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형식 한길리서치 소장
정치인들이 언제부터인가 대구를 오면 서문시장을 들른다. 대구 민심이 모이는 곳으로 포장되어 보수의 성지 또는 심장이라 칭한다. 이렇게 포장된 이미지로 상징화되다 보니 대구 오는 정치인마다 서문시장이다. 마치 그리스 아고라(민회場)라도 되는 마냥.
그럼 서문시장이 진짜 대구 민심을 대변하는가? 그래서 보수의 심장이요, 성지인가?
먼저 서문시장이 대구를 대변하려면 여론조사 방법론적으로 서문시장에 모인 사람들이 대구 시민과 가장 유사한 대표 집단(표본)이어야 한다. 그러나 서문시장은 그야말로 물건을 사고파는 전통시장이기에 장 보는 사람들로 북적인다. 그렇다고 서문시장이 아무리 북적여도 대구 시민을 대변하지 못한다. 대구 시민 중에서 1년, 아니 몇 년 동안 서문시장에 안 가는 사람도 많다. 특히나 젊은 세대와 중산층은 그럴 것이다.
그럼 서문시장이 보수의 성지요, 심장인가? 그러려면 서문시장이 뭔가 '이것이 보수다'라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 경주 최씨의 노블레스 오블리주 같은 사회적 책임이나, 지폐에 새겨진 퇴계 이황의 도덕적 혁신, 박정희의 선공후사 공화주의가 아니면 (신)자유주의 신념 등 뭔가 하나라도 보여줄 수 있어야 보수의 성지니 심장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지금껏 무엇을 보여 주는가? 보수 정치인에게 열광하거나 기를 넣어주는 것 말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치인이 서문시장에 장을 보러 온다. 그러나 목적과 거래 방식 셈법은 다르다. 그들은 서문정치시장에 오는 것이다. 여든 야든, 보수든 진보든 오는 목적이 같다. 그중에서도 보수 정치인은 보수 이미지 거래를 위해 온다. 그러다 보니 서문시장은 경제시장(economical market)이 아닌 정치시장(political market)이 된다. 비유를 하자면 고대 그리스의 민회(아고라)와 같아 보여서다.
그러나 현재의 정치 마켓으로 서문시장은 그리스 아고라가 될 수는 없다. 첫 번째 이유는 서문 정치 마켓은 아고라와 같은 쌍방향의 흥정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아고라의 시민은 일방적으로 정치인의 의견을 듣고 그들을 지지해 주고 힘을 실어주기 위해서만 모이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시민들과 토론으로 여론을 조성하여 이를 민의로 정치에 반영하는 상향식 소통이 더 큰 목적이다. 반면 서문정치시장에서는 전통시장에 거의 가지 않는 정치인에게 물건값과 현금으로 시장 물건을 사는 방법을 알려주며, 설 자리를 잃어가는 전통시장의 어려움을 호소하는 정도가 상향식 소통이다.
두 번째 이유는 마켓에서는 상인이 팔고 장 보러 온 사람이 사는데, 서문정치시장에서는 정치인이 팔러 온다. 그런데 상인과 정치인의 셈법은 다르다. 상인의 셈은 매출과 이윤으로 명확히 드러나지만, 정치인들은 이벤트나 퍼포먼스로 거래하고 언론에 나올 사진, 즉 이미지로 계산한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대구 보수를 이미지화해 전국에 다시 판다. 어떻게 보면 큰돈 들이지 않고 참 남는 장사일 수가 있다.
그런데 최근 이 지역의 보수 장사가 시원찮다. 한길리서치-쿠키뉴스 4월 정기 조사(4월 8∼10일, 국민 1천7명, 유선전화 면접+무선 ARS, 95%신뢰수준 ± 3.1%포인트
. 중앙여론조사심위위원회 참조)를 보면 대통령 지지율은 전달의 44.1%에서 34.2%로 9.9%p 하락했다. 정당 지지도 현 정부 이후 처음으로 역전당했다(더불어민주당 34.3%, 국민의힘 32.9%). 더 심각한 것은 다음 총선에서 정권 견제를 위해 야당에 투표하겠다가 54.2%로 정권 안정을 위해 여당에 투표하겠다(34.8%)보다 20%p가량 더 많다. 더구나 여론의 뿌리인 정치 이념에서 보수가 정권 초 40% 정도 되던 것이 33.3%까지 하락했다. 이는 앞으로 민심을 되돌리기도 그만큼 어려워지고 있다는 의미다.
이쯤되면 대구 서문정치시장이 뭔가 크게 잘못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시장에서 주객이 전도되었기 때문이다. 시장의 원리는 다 같다. 파는 사람과 사는 사람 역할이 분명해야 하고, 사는 사람이 합리적 선택을 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러나 서문정치시장은 수요자여야 할 정치인이 일방적 공급자로 파는 역할을 했고, 대구 민심과 보수 이미지를 싼값에 가져갔다. 그나마도 이제부터는 정치적 셈이 빠른 정치인들의 서문정치시장 발길은 줄어들 것 같다. 물론 표가 궁한 선거철에는 다시 또 오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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