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의 경주 그곳에 가고 싶다] <14>경주 황리단길

입력 2023-04-07 14:30:00 수정 2023-04-07 16:57:56

신라시대 번화가 MX세대 '핫플'로
모든 이들 말 타고 길거리 금빛 찬란…'동방의 이상향' 바실라 곧 경주 뜻해
로마 버금가는 머물고픈 화려한 도시

경주의 핫플레이스인 황리단길이 인기를 얻고 있다. 전국에서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경주의 핫플레이스인 황리단길이 인기를 얻고 있다. 전국에서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신라는 전성기에 서울이 17만 8,936호(戶)였고, 1,360방(坊), 55리(里), 35개의 금입택(金入宅)이 있었다. ...

제 49대 헌강대왕 시대에는 성 안에 초가집 한 채 없고 집의 처마와 담이 서로 닿아 있었으며, 노랫소리와 피리 부는 소리가 길에 가득하였고 밤낮으로 끊이지 않았다."(삼국유사 진한(辰韓)조)

경주는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동아시아 대표도시로 성장을 거듭했다. 실크로드를 따라 신라에 온 서역상인들은 금빛 찬란하고 화려한 경주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제 나라로 돌아가지 않고 눌러 앉았다.

"태후르 왕국의 수도 바실라는 폭과 넓이가 2파라상(12km)이었다. 바실라는 평범한 도시가 아니었다. 선녀로 가득찬 낙원과 같은 곳이었다. 깨끗한 물이 사방에서 흐르고 있었으며, 개천 가까이에는 향나무들이 있었다. 정원은 재스민으로 풍성하였고 향기로운 튤립과 히아신스로 가득했다.

황리단길 쫀드기 가게 입구에는 쫀드기를 사려는 관광객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황리단길 쫀드기 가게 입구에는 쫀드기를 사려는 관광객들로 장사진을 이루고 있다.

모든 길과 장터는 잘 단장되어 있었다. 돌로 만들어진 성벽은 정교하게 쌓여있어 축대 사이로 아무 것도 지나갈 수 없었다. 도시의 냄새가 너무나 향기로워서 사람의 넋을 잃게 하였다. 모든 이들이 말을 타고 있었으며 아비틴에게 금을 선물했다. 모든 길과 거리는 반짝거렸으며 중국산 실크로 장식되어 있었다. 가인들은 지붕에서 노래를 불렀으며 풍악소리가 도시에 울려 퍼졌다...."

10세기에 서술된 페르시아의 서사시 <쿠쉬나메>는 7세기 후반 무렵의 신라의 모습을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바실라가 경주다. 페르시아인에게 경주는 '동방의 이상향'으로 비칠 정도로 모든 것이 풍요로운 도시였다.

당(唐)의 수도 장안이나 송(宋)나라의 수도 카이펑(开封)처럼 번화가에는 밤마다 홍등(紅燈)이 켜지고 야시장이 열리는 신세계가 펼쳐졌을 것이다. 장택단(張擇端)의 <청명상하도>에 생생하게 묘사된 카이펑의 모습이 경주와 다를 바 없었다.

'寺寺星張(사사성장) 塔塔雁行(탑탑안행)' (절이 별처럼 흩어져 있고, 탑(塔)은 기러기가 줄지어 나는 듯하다) <삼국유사>에 기록된 경주시가지의 풍경은 황룡사와 분황사를 비롯한 왕사(王寺)는 물론, 수많은 절들이 도심을 가득 채웠던 것으로 보인다. 화려한 '금입택'과 사찰로 왕궁 월성과 바로 이어진 경주 도심의 면모는 이방인의 눈에도 장안이나 카이펑, 로마에 버금가는 화려한 도시였을 것이다.

천년을 지속하던 신라의 영화(榮華)는 그러나 속절없이 무너져 내렸다. 시간을 이기는 천년왕국은 존재하지 않는다.

경주의 핫플레이스인 황리단길이 인기를 얻고 있다. 전국에서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경주의 핫플레이스인 황리단길이 인기를 얻고 있다. 전국에서 관광객들로 붐비고 있다.

◆황리단길의 탄생

세계 최고의 고분도시 경주의 시그니처 '대릉원'을 끼고 경주가 부활하고 있다. '황리단길'이다.

천마총과 미추왕릉, 황남대총의 거대한 고분들이 자리잡은 대릉원을 바라보는 고즈넉한 '고분뷰', '능뷰'. 그곳은 '문화재보호구역'으로 묶여서 수십 년 동안 개발은 커녕 집이 허물어져도 수리조차 제대로 하지 못하던 낡은 한옥들이 어깨를 맞대고 버티고 있던 오래된 골목이었다. 경주빵의 대표주자인 '황남빵'을 만들어 팔던 황남동이다.

대릉원과 첨성대와 동궁과 월지 등이 지근거리에 있는 황남동에 특색 있는 카페와 서점, 음식점이 속속 들어서고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열광하기 시작한 것이다. 마치 이태원 '경리단길'같다며 어느 순간 황남동 경리단길에서 '황리단길'로 불리기 시작했다.

경리단길을 모방한 거리는 전국에 걸쳐 우후죽순처럼 생겨났다. 짝퉁 경리단길은 무려 40여 곳에 이르지만 '황리단길'은 '원조' 경리단길의 쇠락에도 불구하고 경주의 '핫플'로 MZ세대의 사랑을 받고 있다.

