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고부] ‘구급차 뺑뺑이’

입력 2023-04-06 18:50:32

김교영 논설위원

10대 학생이 구급차에 실려 병원을 헤매다 숨진 사건은 우리 사회의 부끄러운 민낯이다. 의식이 있던 환자가 골든타임을 놓쳐 목숨을 잃는 일이 의료 선진국이란 나라에서 벌어진 것이다. 그것도 대학병원 4곳, 권역외상센터(경북대병원 내)까지 있는 '메디시티 대구'에서 말이다. 누구도 잘못을 인정하거나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10여 년 전 발생한 장중첩증 여아 사망 사건이 떠오른다. 2010년 11월 장중첩증에 걸린 4세 여아가 경북대병원 등 대학병원 응급실을 찾아다녔으나 적절한 치료를 받지 못했다. 이 아이는 구미의 병원에서 수술 중 사망했다. 이 사건과 관련해 경북대병원과 해당 의사는 정부로부터 행정제재를 받았다.

환자를 태운 구급차가 응급실을 찾아 헤매는 것을 '구급차 뺑뺑이'라고 한다. 이런 현실에선 누구나 거리에서 생명을 잃을 수 있다. 구급차 뺑뺑이는 고질병(痼疾病)이다. "다치더라도 휴일은 피하라." 20년 전 기자가 의료 분야를 맡았을 때, 의사들에게 숱하게 들은 경고(警告)다.

구급차가 응급실에 갔지만 환자를 받아주지 않아 되돌아간 '재이송' 사례가 지난해 7천634건(대구 392건)에 이른다. 전화로 수용이 어렵다고 통보받은 사례까지 포함하면 실상은 더 심각하다. 재이송 사유는 ▷전문의 부재 31.4% ▷병상 부족 17.1% 등이다. 국립중앙의료원의 '발병 후 응급실 도착 소요시간' 분석 결과를 보면, 지난해 30분 미만인 경우는 7.0%에 불과했다. 30분~2시간 미만은 28.0%였다.

구급차 뺑뺑이 해결책은 단순하다. 응급 수술과 치료를 할 의사와 병상을 늘리고, 환자와 병원을 이어줄 시스템을 개선하면 된다. 경증의 환자가 상급병원 응급실로 몰리는 현실이 중증 환자들의 골든타임을 놓치는 원인으로 꼽히기도 한다. 병원과 의사의 윤리와 소명 의식 부재를 지적하는 의견도 있다. 응급환자를 적극적으로 받으려는 의지가 부족하다는 것이다. 정부는 사건이 터질 때마다 응급의료 대책을 내놓았다. 그런데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 정부가 지난달 발표한 '4차 응급의료 기본계획' 핵심 대책 9개 중 8개는 5년 전 발표한 3차 기본계획의 복사판이다. 시설 확충과 인력 충원, 모든 게 돈 문제로 귀결된다. 목숨 앞에서 언제까지 돈타령만 할 것인가.

김교영 논설위원 kimky@imae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