰 등이 적법 절차 없이 두 차례에 걸쳐 최소 1천400명 이상의 재소자와 보도연맹원 및 예비검속자들을 살해한 것으로 추정되는 사건이다.

진화위는 재소자들에 대한 1차 처형은 1950년 7월 7일부터 9일까지 헌병대와 CIC(방첩대)에 의해 형이 중한 좌익사범들부터 시작됐고, 사형수와 무기수 등은 2심 재판을 앞두고 재판도 받지 못하고 끌려 나가 희생됐다고 설명했다.

재소자들에 대한 2차 처형도 1950년 7월 27일부터 31일까지 있었다. 그해 7월 말 북한 주력 부대가 김천과 안동을 공격하기 시작하는 등 대구 주변 전세가 악화됐을 때였다. 대구형무소는 남은 재소자들을 분류해 좌익사범 1천196명을 이감한다며 끌고 나가 군 헌병대에 인계했고, 이들은 이감되는 대신 처형됐다.

성과에 대한 기대감은 큰 상태다. 2010년대에 인근 마을 주민들이 학살 현장과 이장지를 증언해줬고, 댐 건설 당시 유해를 발견했다는 인부들의 증언과도 부합한다. 진화위는 이곳이 평지이고, 그간 밭으로 사용돼 지형 변화가 거의 없었기에 유해 보존 상태가 좋을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했다.

24일 오후 2시 10월항쟁·한국전쟁전후민간인희생자 위령탑 앞에서 희생자들의 영령을 위로하는 유해발굴 개토제가 열린다. 발굴작업은 내달 말까지 이어질 예정이다.

진화위는 관계자는 "이번 유해발굴사건과 관련된 대구형무소 사건과 관련해 추가로 진실규명이 신청된 60건 중 48건에 대한 조사도 시작한 상태"라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