아주 오래전부터 그곳에 자리하고 있던 쌀집과 떡집, 세탁소 등이 분위기 좋은 이탈리안 레스토랑과 일본식 덥밥·스시식당으로 탈바꿈했다. 이런 골목에 있을 법하지 않은 서점(어서어서)과 사진관이 경주를 찾는 새로운 발길을 사로잡았다. 그 거리에는 어느 새 경주의 명물이 된 '경주빵'과 '십원빵' 불량식품의 대명사인 '쫀디기'도 들어섰다. 골목 안쪽에는 세상 어디에도 없는 경주만의 역사의 향기와 고즈넉함을 함께 갖춘 한옥펜션이 포진하기 시작했고 인스타에 이름을 알린 '맛집'들이 황리단길을 특색 짓는 음식지도를 만들어냈다.

경주십원빵
경주십원빵

◆경주에 가는 이유

우리가 경주에 가는 이유는 첨성대와 동궁·월지, 불국사 등 신라시대를 기억하는 유적 관광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수학여행의 추억을 되살리기도 하고 경주만이 갖고 있는 도시의 분위기를 느끼고 만끽하기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 중의 하나가 황리단길이기도 하다.한나절 동안 황리단길 이곳저곳을 배회하다가 출출해지면 눈앞에 보이는 어느 카페나 식당에 가더라도 주저할 것이 없다.

경주 특색의 쌈밥집이든 콩국이든 혹은 일본풍 물씬 나는 스시 한 접시를 먹더라도 황리단길의 향기를 느끼는 것으로 족하다. 황리단길에서 오분만 걸으면 첨성대와 월성에 갈 수 있고 담장만 넘으면 대릉원이다. 맛깔스러운 수제생맥주를 골라 마실 수 있는 펍(pub)도 있다. 지갑이 가벼운 여행자를 위한 게스트하우스에서부터 일본에 가지 않아도 온천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고급 '료칸'에 이르기까지 숙소도 다양하게 자리잡고 있다.

대릉원사진관
대릉원사진관

가문 하늘에서 봄비가 내리면서 봄의 경주를 상징하던 벚꽃은 흔적도 없이 다 졌다. 대릉원 핫스팟 목련나무도 하얀 꽃잎을 뚝뚝 떨어뜨리는 시간의 마술을 부렸다. 황리단길 카페 2층에서 바라보이는 대릉원 고분뷰는 세상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황홀한 선물이다. 시선의 끝에 잡힌 고분이 어느 왕의 것인지 짐작할 필요는 없다.

신라 천년의 역사를 기억하기위해 온 경주가 아니라면 그저 파릇파릇 솟아나는 신록을 통해 '왕릉'도 해마다 살아난다는 것을 눈으로 보기만 하면 된다. 역사는 책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눈으로 보고 느끼는 것이 아닐까.

신라 천년이 이어지던 그 때 황리단길은 금입택 처마들이 이어진 최대 번화가로 영화를 누린 그 거리였을지도 모른다. 왕궁 월성이 지척지간에 있고 왕릉이 줄지어 자리하고 있는데다 (선덕·진덕)여왕의 시대가 남겨둔 첨성대가 왕의 권위를 과시하려던 것이라면 황리단길이 도심이었을 것이다.

황리단길은 도시 전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경주와 어울리지 않는 우리 시대의 산물이 아니라 경주를 더 경주답게 하는 거리로 재탄생했다.

황남빵
황남빵

◆경주빵

경주시내에는 유난히 빵가게들이 많다. 다른 도시들에서 볼 수 있는 유명프랜차이즈 빵이 아니라 '경주'라는 지리적 명칭을 붙인 '경주빵'이나 '경주 찰보리빵'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십원짜리 동전을 형상화한 '십원빵' 가게도 늘 10여 m이상 줄을 서있는 풍경이 낯설지 않을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경주사람들에게 경주빵은 고향을 떠올리게 하는 빵으로, 추석이나 설날 등 명절 때마다 한 박스씩 사려는 인파가 몰리곤 했다.

일본식 '화과자'에서 유래한 경주빵의 원조는 일제식민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황남동에서 최영화장인이 간판도 없는 가게에서 단팥소를 넣은 화과자를 만들어 팔았는데 그것이 현재의 '황남빵', '경주빵'의 시작이었다. 현재의 황남빵과 최영화빵, 그리고 이상복경주빵은 모두 같은 계열의 빵가게라고 한다.

경주십원빵
경주십원빵

언제부터인지 십 원짜리 동전을 형상화한 '십원빵'도 경주빵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는 경주의 대표빵의 하나로 대접받고 있다. 아마도 십 원짜리 동전의 한 면에 새겨진 불국사 다보탑때문인 모양이다.

일본 도쿄와 오사카, 오키나와 지역에서도 최근 '10엔 빵'이 인기를 끌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10엔(円) 동전을 모델로 하고 있으나 원조는 한국이다.

다시 경주를 찾는다. '능뷰'가 아름다운 카페에 앉아 아이리스 커피를 마시거나 일본식 덥밥을 먹고 피자를 함께 먹는다. 동·서양과 과거와 현재 미래가 공존하는 시공감을 오늘 우리는 오롯이 황리단길에서 느낀다.

서명수 객원논설위원(슈퍼차이나연구소 대표)diderot@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