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처벌 만능’ 중대재해처벌법, 이런 환경에서 누가 기업하려 하겠나

입력 2023-04-04 05:00:00

한국경영자총협회가 전국 50인 이상 기업 1천19곳을 대상으로 '2023년 기업규제 전망조사'를 한 결과 국내 기업들이 가장 부담을 느끼는 규제 1위가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조사됐다. 중대재해법의 '기업 부담지수'는 5점 만점에 3.45점으로 주 52시간제 등 근로시간(3.38점), 최저임금(3.37점)보다 높았다.

지난해 1월 중대재해법 시행 이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근로자 희생을 1명이라도 줄이자는 법 취지와는 달리 중대재해 예방 효과가 나타나지 않아서다. 중대재해법 적용 대상인 상시 근로자 50인 이상 사업장에서 지난해 중대재해 사망자는 256명(230건)으로 법 시행 이전인 2021년 248명(234건)보다 오히려 늘어났다. 기업 오너까지 형사처벌하는 '엄벌 만능주의'가 중대재해를 줄이는 데 효과가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불어민주당이 처리한 중대재해법은 여러 문제를 안고 있다. 산업계에서 지적하는 중대재해법의 문제점 3가지는 법이 모호하고, 처벌 중심이며, 현장의 안전불감증을 개선할 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학계에서도 실효성 없는 안전 규제 양산, 부실한 재해 원인 조사, 불명확하고 모호한 도급인 의무와 책임, 위험성 평가의 형식적 운영 조장, 중소기업 재해예방사업정책의 실효성 부족 등 문제점을 꼽기도 했다.

아무리 주의를 기울여도 어쩔 수 없는 사고가 발생할 수 있는 산업 환경이 있는 게 현실이다. 고의나 중대 과실이 있을 때 처벌해야지 환경 자체가 위험한 곳에서 발생한 사고에 대표까지 형사처벌하는 것은 과도한 면이 있다. 이런 식이라면 위험한 업종에서 누가 사업을 하려 하겠는가. 재해에 대한 경종을 울리는 것을 감안하더라도 상식에 부합해야 공감을 얻을 수 있다. 과잉 처벌 논란이 일고 있는 중대재해법을 사고 예방 중심으로 고치고, 사고 발생 시 민사상 사용자 책임을 부과하는 쪽으로 바꿔 기업 부담을 더는 게 바람직하다. 중대재해법에 대한 산업계 등의 의견을 정부, 여야가 적극 수용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