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카페 늘면서 정체성 잃은 약령시, 관광·문화자산으로 지켜야

입력 2023-04-18 05:00:00

대구 약령시가 약업사·한약방·한의원이 줄고 카페·식당이 늘면서 정체성을 상실, 존폐 위기에 놓였다. 게다가 약령시는 약령시축제 외에는 이렇다 할 콘텐츠가 없다. 이대로 방치하면 약령시가 한방특구에서 해제되는 것은 물론 자연 소멸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약령시의 현주소를 가장 잘 보여준 사례는 지난해 12월 폐쇄한 에코한방웰빙체험관이다. 이곳은 2014년 52억 원의 예산을 들여 문을 열었으나, 방문객이 없어 문을 닫았다. 에코한방웰빙체험관의 연평균 수익은 1천만 원이었고, 2017년부터 순수익은 0원이었다. 관람객이 하루 1명이 안 되는 날도 있었다. 한방에 대한 국민 관심이 줄었는 데다 사람들을 불러들일 킬러 콘텐츠가 없었기 때문이다.

약령시는 2011년 현대백화점 대구점 개점으로 본격적인 침체 국면을 맞았다. 인근에 백화점이 들어서면서 약령시 일대의 상권이 재편됐다. 약업사, 한약방이 있던 공간에 카페, 식당이 문을 열기 시작했다. 이 과정에서 가게 임대료가 크게 올라, 수익성 낮은 기존 한방 상권의 몰락은 가속화됐다. 건물주가 아니면 약업사 운영이 어려운 상황이 됐다. 일종의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2011년 약령시의 한방 관련 업소는 375곳이었으나 현재는 140여 곳에 불과하다.

대구 약령시는 2001년 한국기네스에 국내 최고 약령시로 등재됐다. 2004년에는 한방특구로 지정됐다. 하지만 방문객이 줄고 한방 상권이 축소되면서 한방특구 해제 위기에 놓였다. 한방특구를 유지할 만한 콘텐츠가 없고 홍보도 부족하다. 약령시의 상권 변화를 막을 순 없다. 그렇다고 약령시가 자연 소멸되도록 방치해선 안 된다. 약령시는 천년 역사를 지닌 대구의 소중한 관광·문화자산이다. 스토리텔링 소재도 풍부하다. 한방특구 유지와 관광객 유치를 위한 콘텐츠 개발을 서둘러야 한다. 방문객이 줄고 있는 약령시축제는 개선돼야 한다. 더불어 약령시를 어떤 모습, 어느 규모로 보존할 것인지에 대한 종합 대책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