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요 초대석] 한국의 반도체, 세계 1위에 물어라

입력 2023-04-03 11:24:03 수정 2023-04-03 15:36:09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전병서 중국경제금융연구소장

첨단산업의 역사를 보면 시발역과 종착역이 같았던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산업혁명 이후 철강, 화학, 자동차, 가전, 통신, 반도체에 이르기까지 신기술은 미국에서 일본, 일본에서 한국, 대만과 중국으로 날아갔다.

산업의 주도권은 영원히 한군데서 머문 적이 없다. 최적의 생산지를 찾아서 끝없이 이동하는 것이 기술이고, 시장을 따라 움직이는 것도 기술이다. 공장은 보조금 많이 주는 데 짓는 것이 아니고 시장 가까운 데 짓는 것이다.

지금 미국이 종착역에 도달한 반도체를 보조금으로 다시 시발역으로 돌리는 노력은 성공 가능성이 낮아 보인다. 실리콘을 넘어서는 신소재에서, 반도체가 아니라 초전도체에서 새로운 시발을 하는 것이 답이지 이미 지나간 차를 2배, 3배 요금 더 주고 다시 부르는 것은 돈만 쓰고 추월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

지금 반도체 파운드리(Foundry)산업은 미중 관계와 국제정치를 이해하는 핵심이다. 파운드리산업은 50년 전 미국 TI사의 엔지니어였던 TSMC의 창업자 대만의 장충모 회장이 처음 제시했다. 50년이 지난 지금 연간 세계 컴퓨팅파워 증가의 3분의 1은 대만의 파운드리산업에서 만든 첨단 칩에서 나온다.

왜 TSMC는 미국이 아니라 대만에서 탄생했을까? 미국 기업들은 너무 성공해서 혁신을 계속하지 못했고 파운드리를 하청 정도로 낮게 봤기 때문이다. 그리고 선견지명이 있는 고수가 대만에는 있었고 미국에는 없었다.

지금 대만은 정부가 하지 못하는 대미국 강경 발언을 1등 기업 TSMC 회장의 입을 통해서 한다. 세계 1위 기술은 전 세계에 통하고 반도체 고수의 입은 미국에도 통하기 때문이다. 2023년 3월 16일 대만 언론매체 '톈샤'(天下)가 주최한 '반도체 세기의 대화' 포럼에서 '반도체 전쟁'(Chip Wars)이라는 책의 저자인 크리스 밀러(Chris Miller)와 TSMC의 장충모 회장이 대담하는 세션이 있었는데 여기서 장충모 회장은 서평을 하면서 아주 의미심장한 얘기를 했다.

반도체 전쟁은 훌륭한 책이지만 대만의 경우 정부의 역할이 너무 과대평가되었다고 지적했다. 대만 정부가 설립 초기에 TSMC의 최대 투자자였지만 당시 정부는 TSMC에 투자할 의향이 없었고 고용을 늘리는 데 관심이 있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정부는 투자가의 역할만 했고 TSMC의 성공은 오롯이 기업의 노력과 몫이었다는 얘기를 했다.

회사 운명을 걸고 매일 사투하는 기업의 역할을 절대 과소평가하면 안 된다는 얘기고 정권이 바뀔 때마다 왔다 갔다 하는 정부 정책을 에둘러 비판한 것이다. 일류 기업의 생각과 전략을 무시하지 말고 정부가 잘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한국의 반도체 정책, 미국을 벤치마킹하면 된다. 미국의 반도체법은 세계 2위 반도체 업체인 인텔의 의도대로 만들어진 것이다. 지금 세계 반도체 업계 1위와 3위를 하는 기업이 한국에 있다. 한국의 정치권은 세미나 포럼만 자꾸 하지 말고 세계 1위와 3위 기업을 심층 면담하고 세계 1, 3위의 생각과 구도대로 정책을 만들고 지원하는 것이 답이다.

반도체는 재벌의 수익사업이라는 생각을 버리고 국가안보산업으로 인식해야 한다. 반도체 기업을 한국의 안보를 지키는 최전방의 장군으로 대접하고 조언을 구하고 더 튼튼하게 반도체 안보 전선을 지킬 묘수를 같이 찾아야 한다.

영리한 토끼는 굴을 3개 판다. 한국 반도체산업은 메모리만 가지고는 살 수 없다. 차세대 장비와 소재로도 진입해야 한다. 핵심 장비 없는 반도체 생산으로는 언젠가는 당한다. 그리고 미국과 일본을 보라. 반도체를 보내고 나도 장비와 소재로 한국과 대만, 중국의 반도체 생산을 통제한다.

반도체에서 보이는 손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손' 장비와 소재가 더 무섭다. 반도체 장비가 없으면 아무리 기술개발을 해도 생산이 안 된다. 소재가 강하면 신기술에 대응할 수 있고 통상 무기로 쓸 수도 있다. 일본의 반도체, LCD 소부장 재료의 몽니, 중국발 요소수 사태가 좋은 사례다.

앞으로 나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남의 신발, 남의 도시락을 들고 뛰면 언젠가는 탈이 난다. 모든 장비와 소재를 다 개발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핵심 장비와 첨단소재는 10년을 두고 단 1개의 칼만 가는 십년마일검(十年磨一劍)의 자세로 준비해야 한다.