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규 계명대 교수
어느날 아침 눈을 뜬 잠자(Samsa)는 자신이 갑충으로 변해 있음을 목도한다. 방안을 꼼꼼히 살펴보니 모든 것이 어제 그대로다. 분명 꿈은 아니다. 놀랍게도 잠자는 당황하거나 낙담하지 않는다. 신기한 듯 자신의 몸을 관찰한다. 카프카의 <변신>이 우리를 당혹하게 하는 비밀이 여기에 있고 그것을 풀 열쇠도 이 지점에 있다.
잠자는 누운 상태에서 머리를 살짝 들어 "볼록하게 부풀어 오른 갈색의 배와 움푹 팬 주름"을 바라보고, "공중에 허우적거리는 다리가 너무 가늘다"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눈을 돌려 자명종을 보니 6시 반이다. '큰일 났다. 어찌 이런 일이?' 직물회사 외판원인 잠자는 4시에 일어나 5시 기차를 타고 일터에 가야 했다. 알람 소리를 못 듣고 자 버린 것은 지난 5년간 단 한 번도 없던 대형 사고다. 지금이라도 일어나 출근해야겠다고 생각하지만 변한 몸이 말을 듣지 않는다.
포기하다시피 하고 창밖을 내다보는데 가을비가 내린다. 애수(melancholisch)가 스며든다. 지금껏 못 느끼던 감상이다. 아니, 느낄 겨를이 없었다. 5시 기차를 놓쳤으니 다음 기차로 가면 상사의 해고 위협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실로, 잠자의 5년은 시계와 기차, 즉 정확성과 속도와의 싸움이었다. '벌레처럼' 쓸모없는 인간이라는 말을 듣지 않기 위한 싸움이었다.
이제 잠자가 아예 그런 벌레가 되어 방 안에 들어앉는다. 재앙인가? 아니다. 처음으로 온종일 꿀 같은 잠을 잔다. 다음날부터 여동생이 갖다 주는 음식을 먹으며 蟲(충)의 삶에 돌입한다. 방문 앞에 놓인 우유와 빵을 보고 "하마터면 좋아서 웃음을 터트릴 뻔한다." 이 쯤 되면 변신은 무의식 속에서나마 기대한 것이 아니고 뭐겠는가. 잠자는 주는 밥을 먹고 방안을 느릿느릿 다니며 드디어 속도의 폭압에서 벗어난다. 천정에 붙어 있을 때의 스릴을 인간이 어떻게 알겠는가. 한 마디로, 잠자는 곤충으로 역진화하여 느림의 미학을 구현한다.
과연, 벌레가 된 잠자에게 잠자던 미감(美感)이 발현된다. 먼저 미각의 변혁이 일어난다. 그간 잘 먹던 신선한 빵과 달콤한 우유는 아무 맛이 없다. 대신 반쯤 상한 채소, 먹다 남은 뼈다귀, 말라비틀어진 치즈 같은 게 꿀맛이다. 인간들이 버린, 지구환경을 지저분하게 하는 찌꺼기가 "눈물겹도록" 맛있다. 잘 먹고 잘살겠다고 돈 벌 필요가 없다. 버려진 게 맛있어 먹는데 세상은 깨끗해지고 아름다워진다. 이래도 벌레만 못하다 할 것인가?
다음으로 음감의 강화가 나타난다. 잠자는 자신은 음악성이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벌레가 되어 여동생의 바이올린을 들으니 너무나 매혹적이다. 기어가 여동생의 "치마를 물어뜯고 싶을" 정도다. 곤충의 뛰어난 청력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마지막으로 변신은 그림에 대한 감각을 강화한다. 잠자는 잡지에서 오려낸 여자 사진(Bild)을 액자에 넣어 걸어뒀다. 모피를 두른 여자가 예쁘긴 하지만 그리 대수로운 것은 아니었다. 그런데 벌레가 되고 보니 이게 너무나 소중해진다. 어머니와 여동생이 방에서 짐을 빼낼 때, 이 사진만은 내줄 수 없다며 액자에 달라붙어 철통같이 방어한다. 어머니가 실신을 해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모든 유용성을 압도하는 미감의 반란이다.
카프카의 <변신>에 대해 사람들은 가족에게조차 소외되고 버려지는 자본주의 하의 인간을 이야기하곤 한다. 그렇게 부정적으로만 볼 필요는 없다. 잠자는 "적요하고 평온한 사색 속에서 leeren und friedlichen Nachdenkens" 최후를 맞고, 가족들에게 깊은 "감동과 애정을 보내며 mit Rührung und Liebe" 숨을 거둔다. 게다가 이 순간 종탑에서 울려오는 세 번의 종소리를 듣고 밝아오는 여명을 감지한다. 구원의 징후라 해도 크게 어긋나지는 않을 것이다.
세계문학사에 변신 모티브는 수없이 많다. 그러나 벌레 안에 들어가 퇴화한 미감을 되살린다는 상상은 아직 보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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